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아의 EP < 우리의 방식 >

권진아의 EP < 우리의 방식 > ⓒ 안테나

 
사랑은 대중음악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제다. 응당 모든 대중 예술 장르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실패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주제이기도 하다. 표현의 형식에 고민이 없다면 '싸구려'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우리는 술이나 담배, 포장마차 등 한정된 키워드를 빼면 성립이 되지 않는 곡들에 익숙하지 않는가?
 
싱어송라이터 권진아의 사랑 노래는 그런 위험성의 정반대 편에 서 있다. 첫 정규 앨범 <나의 모양>(2019)의 타이틀곡 '운이 좋았지'는 대표적인 순간이다. 이 노래에서 권진아는 갑자기 다가온 이별을 두고 '내 삶에서 나보다 더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며 슬픔을 돌려 말한다.

운이 좋았다며 주문을 걸던 화자는 마지막에 '넌 내게 전부였지'라며 본심을 털어놓는다. 이 노래를 듣고 수십 번은 울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권진아의 사랑 노래가 좋다. 권진아는 사랑과 이별의 보편적 심상을 공유하는 한편, '이 노래의 주인은 어떤 사연의 사랑을 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노래를 부른다.
 
2014년 안테나 뮤직에 합류한 이후, 권진아는 수년에 걸쳐 자신의 음악적 지분을 과감히 늘려 왔다. <웃긴 밤>(2016)과 <나의 모양>(2019)이라는 두 장의 정규 앨범을 거쳐, 지난 2월 발매된 EP <우리의 방식>에서는 한 앨범을 진두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것은 물론 첫 메인 프로듀서로서 활약했다.
 
EP <우리의 방식>은 서로 다른 여섯 개의 노래가 단편집처럼 이어져 있는 작품이다. EP의 문을 여는 동명의 브리티시 록 '우리의 방식'은 서정적이면서도 씩씩한 출사표다. 편곡자로 참여한 임헌일의 기타 연주는 점진적으로 상승의 정서를 만들고, 더 나아가 여행가의 호기로운 모험마저 구현하는 듯 하다.

이 곡에서 권진아는 자신, 그리고 듣는 이가 자유롭게 사랑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나의 모양(2019)'에서 "난 어떤 사람일까 진짜 나를 찾게 되면 행복해질까?"라고 자문했던 그는 나름의 대답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 그렇게 너와 나 세상의 테두리 안에
갇혀 지내 잊고 있던 사랑하는 수많은 방식들을 알잖아"

- '우리의 방식' 중

 
권진아가 스케치한 우리네 사랑 이야기
 
 권진아

권진아 ⓒ 안테나 유튜브 채널

 
앨범의 첫 곡 '우리의 방식'이 웅장한 시작을 알리긴 했지만, 역시 앨범의 가장 큰 주제는 사랑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권진아는 사랑의 다양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권진아의 목소리가 가진 섬세한 표현력이 빛난다.  정통 발라드인 '잘 가'는 다가온 이별에 대한 아픈 예감을 얘기하고, 다시 '꽃말'에서는 봄날의 설레는 감정을 노래한다.

짝사랑을 다룬 'You Already Have' 역시 인상적이다. 노래의 후반부 '널 싫어해 널 미워해 널 좋아해'라는 가사는 '널 싫어해 널 싫어해 널 사랑해'로 바뀐다. 그는 인간이 마주하는 감정의 복잡한 결을 소리로 스케치하는 화가다.
 
'어른처럼' 에서는 죠지(george)와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죠지 특유의 이야기하듯 담백한 목소리를 더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권진아는 이 앨범의 문을 닫는 '여행가'를 가장 개인적인 노래라고 설명했다. '여행가'는 마치 '우리의 방식'과 수미상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우리의 방식'이 앨범의 문을 여는 것은 물론 미래를 말하는 출사표였다면, '여행가'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 역시 놓치지 않았다. 권진아는 과거를 그리워하긴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이별을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메신저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잊으려 떠나는 게 아니야 마음껏 추억하기 위해서 떠나는 거지"

- '여행가' 중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봉준호 감독이 언급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권진아는 개인적인 노래, 일상성이 두드러지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다. 그 가운데에서 빛나는 것은,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감각이다. 앨범의 제목처럼, 가장 권진아다운 방식대로 완성된 <우리의 방식>이다. 고민이 부재한 노래들과 궤를 달리하는 사랑 노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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