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복> 포스터

<서복> 포스터 ⓒ CJ ENM , 티빙

 
중언부언(重言復言),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한다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다. 영화에서 도입부나 서사를 생략한 거두절미(去頭截尾)가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면, 중언부언은 지루하고 답답한 기분을 준다. <서복>은 이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영화다. 유의미한 메시지를 담론의 측면이 아닌 주입의 형태로 반복하다 보니 지친다. 한국영화 최초 복제인간이란 흥미로운 소재를 철학적인 측면에서만 담아내려다 자기 철학에 갇히는 우를 범한다.

<서복>의 장점은 소재 그리고 철학에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도 <로보캅> 같은 사이보그나 <터미네이터> 같은 인공지능(AI) 로봇은 그 유명세와 재생산으로 익숙하지만 복제인간은 친숙하지 않다. 때문에 서복이란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소재에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서복에게 투영된 건 인간의 욕망이다. 서복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이국에 보냈던 신하 중 한 명의 이름이다. 영화 속에서 서복은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이다. 이 소재들은 인간이 욕망으로 인해 도덕성과 생명윤리를 뒷전에 두었음을 상기시킨다. 즉, 서복은 인간의 욕망에서 태어난 존재다.
 
서복을 이송시키는 임무를 받은 전직 특수요원 기헌을 비롯한 인물들은 서복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킨다. 서복은 영생할 수 있는 존재다. 학선을 포함한 연구원들은 서복을 통해 명성과 부를, 기헌의 상사인 안부장은 서복을 외국에 팔아넘겨 막대한 돈을 벌고자 한다. 기헌은 서복의 골수를 통해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치료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서복과 관련된 임무를 수락한다. 이들은 모두 욕망과 윤리의 경계선에서 서복과 대치해 있다.

극중 인물들은 서복을 통해 사회적인 욕망과 인간적인 욕망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를 반복한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란 영화 속 대사가 이를 잘 설명한다. 실험을 통해 탄생한 서복은 인간이 영생을 꿈꿀 수 있게 한다. 때문에 서복의 존재는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욕망의 대상이 되다. 
  
 <서복> 스틸컷

<서복> 스틸컷 ⓒ CJ ENM , 티빙

 
서복과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한 기헌. 인간으로 태어나 자신의 조재가치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는 서복. 이런 인물의 관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삶 속에서 존재가치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는 영화의 대사는 영화가 품고 있는 고민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만 이런 영화의 철학은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며 주제의식을 확실히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대사나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여운을 남기거나 상념에 젖게 만드는 힘을 보여줘야 하는데, 답을 다 제시해버린다. 
 
 <서복> 스틸컷

<서복> 스틸컷 ⓒ CJ ENM , 티빙

 
메시지를 반복하며 주입을 시도한 <서복>은 감정 전달 측면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서사가 층층이 쌓여야 감정 전달이 잘 되는데 이 영화의 서사는 단조롭고 단순하다. 서복과 기헌이 브로맨스를 쌓아가는 장면은 전형적이며 감정이 폭발적으로 피어날 만한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서복을 폐기하려는 안부장과 서복을 통해 죽음을 정복하려는 김회장 사이의 대결 역시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내지 못한다. 작품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인 서복의 어머니이자 그를 만든 박사인 세은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빠르게 퇴장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메시지에는 한계가 있다. 이 작품은 메시지를 특별하게 전달하지도, 재미있게 풀어내지도 않는다. 그저 반복할 뿐이다. 풍성한 알맹이로 서사를 채워 관객이 이야기에 먼저 빠져들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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