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노매드랜드> 메인포스터

영화 <노매드랜드> 메인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미국 네바다 주의 소도시 엠파이어는 한때 석고 산업으로 호황을 이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 당시의 엠파이어는 도시 전체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경제위기가 찾아 올 것이라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2011년 지역의 가장 큰 석고 기업이었던 'US 석고'가 문을 닫으며 광산이 폐쇄된다.

일자리 하나만 바라보고 엠파이어에 정착했던 이들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지역은 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최장 6개월까지 도시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은 다시 또 새로운 일자리를 향해 엠파이어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떠나자, 작은 마을은 스산함만이 남은 유령 도시가 되었다. 마을은 폐쇄되고, 우편번호도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는 우편 번호가 사라진 미국의 한 소도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짧은 설명 속에는 경기가 나빠지고 불황이 지속되며, 한 도시를 지탱하던 산업이 무너지는 과정이 간략하지만 압축적으로 잘 담겨있다.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던 기반이 사라지자, 그 곳의 사람들은 다른 도시로 이탈하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뒤에 또 다른 삶의 터전이 아니라 길 위에서 살아가는 '노매드(nomad)'의 삶을 선택한 여성. 영화는 관객들과 함께 그녀의 삶을 함께 지켜보며, 개인의 삶을 통해 지금 미국 대륙에서 노매드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02.
'거주할 곳이 없는 것과 집이 없는 건 다르잖아.'

펀은 엠파이어의 'US 석고'가 문을 닫으며 어려움을 겪게 된 많은 이들 가운데 하나다. 인사과에서 근무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왔지만, 회사가 문을 닫고 나자 노매드의 삶을 선언하고 길 위로 나섰다. 집을 떠나 생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지금은 아마존의 물류창고에서 단기 아르바이트 일을 한다. 숙식의 해결은 근처 캠핑 사이트에 주차해 놓은 밴에서 한다. 사실, 밴을 세워 놓을 이 작은 공간 하나도 아마존의 복지 지원을 받은 것이다. 이 짧은 아르바이트 생활이 끝나고 나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나던지 아니면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의 금액을 알아서 지불해야한다. 집을 떠나온 길 위에서의 삶은 이런 문제와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여기에 본격적인 추위라도 시작된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였다.

자리를 가득 채운 캠핑 사이트의 주차 공간을 보면,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그녀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안락한 삶을 버리고 지금의 삶을 선택한 이들일 것이다. 문제는 특정 상황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 집단이 된다고 해서 각각의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펀에게도 주변인들의 시선은 따갑고 매섭게 내려진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걱정과 관심이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오지랖에 불과한 말들, '길 위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겠어. 도움이 필요하면 같이 살아도 돼'와 같은 말들이다. 그래서 펀은 이렇게 말한다. '거주할 곳이 없는 것과 집이 없는 건 다르잖아'라고.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3.
그러던 어느 날, 밥 웰스라는 인물과 노매드인들의 커뮤니티인 'RTR'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지금의 경제를 침몰해가는 타이타닉에 비유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이 고무보트(자신의 커뮤니티를 이르는 말)에 태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집은 없지만 거주할 곳은 있는 펀에게 그의 말은 썩 좋게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존과의 계약이 끝나고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게 되자 그들 커뮤니티를 찾아가게 된다.

이 작품에서 펀이 커뮤니티 생활을 시작하는 지점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그동안 홀로 노매드의 삶을 살아왔던 펀이 이 지점을 시작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주고받는 집단으로의 노매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녀가 커뮤니티 속에서 타인과의 교류가 존재하는 노매드의 삶을 시작했다는 증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노매드들이 자신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 나와 교환하는 장면에 펀이 등장하는 것과 이웃 노매드가 펀의 밴을 보고 낡았다며 핀잔을 주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이는 엠파이어를 떠나온 뒤로 줄곧 홀로 떠돌아다닌, 혹은 주변의 비교 대상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았던 그녀에게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주어진 것과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부분은 타인과의 교류가 가능한 새로운 커뮤니티에 속하게 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말은 하는 사람의 의지보다는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의 유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편도 잃고, 친구도 잃고 떠나왔다는 펀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타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들로부터 가벼운 의미의 위로를 받기 시작하면서 펀은 더 구체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의 처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침묵 속에 넣어두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04.
영화를 보다 갑자기 노매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버리는 일이 아닐까? 좁은 밴 속에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테트리스 하듯 집어 넣어야 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아득해진다.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취해야 할까. 영화 속 노매드 사람들에게도 어느 순간에는 분명 강요되었을 순간이며, 그 선택의 결과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살아가는 그들에게도 결코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가령 펀의 물건을 예로 들자면, 자신의 젊은 시절이 담긴 오래된 사진과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접시 세트와 같은 것들이다.

어떤 욕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밥 웰스는 노매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기존에 자신들이 누려온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살아가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사람들보다 낮은 수준의 욕구 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하는,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박람회에 전시된 풀옵션 최고급 밴에 올라 아이처럼 좋아하던 모습. 자신이 놓인 상황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일종의 포기를 하고 있는 셈일 뿐, 욕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노매드의 삶이란 완전히 포기하고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잘 기억하고 보듬어내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도, 또 지금 스스로 느끼는 욕구도 말이다. 나는 처음에 그들의 삶을 많이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넨 분명히 최선을 다했을 거야, 펀.'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5.
중후반부를 지나면서 영화는 중요한 인물 하나를 등장시키는데 그 인물이 바로 데이브(데이빗 스트라탄 분)다. 커뮤니티 생활을 시작한 펀이 그들과 어울리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그가 펀의 접시를 깨뜨리기도 하고, 펀이 그의 게실염을 돌봐주기도 하는 등 여러 사건을 지나며 친밀감을 형성하게 인물이다. 나중에는 함께 데이트를 하며 특별한 감정을 주고 받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그녀의 곁에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노매드의 삶을 추구하게 된 배경이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경위로 인해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과 어떻게든 방법을 구하면 지붕 아래에서의 안락한 삶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등한 위치에 둘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영화는 펀과 데이브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두 사람을 같은 출발선에 위치시키고 각각 한 번씩의 기회를 부여한다. 데이브에게는 아들이 찾아오도록 하고 펀에게는 언니의 집을 찾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각각의 시점에서 두 사람은 현재의 삶을 멈추고 '지붕 밑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제안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데이브는 안정된 삶을 향하게 되고 펀은 그렇지 않게 된다.

이제 떠나는 사람이 되는 이와 다시 남겨지는 쪽을 선택한 사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여기 노매드랜드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흔한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 데이브는 펀이 조금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인물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대상이 된다. 그녀와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서 그녀의 선택을 두드러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한 번, 그녀가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 최종적인 디딤돌이 되어 준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그렇다. 동질의 감정을 서로 주고 받을 정도로 노매드의 삶 깊숙한 곳에 함께 머물던 두 사람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다른 삶을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그림자는 더욱 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06.
함께 살자는 언니의 제안도 거절하고, 함께 떠나자던 데이브의 제안도 거절하고. 오롯이 홀로 남는 편을 선택한 펀의 삶은 이전보다 더 메말라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진도 혼자서 찍어야 하고, 먹는 것도 혼자 해야 하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홀로 채워야 하는 시간들이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쪽에 비하면 녹진하던 감정이 놓였다 사라진 쪽의 허전함은 훨씬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고는 하나, 감당해야 할 몫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펀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해서 '지붕 밑의 삶'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직전에 이야기 했던 욕구의 문제와 상응한다. 집에서 함께 살자던 언니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언니의 추억에 미소 짓던 그녀의 아련한 눈빛, 데이브의 제안을 거절한 후에 꼭 한 번 들르겠다고 먼저 약속하는 모습 등. 이 모든 것들은 분명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시작된 안정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라기보다 인간이기에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나는 펀이 지금 길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 때문은 아니라고 믿는다. 지붕 아래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경우 떠올리게 될, 지금은 곁에 남겨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마음. 이미 먼저 떠나버리고 만 이들에 대한 부채감. 홀로 이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 갈 동력을 잃어버린 상태의 모든 합이 지금의 모습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던 게 아닐까.

아들과 함께 떠난 데이브의 안정과 삶의 끝자락에서 이제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스완키의 여행 그 이전의 모습이 그랬듯이, 아직 그런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이들이 진짜 자신의 삶을 찾기 이전의 상태, 그것이 처음 엠파이어를 떠나 길 위에 선 지금 펀의 모습일 것이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07.
동일한 기회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하며 갈라서게 된 두 사람. 지붕 아래의 안락한 삶을 선택한 데이브는 이제까지의 삶을 어떻게 버텨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한다. 자신의 캠핑카 타이어가 터졌는지도 모를 정도. 아직도 길 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펀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언니의 집을 나온 펀이 그런 데이브의 집으로 향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계기로 인해 펀 또한 데이브와 마찬가지로 지붕 아래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언니의 지붕과 남자친구의 지붕 아래의 안정이란 단어의 모습은 다를 수 있지 않나.

실제로 데이브의 삶을 지켜보면서, 또 다시 한 번 주어진 데이브의 제안 앞에서 펀의 마음도 조금은 흔들렸던 것 같다. 만약 그 공간이 데이브 혼자만의 것이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함께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하는 데이브 부자(父子)의 모습은 그녀를 다시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는 두 가지다. 이 장면을 만들 수 있는 데이브와 달리 자신에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마음 혹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또 한 번의 절망으로부터 떠날 수밖에 없는 마음.

펀은 그래서 떠난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다시 한 번 자신의 캠핑카를 이끌고.

08.
어떤 땅이 사라지는데 이유가 있듯이, 누군가의 땅이 새로이 태어나는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이야기가 그렇다. 자신의 의지 바깥의 위력으로 인해 삶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의 삶만큼은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펀이 지금 떠나는 이 길이 이전에 지나온 길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 믿게 되는 이유다. 자신이 떠나온 모든 자리를 찾아가 기억을 매듭지은 그녀는 이제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난다.

영화는 자신의 의지대로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을 통해 생동한다. 그들의 눈은 저 멀리, 산 허리에 내리는 낙양처럼 신비롭게 빛난다. 단순히 그 눈빛만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삶과 이 영화가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나아가는 일의 이면에서 현실을 지탱하는 것은 짙은 외로움과 지난한 일상, 그 일상이 남기는 상흔임을 외면하지 않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난 기억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낸 것 같아요.'

인생은 분절되지 않는다. 그들 역시 새로운 땅을 만들면서도 과거의 땅을 잊지 못한다. 그곳에 버리고 나올 수 있었던 것들을 품고, 깨진 조각들을 굳이 다시 붙이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땅은 지난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잘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리고 또 한번 나아가기 위한 공간이다. 그녀는 다시 길 위에 선다. 다음 땅에서도, 그 다음 땅에서도, 그녀는 마찬가지의 삶을 살 것이다. 다음의 땅 위에서는 자신의 구역을 조금씩 더 키워나가면서 말이다.
영화 노매드랜드 클로이자오 프란시스맥도맨드 오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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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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