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의 주인공은 김구라였다. 김구라는 '예능계의 지식백과'로 불릴 만큼 잡학 다식한 개그맨으로 유명하다.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땐 라디오 DJ를 하면서 음악 잡지에 팝음악에 대한 칼럼을 쓰기도 했다(실제로 김구라의 학창시절 꿈은 '팝칼럼니스트'였다고 한다).

김구라의 방대한 지식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방송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 매번 다른 주제를 가지고 3시간 동안 생방송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15년 8월 맥주를 주제로 한 '트루 비어 스토리'를 통해 첫 1위를 차지한 김구라는 2주 후 영화를 주제로 한 '트루 무비 스토리'를 선보였다. 그리고 김구라는 이원석 감독, 이지혜 기자와 함께 'B급 무비'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에서 자신의 생애 BEST3 안에 드는 영화라며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B급 코미디 영화 한 편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바로 벤 스틸러가 원안, 제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쥬랜더>였다.
 
 <쥬랜더>는 제작비의 2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고도 끝내 국내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쥬랜더>는 제작비의 2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고도 끝내 국내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 파라마운트 픽처스

 
유쾌한 감성으로 사랑 받은 감독 겸 배우 벤 스틸러

1967년 코미디 배우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벤 스틸러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코미디와 영화를 접하며 성장했다. 영화 <태양의 제국>, TV쇼 <SNL>, <벤 스틸러쇼> 등에 출연하며 현장을 공부한 벤 스틸러는 1994년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 주연의 <청춘스케치>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리고 두 번째 연출작이자 짐 캐리와 함께 한 <케이블 가이>가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대중들은 벤 스틸러가 배우로서 더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금방 발견했다. 벤 스틸러는 1998년 카메론 디아즈와 함께 출연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통해 세계적으로 3억6900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렸다. 2000년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한 <미트 페어런츠>마저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리면서 벤 스틸러는 짐 캐리 뒤를 잇는 할리우드의 대표 코미디 배우로 우뚝 섰다.

이미 배우로 상당한 위치에 올랐지만 벤 스틸러는 코미디 배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2001년 스스로 원안, 각본, 연출, 제작, 주연을 모두 맡으며 '원맨쇼'를 펼친 B급 코미디 영화 <쥬랜더>를 선보였다. 몰락한 남성 패션 모델 데릭 쥬랜더가 말레이시아 수상 암살음모에 휘말리게 되는 코믹 소동극 <쥬랜더>는 2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6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벤 스틸러의 건재를 알렸다(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개봉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기획자와 제작자,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벤 스틸러는 <스타스키와 허치>, <피구의 제왕>, <하트브레이크 키드> 같은 히트작들에 연이어 출연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벤 스틸러의 티켓파워가 썩 높지 않지만 북미에서는 벤 스틸러가 출연하면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이 보장될 만큼 지명도가 높은 배우다. 소위 말하는 '미국식 코미디'에 특화된 배우가 바로 벤 스틸러인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벤 스틸러의 흥행작이 있다. 바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세 편에 걸쳐 개봉된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그것이다. 특히 2006년에 개봉한 <박물관이 살아있다> 1편은 420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2013년 연말에 개봉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역시 국내에서 100만, 세계적으로는 1억8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고 2016년에는 15년 만에 <쥬랜더 리턴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몰락한 패션모델의 좌충우돌 재기 스토리
 
 오웬 윌슨(왼쪽)은 <쥬랜더>를 포함해 벤 스틸러와 무려 11개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오웬 윌슨(왼쪽)은 <쥬랜더>를 포함해 벤 스틸러와 무려 11개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 파라마운트 픽처스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잘생김'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확신이 있었고 필살 표정 '블루스틸'을 앞세워 3년 연속 올해의 모델에 뽑혔던 데릭 쥬랜더(벤 스틸러 분)는 평생 패배를 모르던 최고의 모델이다. 하지만 쥬랜더는 올해의 모델상을 헨젤(오웬 윌슨 분)에게 빼앗기고 절친 3인방마저 주유소에서 휘발유로 장난을 치다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쥬랜더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귀향을 결심한다.

나름 비장하게 은퇴 발표까지 하며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탄광생활은 적응이 쉽지 않고 가족들마저 쥬랜더의 모델 경력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던 중 유명 디자이너 무가투(윌 페렐 분)에게 '버림받은 자' 캠페인 참가를 제안받고 일주일간 특별한 트레이닝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말레이시아 수상을 암살하기 위한 특수훈련과 세뇌과정이었다. 위기에 빠진 쥬랜더는 마틸다(크리스틴 테일러 분)의 도움으로 자신이 암살자로 지목된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뜻과는 별개로 말레이시아 수상 암살자가 된 쥬랜더와 노동력 착취를 통해 값싼 물건을 공급 받으려는 패션계의 대결이 영화 <쥬랜더>의 주요 스토리다. 하지만 영화 <쥬랜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쥬랜더와 핸젤이 벌이는 모델대결이다. 뜬금없이 등장한 고 데이빗 보위가 심판을 보는 가운데 시작된 쥬랜더와 헨젤의 대결은 워킹으로 시작해 댄스, 묘기 등으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쥬랜더는 헨젤과의 대결에서 패한 후 또 한 번 크게 좌절하지만 헨젤은 쥬랜더가 자신의 우상이었음을 고백하고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콤비가 된다. 그리고 쥬랜더와 헨젤은 '버림받은 자' 행사에서 수상 암살 계획을 막아내고 무가투의 음모를 밝혀낸다.

쥬랜더의 라이벌에서 콤비가 되는 헨젤 역의 배우 오웬 윌슨은 국내 관객들에겐 <상하이 눈>과 <상하이 나이츠>, <80일 간의 세계일주> 등 성룡과 함께 출연한 영화들로 익숙한 배우다. 배우는 물론 시나리오 작가도 겸했던 윌슨은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로얄 테넌바움>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2011년에는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신비감 버리고 화끈하게 망가진 밀라 요보비치
 
 밀라 요보비치는 <쥬랜더>에서 신비로운 여전사 이미지를 버리고 한껏 망가진 연기를 선보였다.

밀라 요보비치는 <쥬랜더>에서 신비로운 여전사 이미지를 버리고 한껏 망가진 연기를 선보였다. ⓒ 파라마운트 픽처스

 
벤 스틸러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쥬랜더> 역시 언제 어디서 누구와 봐도 큰 부담 없이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다. 과장된 연기와 단순한 주제의식, 우스꽝스러운 상황의 반복이야말로 영화 <쥬랜더>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 <쥬랜더>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바로 다양하고 화려한 카메오들의 행진이다.

영화 초반 쥬랜더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인터뷰를 하는 인물들 중에는 위노나 라이더와 크리스찬 슬레이터, 쿠바 구딩 주니어, 나탈리 포트만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들이 있다. 작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잠시 얼굴을 비춘다(사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의외로 영화 출연 경력이 화려한 편이다). 벤 스틸러의 실제 아버지와 어머니도 제법 존재감 있는 조·단역으로 출연한다.

<쥬랜더>에는 주연배우와 화려한 카메오들 말고도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또 한 명 등장한다. 바로 <레지던트 이블>의 여전사 밀라 요보비치다. 1997년 <제5원소>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밀라 요보비치는 <쥬랜더>에서 '악의 축' 무가투의 오른팔 카틴카 잉가보고비나나나를 연기했다. 화려한 외모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화장을 한 요보비치는 여주인공 마틸다를 향해 '마트 아가씨'라고 디스하며 악녀본색을 드러낸다.

<제5원소> 이후 차기작 <잔 다르크>의 흥행실패로 슬럼프를 겪던 밀라 요보비치는 <쥬랜더>를 통해 재기의 기지개를 켠 후 2002년 <레지던트 이블>을 히트시키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총 여섯 편에 걸쳐 개봉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12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올리며 밀라 요보비치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2017년에 개봉한<레지던트 이블 : 더 파이널 챕터>에는 한국배우 이준기도 짧게 등장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쥬랜더 벤 스틸러 오웰 윌슨 B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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