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안 슈퍼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유러피안 슈퍼리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슈퍼리그

 
이른바 '빅클럽'으로 불리는 유럽프로축구의 명문구단들이 판을 흔들고 나섰다.

유럽의 12개 구단은 19일(한국시각) 공동 성명을 내고 새로운 대회인 '유로피언 슈퍼리그' 출범을 알렸다. 

슈퍼리그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상 스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아스널, 첼시, 토트넘(이상 잉글랜드), AC 밀란, 인터 밀란, 유벤투스(이상 이탈리아)가 참가한다.

빅클럽들 "슈퍼리그, 야욕 아냐... 살아남기 위한 것"

그야말로 수백 년간 이어온 유럽 축구의 역사를 단번에 뒤바꿀 엄청난 소식에 정계와 언론, 증권가까지 들썩이고 있다.

사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남다른 야망을 품어왔다. 축구가 스포츠가 아닌 산업으로 커지면서 마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처럼 유럽의 14개 빅클럽이 모여 'G14'를 만들어 축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별도의 리그를 창설하고 싶다는 뜻을 꾸준히 내비쳤고, 마침내 슈퍼리그라는 실체를 드러냈다. '창립 멤버' 15개 구단이 고정적으로 참가하고, 매년 성적에 따라 자격을 얻는 5개 구단 등 20개 구단이 맞붙는 폐쇄적 방식이다(물론 어디까지나 구상이며 현재 참여하겠다고 밝힌 팀은 12팀이다, 'G14'에 속한 빅클럽 중 독일 바이에른 뮌헨는 불참을 선언했고 네덜란드 아약스도 빠지게 됐다).

이들이 원했던 '그들만의 리그'는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됐다. 예상치 못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강팀과 약팀이 한꺼번에 맞붙는 기존의 챔피언스리그는 흥행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물론 UEFA를 압박해 기존의 챔피언스리그를 자신들이 유리한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었겠지만, 이들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협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원한 것이다. 

'풀뿌리 축구' 위협... 슈퍼리그를 반대하는 이유 
 
 유러피언 슈퍼리드를 둘러싼 논란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유러피언 슈퍼리드를 둘러싼 논란을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 BBC

 
슈퍼리그 출범을 주도한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발언에는 이런 '야욕'과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페레스 회장은 이날 스페인 축구전문 프로그램 <엘 치링기토>에 출연해 "수익이 부족한 지금의 사태를 타개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경기를 치러야 한다"라며 "챔피언스리그는 보통 8강전 정도 되어야 흥미롭지만, 슈퍼리그는 모든 경기가 흥미로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단을 운영하는 데 갈수록 많은 돈이 드는 반면에 축구의 인기와 TV 중계권료는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며 "축구계의 모두가 망해가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가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자 구단들이 더 많은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구를 살리기 위해 슈퍼리그를 출범한 것"이라며 "UEFA의 독점은 이제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론은 아직 슈퍼리그의 편이 아니다. UEFA는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을 퇴출하겠다고 경고했으며, 국제축구연맹(FIFA)도 합세해 소속 선수들의 국가대표 및 월드컵 출전 자격까지 박탈하겠다고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슈퍼리그에 참가하기로 한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축구팬들이 슈퍼리그를 싫어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라며 "나는 구단 경영진이 더 나은 선택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라고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축구 해설가 개리 네빌도 "100년 전 노동자들이 만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것은 역겹다"라며 "축구에는 돈이 필요하지만, 공정한 경쟁도 필요하다"라고 친정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 세계가 들썩... 슈퍼리그의 운명은?
 
 슈퍼리그 참가에 반대하는 리버풀 축구팬들의 시위를 전하는 트위터 갈무리.

슈퍼리그 참가에 반대하는 리버풀 축구팬들의 시위를 전하는 트위터 갈무리. ⓒ 트위터 캡쳐

 
슈퍼리그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이익의 대부분이 빅클럽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되면 하부리그 및 유소년 축구를 비롯한 풀뿌리 축구가 고사될 것이란 점 때문이다. 각국 정계 인사들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다. 

특히 축구 자체가 거대한 기간산업인 유럽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국의 올리버 다우든 문화부 장관은 의회에 보낸 성명에서 "이런 일(슈퍼리그 출범)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라며 "해당 구단들에 대한 지배구조 개혁, 경쟁법 위반 적용 등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슈퍼리그 참가 구단들도 정부와 납세자의 도움을 크게 받았으며, 이들은 그 의무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슈퍼리그는 연대와 스포츠의 가치를 위협한다"라고 비판했다.  

영국 BBC의 온라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축구팬 11%만이 슈퍼리그 출범에 찬성하고, 89%는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리버풀 홈구장 앞에서는 팬들이 모여 유니폼을 불태우며 슈퍼리그 참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빅클럽들은 이를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끝내 칼을 빼 들었다. 참가만 해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상금과 맞먹는 200억 원 규모의 수익을 안겨주는 슈퍼리그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증권가도 슈퍼리그의 편에 섰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슈퍼리그에 약 7조 원을 투자하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에 중계권을 판매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갈등이 마침내 폭발했고, 유럽을 넘어 세계 축구계가 혼돈에 빠졌다. 슈퍼리그를 둘러싼 치열한 여론전과 법정 공방 등 '총성 없는 전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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