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배우 이유미 인터뷰 사진

ⓒ 바로엔터테인먼트

 
"세진이는 순수하게 모든 걸 흡수하는 사람이다. 어린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역시 연인이었던 담임 선생님이 그 모습을 좋아해주니까."

거리를 헤매는 10대 임신부 세진은 어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절도, 미성년자 성매매, 빈집 무단점거로 생계를 이어가는가 하면, 경찰서에 끌려가서도 "저희도 살아야 되잖아요"라고 되받아친다. 그러나 배우 이유미는 이러한 세진을 죄의식조차 없는, 해맑은 아이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세진의 성장환경과 주변의 나쁜 어른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란 해석이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이유미를 만났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가정과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세진(이유미 분)의 험난한 유산 프로젝트를 그린다. 

이유미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봉 직전 진행된 기술 시사회(영화 제작진들이 모여 기술적인 부분의 점검, 수정을 위해 함께 영화를 보는 것)까지 총 두 번 영화를 봤단다. 그러면서 그는 "초등학교 앨범을 보는 기분"이었다는 재밌는 소감을 내놓았다.

"어렸을 때 사진을 볼 때, 남들은 다 예쁘다고 하는데 내 눈엔 이상해 보이는 그런거 있지 않나. 저한텐 이 영화가 그런 느낌이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 보는 느낌. 분명히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관객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더라. 함께 촬영했던 배우들도 (영화에선) 다 내가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어서 신기했다. 평상시 모습과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배우들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배우 이유미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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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담임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로 임신하게 된 세진은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루종일 담배를 피워대고 독한 술을 들이붓는 것도 그래서다. 어른들은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세진을 외면하거나 혹은 이용해먹으려고만 한다. 여기에 지친 세진은 혼자 거리를 떠돌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주영(안희연 분), 재필(이환 분) 등을 만나고, 이들과 함께 다니며 갖가지 방법으로 임신 중절을 시도한다. 이름도 모르는 약을 잔뜩 입에 넣는가 하면, 중절 수술할 돈을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일도 마다 않는 식이다. 앞서 제작발표회에서도 "세진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 이유미는 특히 주영, 재필 무리와 금방 친해지고 쉽게 도움을 받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진의 무모한 면도 그랬지만 그것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 너무 쉽게 (주영, 재필과) 친해지고 도움을 받지 않나. 처음엔 쉽게 이해가 안 되더라.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받아들이게 됐다. 감독님이 '10대들은 오래 만났다고 더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어린 애들이 얼마나 빨리 친해지는지 생각해보라고 하더라. 어리면 어릴수록 쉽게 친해진다고. 어떻게 보면 (세진에겐) 운명적인 만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다 몰라도 어느 정도 보면 이런 사람이구나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나.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게 있었겠구나 싶었다."

어른들은 모르는 10대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이 자료를 찾아보는 방법 밖엔 없었다. 이유미는 "다큐멘터리도 보고, (성인용) 라이브 방송이나 학교폭력을 당하는 장면들을 열심히 봤다. 경찰서에 잡혀간 아이들의 모습도 봤는데 정말 웃고 있더라. 재미있어 하더라. 그런 걸 통해 아이들의 관점으로 다가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감독님이 시나리오에 이미 다 만들어놓으시기도 했다. 말투, 웃음소리, 웃음의 강도까지. 조금이 아니라 '쬐끔'. 웃음소리도 '흐흣', '흐흐흣'이 다양하게 표현돼 있었다. 그걸 하나씩 연습하면서 (세진을) 구현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전작 <박화영>에 이어 <어른들은 몰라요>까지, 이환 감독은 그동안 비행 청소년들의 폭력과 탈선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는 문제작을 공개하며 영화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작품을 모두 함께한 이유미는 이환 감독을 "가끔 귀엽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감독님이 말을 하다가 자주 잊어 버린다. (말의) 처음과 끝이 다를 때도 있고(웃음). 장난꾸러기 같은 면도 있다"면서도 "항상 나를 믿어주고 받쳐주는 든든한 존재"라고 칭찬했다. 특히 연기 면에서 배우 겸 감독으로 활약한 이환 감독의 도움이 컸다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참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것 같다. 배우들이 연기할 때는 어떤 자극을 주려고 많이 노력해주셨다. 세진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자신이 어떻게 해야 제가 어떤 작용을 받을지에 대해 고민하더라. 재필이 나와 같이 십자가를 보는 게 좋을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지, 기도를 같이 할지 그런 대화를 나눴다. 배우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시는구나 생각하게 됐다."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배우 이유미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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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엔 절도 등 가출청소년 범죄 문제부터 학교폭력, 미성년자 성매매, 성폭력, 낙태, 불법 입양까지 우리 주변에 익숙하게 존재하는 문제들이 낱낱이 담겨 있다. 이유미는 "10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10대라고 하면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 않나. (관객이 마음을) 열어놓고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관객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어른인지 돌아보셨으면. 불편한 이야기이지만, 어딘가에는 정말 존재하는 이야기니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노래가 나오는 그 잠시간 만이라도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 2009년 TV광고를 통해 데뷔한 이유미는 어느덧 12년 차 배우가 됐다. 그동안 드라마 <땐뽀걸즈> <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 > < 20세기 소년소녀 >,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 수많은 작품에서 조·단역을 가리지 않고 차곡차곡 연기력을 쌓아온 그는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상업영화 첫 주연을 꿰찼다. 이유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연기를) 하면 할수록 고민하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다. 제게는 사람 공부, 인생 공부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어렸을 때보다 지금 연기하는 게 더 재미있다. 그땐 아무것도 몰라서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알아서 재미있다. 어떤 캐릭터를 맡든지, 그 캐릭터에 관해 질문하게 된다. 이 캐릭터는 어떤 사람일까. 그러다보니까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 같다. 조금씩."

이유미는 오는 15일 <어른들은 몰라요> 개봉에 이어, 올해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서도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어느 때보다 바쁜 한해를 보내고 있는 그는 고민은 없냐는 질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어진 답변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배우로서의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고민은 늘 있다. 요즘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쉬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제가 정말 쉬어본 적이 없다. 어떻게 쉬어야 쉬는거지? 싶더라.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별 걸 다 해봤는데 결과적으로 재미도 있었고 많은 걸 배웠지만 몸이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보고 싶었다. 

저는 긍정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너무 오래 (배우로 활동)하다 보니까 조급한 마음이 안 생길 수 없었다. 가만히 있으니까 그런 고민을 정말 하고 싶을 때까지 하게 되더라.나는 왜 조급할까. 내 스스로 조급한 걸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말 때문에 조급함을 느끼는 걸까. 이런 고민부터 끝까지 다 했다. 오히려 자유로워지더라. 되게 해방감을 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이것도 내 몫인 것 같아서 이제 그런 고민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
어른들은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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