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팀 전주 KCC가 인천 전자랜드의 도전을 제압하고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KCC는 21일 전주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PO·5전3승제) 1차전에서 85-75로 승리했다. 남자프로농구 역대 4강 PO 1차전 승리팀의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 진출 확률은 무려 78.3%나 된다.

1차전을 앞두고 KCC는 돌발 상황에 직면했다. KCC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KBL 최초 고졸 출신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거머쥔 송교창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송교창은 최근 오른쪽 엄지발가락 부상이 악화되며 1차전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리그 내내 특별한 부상 소식이 없었던 송교창이었기에 KCC 관계자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장신포워드로 골밑과 외곽을 넘나들며 KCC의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송교창의 공백은 전술적으로 큰 악재였다. 심지어 플레이오프를 대비하여 대체선수로 영입한 조 알렉산더는 KCC의 전술에 녹아들지 못했는지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KCC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전창진 감독은 송교창의 결장으로 높이가 약해지자 아예 과감하게 3명의 가드를 동시에 투입하는 스몰라인업 카드를 들고 나왔다. 공격에서는 이정현(13점·4리바운드·6어시스트), 정창영(18점·5리바운드)등 가드진이 맹활약했다면, 수비에서는 송창용과 김상규가 4번 역할을 분담하며 송교창의 빈 자리를 메웠다.

전반에는 정창영과 김지완이 적극적인 돌파로 상대 자유투를 끌어냈고, 라건아를 최대한 활용한 2대 2게임으로 외국인 선수 조나단 모트리의 수비력이 취약한 전자랜드의 약점을 공략했다. 승부처인 4쿼터에는 침묵하던 베테랑 이정현이 빛났다. 3쿼터까지 3점에 그쳤던 이정현은 4쿼터에만 10점을 몰아치며 전자랜드의 추격을 뿌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종료 4분을 남기고 점수차를 8점차로 벌리는 이정현의 쐐기 3점포는 이날의 백미였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선수들의 맞대결에서도 우세를 점했다. 정규리그 1위의 주역이던 타일러 데이비스가 시즌 막바지 부상으로 이탈하며 플레이오프에서는 다시 라건아가 1옵션으로 나섰다. 공교롭게도 4강에 진출한 상대팀들이 모트리를 비롯하여 설린저(인삼공사), 숀 롱(현대모비스) 등 쟁쟁한 NBA 경력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히 라건아와 비교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건아는 1차전에서 23점 1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모트리(24점 12리바운드)와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전반에는 사실상 모트리를 골밑에서 압도했다. 후반들어 모트리의 득점이 살아나기는 했지만 턴오버도 7개나 범하며 팀공헌도의 영양가는 라건아가 훨씬 높았다. 모트리는 라건아가 매치업으로 나올 때는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후반에는 KCC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모트리에게 줄 점수는 주더라도 다른 국내 선수들을 틀어막는 방향 다소 느슨하게 풀어준 면도 있었다.

특히 눈에 보이는 기록보다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이 중요한 2대 2 게임에서 라건아와 모트리, 두 선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경험에서 앞서는 라건아는 국내 선수들을 활용하여 무리하지 않고 쉬운 득점을 올렸다. 송교창이 빠진 대신 라건아와 3가드의 활용도를 극대화한 2대 2게임의 비중이 커진 것은 오히려 라건아의 경기 리듬을 더 살려주는 전화위복이 됐다.

반면 모트리는 1대 1 공격에 의존하며 동료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수비에서도 2대 2 수비에서의 위치선정과 도움 수비 타이밍에 취약한 모습을 반복했다. 골밑에서는 라건아의 파워에 눌려 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체력부담을 느끼는 듯한 모습도 나왔다.

라건아는 몇 년 전부터 KBL에 NBA나 G리그 출신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외국인 선수들이 가세할 때마다 '올해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따라 붙었다. 라건아가 화려한 KBL 경력에도 불구하고 농반진반으로 자신을 '언더독(도전자)'이라고 지칭한 이유다. 하지만 이는 승부욕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모트리를 압도한 1차전에서 라건아는 코트 위에서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KCC가 선수들 개개인의 정신력이나 팀전술적으로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1차전이었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주전들의 공백이나 돌발변수에 직면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KCC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했다. 데이비스가 이탈하니 라건아가 살아났고, 송교창의 공백은 다른 국내 선수들로 메웠다.

라건아가 잠시 휴식하러 들어갔을 때는 스타일이 전혀 다른 애런 헤인즈의 공격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송창용을 상대 외국인 전담수비수로 활용하면서도 조직력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정규시즌 막바지 다양한 선수 조합과 백업 멤버들을 고르게 가동하며 플레이오프를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멈추지 않았던 전창진 감독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시즌 개막 전까지 우승후보도 아니었던 KCC가 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증명한 경기였다.

하지만 전자랜드에게도 아직 반전의 희망은 충분하다. 초반 고전하던 모트리가 후반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었고 전현우(16득점)와 이대헌(14득점), 김낙현(13득점) 등 국내 선수들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자칫 완패가 될뻔했던 경기를 접전으로 몰고 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1차전에서는 전자랜드가 송교창이 빠진 4번 포지션에서 이점을 활용하는 데 실패했지만, 송교창의 공백이 길어진다면 KCC로서도 수비 매치업에서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두 팀은 23일 같은 장소에서 2차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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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KCC 라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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