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성 불균형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여성 주연의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배우가 극을 이끌어 나가는 작품이 차츰 늘어났고, 여성 영화는 몇 년 사이 비약적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일부 영화는 여성 인물을 간판으로 세웠을 뿐,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을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직업적 유능함을 내세워 성 고정관념을 탈피하는가 싶다가도 사랑과 모성애 앞에 무너지는 것이 단적인 예다. 사랑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소거하거나, 모성애가 약점이 되는 여성 서사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충무로는 계속되는 여성 영화의 호황 속에서도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부재에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견 여배우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노모 혹은 주연 남성의 처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미나리>로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는 배우 윤여정 역시 이 역할 불모지에서 56년의 세월을 보냈다. 생계를 위해 단역도 마다하지 않은 그였지만, 주어진 배역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으로 연기 영역을 넓혔다. 그래서일까. 윤여정이 연기하는 엄마와 할머니 앞에는 '그냥'이라는 부사가 붙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윤여정은 '데이비드의 할머니'가 아닌 '순자'라는 이름으로 해외 유수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을 들어 올리고 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고 싶어요"
 
 영화 <미나리>에 ‘순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 윤여정의 모습.

영화 <미나리>에 ‘순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 윤여정의 모습. ⓒ 판씨네마(주)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 
"진짜 할머니 같은 게 뭔데?"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고!"
 
영화 <미나리>에서 외손주 데이비드(앨런 김)와 순자(윤여정)가 나눈 대화다. 순자는 이민 간 딸의 집을 찾은 엄마이자, 미국에서 자란 데이비드의 '한국 냄새 나는(smell likes Korea)' 외할머니다. 신변잡기적 영화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엄마 혹은 할머니로 불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자는 한국서부터 싸 들고 온 고춧가루를 꺼내놓기도 잠시, 마운틴듀를 마시며 레슬링 경기를 즐긴다. 쿠키를 만드는 대신 화투를 치고, 시원하게 욕을 하고, 남자 팬티를 입은 채 코를 곤다.

윤여정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윤여정 표 순자 연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전형적인 할머니,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전형적인 엄마, 나 그런 거 하기도 싫어요. 내가 조금 다르게 하고 싶어요." 

그러자 외신은 윤여정을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불렀다. 그는 또다시 손사래를 쳤다. 

"내 이름은 윤여정이고, 나는 그저 나 자신이고 싶어요." 

연기 인생 내내 그는 '나 자신'이고 싶어 했다. 전형적인 인물에서 벗어나고자 애썼고, 틀을 거부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작품이 한 번 성공을 거두고 나면 주류 영화에 안주하기 마련이지만, 윤여정은 아무도 가지 않는 스크린의 가장자리를 개척했다. 중심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성 캐릭터의 전형을 뒤집었다. 그의 행보가 멀고 험할지언정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다. 
   
 영화 <화녀>에서 ‘명자’ 역으로 열연한 배우 윤여정. 이듬해 <충녀>에 출연하면서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됐다.

영화 <화녀>에서 ‘명자’ 역으로 열연한 배우 윤여정. 이듬해 <충녀>에 출연하면서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됐다. ⓒ 한국영상자료원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1971)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주인집 남자와 가정부 '명자'의 불륜을 다룬 이 영화는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대중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보호받는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극장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욕망하는 여성' 명자를 앞세운 이야기는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의 연기는 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며, 여성의 얼굴을 덮고 있던 분칠을 말끔히 지워냈다. 가상의 세계를 거침없이 누비는 예측불허의 연기로 부르주아 가정의 치졸한 욕망을 꼬집었다며 평단의 인정을 받기도 했다. 대종상 영화제와 청룡영화상을 동시 석권했고, 이듬해 <충녀>(1972)에 출연하면서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1973년, 윤여정은 배우 인생을 관통하는 절정의 시기에 돌연 결혼 소식을 들고 나타난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니 사실상 은퇴 선언이었다. 윤여정은 <충녀> 속 명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혔고, 13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끝내 파경을 맞았다. 숱한 대표작을 내놓은 그였기에 이혼 소식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윤여정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속 깊은 아내 혹은 헌신적인 엄마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조강지처나, 모성이 부각되는 역할로 복귀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 그간의 공백기를 안정적으로 메울 수 있다는 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배우 생활 재개 후, 그는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난 작품에 뛰어들었다. 납작한 자세로 보편적인 신파 영화에 편입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할에 한계 두지 않는 그녀의 도전
 
 영화 <어미>와 <바람난 가족>을 시작으로 <돈의 맛>에서 호연을 펼친 배우 윤여정.

영화 <어미>와 <바람난 가족>을 시작으로 <돈의 맛>에서 호연을 펼친 배우 윤여정. ⓒ 한국영상자료원


그는 복귀작으로 영화 <어미>(1985)를 선택했다. 납치돼 사창가에 팔려나간 딸을 대신해 인신매매 일당에게 복수하는 엄마 역할이었다. 어미의 이름을 빌려 염산을 붓고, 칼을 휘두르는 등 섬뜩한 복수극을 벌였다. 남성 대리자가 아닌 엄마가 직접 복수를 자행하는 한국 영화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년 여배우 대부분이 '그냥 엄마' 역할로 기능하던 시절, 윤여정은 보기 드문 배우의 얼굴로 보란 듯이 돌아왔다. <바람난 가족>(2003)에서는 죽어가는 남편을 두고 성욕을 감추지 못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병한' 역을, <돈의 맛>(2012)에서는 자신의 권력으로 젊은 남자를 착취하는 재벌 집안의 안주인 '금옥' 역을 연기했다. 그는 대중이 기억하기 쉬운 엄마로 남는 대신, 그늘 속 가려져 있던 중년 여성의 욕구를 들춰냈다. 엄마 역할의 짜릿한 변주로 윤여정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한 영역임을 공고히 한 셈이다.

이후에는 할머니 역을 연이어 맡았다. 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박카스 할머니'와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를 연기했다. 윤여정의 연륜이 만개한 영화 <미나리>에서는 낯선 미국 땅에 뿌리 내린 할머니 역을 맡았다. 고전적인 할머니 상을 비틀며, 여성 캐릭터의 생명을 다시금 연장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충무로의 여성 서사를 새로 써 내려 간 것이다. 

윤여정이 걸어온 길은 엄마 혹은 할머니의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고행이었다. 고집 센 엄마, 헌신적인 할머니의 이미지로 그를 넘겨짚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윤여정은 역할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를 스스로 갱신하며, "나이 든 여배우는 빤하다"는 일각의 트집을 아주 근사하게 깨부쉈다. 

한국 영화계에서 배우 윤여정이 지니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윤여정은 그냥 엄마도, 할머니도, 한국의 메릴 스트립도 아니다. 이름 석 자로 여성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보하는 배우, 윤여정은 윤여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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