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나도 한 번은 날아오르고 싶어서." (3회, 덕출)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인물들은 모두 '한 번은 날아오르고 싶어' 안간힘을 쓴다. 20대 발레리노 채록(송강)은 마음의 상처와 부상을 딛고 무대에서 날아오르려 하고, 70세 할아버지 덕출(박인환)은 평생 하고 싶었던 발레를 온전히 배워 날아보려 한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덕출의 손녀 은호(홍승희)도, 오랜 기간 주부로 지내다 다시 일을 시작한 은호의 엄마 애란(신은정)도, 의사의 길을 때려친 막내 아들 성관(조복래)도, 정치 백수인 사위 영일(정희태)도 자신의 꿈을 찾고,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들이 꿈을 이뤄가는 길은 그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길이 보이지 않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길은 왜 이토록 힘든 걸까? 아무리 원하고 노력을 해도 좌절을 피해갈 수 없고,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내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 따뜻한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때로는 뭉클함에 눈물짓게 하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오래된 편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이(어쩌면 현실 속 우리들이) 나래를 펼치는 것을 방해하는 편견들에 대해 살펴본다.

곱게 늙어가는 게 대체 뭔데요? : 연령차별주의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을 향해 도약하는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나빌레라>의 포스터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꿈을 향해 도약하는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나빌레라>의 포스터 ⓒ tvN

 
9살 때부터 발레리노를 꿈꿔왔던 덕출. 하지만 발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70세가 된다. 덕출이 그 나이가 되는 동안, 가정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삼남매는 모두 성장해 독립한다. 직장에서 은퇴해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덜어낸 후에야 그는 용기를 내 발레를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덕출이 '발레를 배우고 싶다'라는 뜻을 비쳤을 때, 그에게 돌아온 건 '아니, 할아버지가 무슨 발레를?'이라는 놀람과 비아냥 뿐이다. 발레를 하고 있고 발레를 했었던 채록과 승주(김태훈)마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덕출이 발레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모진 말들을 쏟아낸다.
 
"자식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아요! 그냥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동네 산책이나 하면서 그렇게 곱게 늙어가라구요!" (해남, 3회)
"어르신들은 산에 다녀해야 해요." (성숙, 4회)

 
이런 표정과 말 속엔 '연령차별주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령차별주의는 개인을 나이에 따라 규정하는 것으로 특정 연령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고정관념,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적인 태도로 구성된다. 특히, '죽음'이라는 태생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노화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에 노년계층은 '연령차별주의'에 따른 편견에 가장 쉽게 노출된다.
 
연령차별주의가 내재된 사회에서 노인은 개인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덕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70대 노인이라면 텔레비전을 보며 동네 산책을 하고 등산을 하며 지내는 것이 '정상'이라는 편견 속에 이와 다른 덕출의 모습은 무시되고 폄하된다. 더구나 이런 연령에 따른 편견은 덕출 자신에게도 내면화되어 있었다. 덕출은 드라마 초반 발레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고, 아내 몰래 발레 연습복을 빤다. 이는 덕출 스스로도 '내 나이에 발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누군가의 꿈이 찬반대상인가요? : 가족주의
 
가족들이 덕출을 개인으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는 연령차별주의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주의적 가족주의도 한 몫 하고 있었다.
 
4회, 내면화된 연령차별주의를 극복하고 마침내 '정면돌파'를 시도한 덕출을 둘러싸고 가족들은 '가족회의'를 연다. 삼남매와 사위, 며느리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덕출이 발레를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를 따진다. 하지만 아무도 당사자인 덕출에게 왜 발레가 하고 싶은지, 그게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발레를 하는지 등은 전혀 물어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들 말한다.
 
"대체 언제 부터예요, 아버지. 말이 돼요? 발레요? 나만 반대야?" (성산)
"아버지 엄마랑 등산이나 다니세요. 나는 아버지 발레 좋아하는지도 몰랐는데." (성숙)
"아버지 사진 그게. 남들이 알면 뭐라 하겠어요?" (성산)
"아버지 연세에 발레가 가당키나 해요. 다치면 엄마만 고생인데." (성숙)
 

이런 말들은 사람을 가족 안에서의 역할로만 바라보는, 그러니까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인보다 더 중시하는 뿌리깊은 '가족주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가족들은 덕출을 연로한 아버지로만 간주하고, 자신만의 꿈을 가진 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혹여 발레를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자칫 자신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런 가족들 앞에서 덕출은 입을 꾹 다물고 만다. 하지만 막내 아들 성관만은 이렇게 일침한다.

"아버지가 발레하는 게 뭐 어때서? 이게 가족회의 할 일인가?"
 
 덕출은 내면화된 연령차별주의를 극복하고 발레에 대한 열정을 당당히 실천해 간다.

덕출은 내면화된 연령차별주의를 극복하고 발레에 대한 열정을 당당히 실천해 간다. ⓒ tvN

 
남자라서 여자라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 : 가부장제
 
한편, 성산의 아내 애란은 오랫동안 아내와 엄마로서만 살아온 인물이다. 은호가 어렸을 때, 우는 아이를 두고 베란다에서 홀로 훌쩍이며 친정엄마에게 "나 일하고 싶어"라며 하소연했을 만큼, 애란은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꿔왔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이분화하고, 돌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며 특히 육아는 엄마의 몫임을 강요하는 가부장제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애란을 옥죄어 온다. 애란은 딸이 성인이 된 후에야 마침내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애란이 면접에 합격한 날 남편 성산(정해균)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고 싶음 해야지. 그래. 해. 허락할게. 대신 당신 이제까지 해왔던 내 아내, 은호 엄마로서의 역할 소홀히하지마, 내가 허락해주는 조건이야." (성산, 3회)
 
이는 여성을 소유물처럼 대하면서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길 바라는 가부장적인 억압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사실 가부장제의 억압은 애란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덕출이 9살 때 발레를 하고 싶다 했을 때 덕출의 아버지는 "사내 자식이 분 바르고 춤이라도 출 작정이야?"라고 그의 꿈을 일축한다. 덕출 역시 가부장제에서 규정지은 '남성다움'을 강요받아왔던 것이다. "먹고 사느라 처자식 건사하느라 언감생심 꿈도 못꿨습니다"(1회)라는 덕출의 대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했던 남성의 비애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했다.
 
'노오력' 하면 다 된다고요? : 능력주의

드라마는 뒤늦게 꿈을 찾아 나선 어른들 뿐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고 싶은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젊은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계급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기회는 공정하며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능력'은 좋은 대학을 나와 전문직을 갖거나 좋은 회사에 다니며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이런 삶만이 '성공'한 삶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이렇게 살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어딘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의사 가운을 벗어던진 성관과 '취준생' 은호는 이런 획일적 잣대에 따른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능력주의의 기반이 되는 '기회의 공정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개인의 가치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은 채, 획일적 잣대에 의한 성공만을 강요하는 체계는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아버지만큼은 살기 위해 부당함까지 견뎌내며 안간힘을 다했으나 결국 입사에 실패한 은호는 5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기분 알아? 죽어라 달렸는데 숨이 턱끝까지 차는데 앞으로 갈 수 없는 거."
 
이는 획일적인 '능력주의'의 덫에 빠진 젊은이들이 느끼는 절망을 너무나 잘 표현한 대사였다. 이런 은호에게 아버지 성산은 "그것도 못하냐"며 '네 잘못'이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은호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은호의 분노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다독여준 어른 덕출처럼 이렇게 말해 줄 수는 없는 걸까?

"네 잘못 아니야. 알지? 잘 견뎠고 잘 소리쳤어. 어제 아주 좋았어."(5회)
  
 은호는 최종면접에서 낙방해 대기업 입사에 실패하지만,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은호는 최종면접에서 낙방해 대기업 입사에 실패하지만,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 tvN

 
이처럼 <나빌레라>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꿈을 추구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들로 인해 좌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의 힘을 다해 편견에 저항하고 있다. 덕출은 남편의 힘겨웠던 삶을 이해한 아내 해남(나문희)의 응원에 힘입어 당당하게 발레 연습을 한다.

애란은 남편의 비아냥을 "웃겨. 심성산, 당신 허락이 왜 필요한데?"(3회)라고 일축하고 열정적으로 일한다. 은호는 '뭘 할 때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고, 성관은 다른 이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극 중 편견 어린 목소리들은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 덕출의 모습에 사람들은 '할아버지도 발레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애란, 은호, 성관을 통제하려했던 목소리들도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편견에 저항하면서 날아오를 발판을 다지고 있는 이들이 극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나빌레라>의 인물들이 현실에서 편견과 싸워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길, 사회 제도는 물론 우리 각자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편견들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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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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