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IA 타이거즈의 투수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KIA의 마운드를 이끌었던 에이스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이 FA 시장에서 고심 끝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면서 당장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가 비었기 때문이다.

양현종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시점은 FA 시장에서 구단과 선수들의 계약이 어느 정도 정리된 상황이었다. 구단은 스프링 캠프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임에도 선수의 도전 의사를 존중했지만, 당장 비게 된 로테이션 한 자리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KIA는 2019년 5월 김기태 전 감독이 물러나고 박흥식 전 퓨처스 감독이 잠시 1군의 감독대행을 맡았던 시점에 리빌딩을 진행하면서 젊은 선수 자원 육성에 몰입했다. 특히 선발투수들의 부상으로 대체 자원이 필요했을 때 구원투수들을 임시 선발로 등판시키지 않고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선발투수 자원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양현종의 공백, 자체 육성 선발투수들의 무한 경쟁 돌입

KIA 스프링 캠프에선 무려 6명의 선발투수 자원들이 경쟁에 돌입했다. 애런 브룩스와 다니엘 멩덴 두 외국인 선발투수들이 들어가는 2자리를 빼면 로테이션 운영에 따라 3명 또는 4명만 로테이션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일단 지난해에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던 이민우와 임기영도 경쟁 대상이었다. 임시 선발 경험을 쌓았던 김현수와 장현식도 경쟁에 참가했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선발했던 왼손 투수 이의리와 2차 지명에서 선발한 장민기에게도 경쟁 기회를 부여했다.

이들 중 신인 왼손 투수 이의리의 데뷔 경기는 4월 4일, 시즌 두 번째 경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원래 개막전이 예정되어 있었던 4월 3일 브룩스가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하고, 그 다음 날 경기에 2선발로 등판하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런데 4월 3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면서 서울의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4경기가 모두 잔여 경기로 밀렸다. 브룩스의 등판이 4일로 하루 밀리고 멩덴의 등판이 6일로 그대로 유지되면서 이의리의 데뷔 경기는 8일로 밀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외국인 투수들과 국내 투수들의 선발 로테이션 일정을 각각 다르게 관리하게 됐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브룩스와 멩덴은 당분간 4일 휴식 후 등판을 유지한다. 이에 따라 4일에 등판한 브룩스는 9일에 광주에서 열리는 홈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하게 됐다. 때마침 올해 가족들과 함께 입국했는데, 9일 홈 개막전에서는 브룩스 가족들의 시구와 시타가 예정되어 있어 브룩스에게는 의미있는 선발 등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이드암 선발투수 임기영도 브룩스, 멩덴과 함께 4일 휴식 로테이션을 소화한다. 이 3명의 선발투수들을 제외하고 경험이 적은 나머지 선발투수들에겐 좀 더 긴 휴식을 부여한다. 김현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에는 이민우를 롱 릴리프로 동반 투입했는데 7일 경기에서 김현수가 3.1이닝, 이민우가 2.1이닝을 책임졌다.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는 투수 자원들을 최대한 확보한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KIA는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3연전 중 2경기에서 연장 혈투를 펼쳤지만, 이러한 투수 운영 덕분에 투수들의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특히 이승재는 7일 9회말부터 11회말까지 3이닝 2탈삼진 퍼펙트 피칭으로 다른 구원투수들의 부담을 줄이고 구원승까지 챙겼다.

장현식, 장민기 등은 상황에 따라 롱 릴리프로 활용하거나 짧은 연투로 투입되기도 한다. 장민기의 경우 8일 경기에서 이의리의 뒤를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 7타자를 상대하면서 1.1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이틀 연속 연장전을 소화한 팀의 투수 운영에 숨통을 틔워줬다. 

양현종의 빈 자리, 이의리로 희망을 봤다

KIA가 일부 선발투수들을 4일 휴식으로 돌리면서 최대한 많은 선발 자원들을 활용하는 이유에는 신인 왼손 투수 이의리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왼손 선발투수인 양현종이 떠나면서 생긴 빈 자리 덕분에 왼손 투수였던 이의리는 데뷔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의리에게 첫 시즌부터 많은 이닝을 한꺼번에 맡길 경우 부상의 위험이 있었다. 이렇듯 선발 로테이션에 처음 진입한 투수들을 활용할 때 대부분의 팀들은 그 투수의 몸 관리를 위해서 이닝이나 투구수를 제한한다. 8일에 데뷔 경기를 치른 이의리는 5.2이닝 84구를 던진 상황에서 장민기로 교체됐다.

신인 선발투수가 호투하며 선발 로테이션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때 이들에게 휴식을 주는 방법으로는 시즌 중간 휴식 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서 잠시 빼거나 시즌을 일찍 끝내는 방법이 있었다. 이럴 경우 포스트 시즌에서 해당 선수를 활용할 수 없다는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성적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KIA는 일부 투수들을 4일 휴식으로 운영하면서 선발 경험이 적은 다른 투수들에게는 보다 넉넉한 휴식을 부여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면 이의리는 첫 시즌에 넉넉하게 휴식을 취하며 혹사를 피할 수 있고, KIA는 만일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경우 이의리를 10월 말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된다.

8일에 선발로 등판했던 이의리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특히 6회말 2사까지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피칭으로 특급 신인이라 불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이의리는 6회말 2사에서 이정후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박병호에게 홈런 한 방을 맞았다. 그리고 김웅빈에게 연속으로 안타를 허용한 뒤 장민기로 교체됐다(3피안타 3볼넷 3탈삼진 2실점).

8년 만에 거둔 김재열의 값진 승리

이의리와 장민기의 뒤를 이어 등판한 KIA의 세 번째 투수는 김재열이었다. 8회말 1사에서 마운드에 올랐던 김재열은 첫 타자부터 볼넷을 허용했고, 다음 타자에게는 몸 맞는 공을 허용했다. 여기서 보내기 번트로 1사 2,3루 위기에 몰렸다.

1-3으로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결정타를 맞는 순간 승부는 완전히 기울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재열은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고, 뒤이어 유격수와 포수로 이어진 픽오프 플레이 덕분에 실점 없이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여기까지의 경기 내용은 김재열에게 있어서 익숙한 상황이었다. 사실 김재열은 2014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7라운드(71번)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뒤 한 번도 승리투수가 된 적이 없었던 투수로, 선수로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퓨처스리그에서만 보냈다.

김재열은 롯데에 있던 4년 동안 한 번도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퓨처스리그에서만 선발로 몇 경기 나왔다. 2017년 시즌이 끝난 뒤 롯데에서 방출된 김재열은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사회인 야구 팀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사회인 야구 팀에서 활동하는 동안 야구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공을 던진 것이 화제가 되어 김재열은 다시 한 번 프로 팀에서 뛸 기회를 얻었다. 2020년 KIA에서 먼저 연락이 오면서 김재열은 다시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고, 9월에는 육성선수에서 정식 선수로 신분이 전환됨과 함께 드디어 1군 등록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시즌엔 개막전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그러나 KIA가 이틀 연속 연장전을 치르면서 구원투수 자원들의 피로가 컸고, 이로 인하여 퓨처스 팀에서 투수 2명을 급하게 불러 올렸다. 변시원과 함께 서울로 이동한 김재열은 이 날도 추격조 역할로 마운드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김재열이 이닝을 마친 직후, 9회초 KIA의 타선이 6안타를 묶어 대거 4득점하며 역전에 성공했다(5-3). 8년 만에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김재열은 첫 타자를 아웃으로 잡고 볼넷을 내준 뒤 이준영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준영이 나머지 왼손 타자 2명을 범타 처리하고 경기를 끝냈다. 이준영도 7년 만에 첫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방출의 설움을 딛고 재기한 김재열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감격적인 프로 첫 승리였다. 경기가 끝난 뒤 윌리엄스 감독은 각각 프로 첫 승리와 첫 세이브를 기록한 김재열과 이준영을 따로 불러 축하의 의미로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렇듯 KIA는 그 누구보다 컸을 양현종의 빈 자리를 가용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메우고 있다. 지난해 윌리엄스 감독과 박흥식 전 퓨처스 감독은 서로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가용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등 팜을 강화했고, 이 덕분에 개막 첫 주부터 연장전을 2경기나 치렀음에도 그 여파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외부 영입을 통한 보강의 장점은 즉시 전력 투입이 가능한 자원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외부 영입 과정에서 상대 팀에 선수 자원 보상을 해 줘야 하기 때문에 기존 선수 자원을 내줘야 하는 손실이 있다. FA 영입의 경우 보상선수와 함께 금전적인 부담까지 갖게 된다.

자체 육성의 좋은 점은 그동안 기회를 받지 못했던 팀의 다른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양현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KIA의 계획이 올 시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자.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