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뭔가 배워 나간다는 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선택지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걸 확인한 순간 또다시 향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놓인다. 그래서 무언가를 평생 배워나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지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배움의 한가운데서 인생의 스승을 하나쯤은 만난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스승으로 삼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배워왔던 그 배움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자 새로운 시각 갖게 되는 기회다.

그 스승 또한 사람이라면 스승도 제자를 만나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제자가 가진 새로운 관점의 질문들과 패기, 열정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는 서로 상호 작용하며 각자 좀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흑산도 유배생활 중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에는 위에서 언급한 스승과 제자의 상호 작용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는 흑산도로 유배를 온 정약전(설경구)과 같은 곳에서 나고 자라 물고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정약전은 자신의 동생인 정약종, 정약용(류승용)과 함께 그 당시 실학과 같이 들어왔던 천주교의 교인이 되었는데 이후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 시작된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창대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틈틈이 혼자 여러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탐구하는 청년이다. 그는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점점 난이도 높은 책을 읽음으로써 향후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길 원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 정약전과 창대의 만남은 실용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만남처럼 보이기도 한다. 약전은 자신의 동생 약용이 올바른 정치에 대한 글들을 무수히 쓸 때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탐구보다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활동 등 좀 더 실용적인 것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다 생물들에 대해 정리한 '자산어보'(玆山魚譜)다. 그는 성리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 창대는 글을 읽고 배우면서 성리학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길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대는 물고기 백과사전을 만드는 정약전이 못마땅하다. 성리학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그저 잘못된 길을 가는 정치인으로 보일 뿐이다.
 
 영화 <자산어보> 장면

영화 <자산어보>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다. 정약전은 다양한 바다 생물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써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 작업을 하는 데에는 창대가 가진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창대는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어려운 책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데에는 그것을 쉽고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에겐 박학다식하고 경험이 많은 정약전이 필요하다. 그 지식에 대한 배움은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성리학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씩 가까워진다. 배움의 열망은 그들이 상대방을 향해 낀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인간적인 면들을 온전히 바라보게 만든다.

창대는 정약전에게 여러 책에 대해 배워 나가며 자신만의 지식을 쌓아간다. 그러면서 그는 성리학에서 내세우는 것을 바탕으로 좋은 정치를 실제로 행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영화 속에서 창대는 양반인 아버지(김의성)의 혼외 자식이다. 그래서 그에겐 관직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 시험조차 볼 수가 없어 계속 공부를 해나가서 자신의 배움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 시험의 기회가 주어져 관직에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창대가 보기에 그저 쓸데없어 보이는 책을 쓰고 있는 정약전이 답답하기만 하다. 반대로 창대를 바라보는 정약전의 마음 속엔 성리학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정약전의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실용주의자 정약전과 이상주의자 창대의 만남

스승은 제자에게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제자의 몫이다. 정약전의 지식과 혜안에 감탄하며 책을 배우던 창대는 스승으로 삼은 정약전의 총명함에 완전히 빠져든다. 하지만 한참을 그에게 책을 배운 이후 그가 선택한 삶은 스승 정약전이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영화 속 두 사람은 서로 아주 먼 관계였다가 조금씩 가까워져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가, 이내 결국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작품에선 큰 위기 상황이 그려지지 않지만, 스승과 제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그 상황 자체가 두 사람에게 닥쳐오는 가장 큰 위기이자 또 다른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보는 관객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유배시절 쓴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구성한 영화다.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는 물고기에 대하여 박학다식하다고 적혀있고 자산어보를 완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둘이 실제로 스승과 제자 관계였는지 그리고 각자 어떤 길을 가게 되었는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흑산도(黑山島)의 모습을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담는다. 흑백으로 구성된 영화는 마치 그 당시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흑백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비추는 흑산도 주변의 모습이나 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에선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친다.

자산어보가 흑산어보가 아닌 이유는 창대라는 인물의 의견이 영향을 주었다고 실제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혀있다. 흑(黑)은 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어둡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검다는 뜻을 가지면서 부정적 의미가 없는 또 다른 글자인 자(玆)를 가져와 자산어보라는 이름으로 책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책의 제목을 정할 때도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정약전이라는 인물은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학자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정약전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일반인들의 삶과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이런 생각을 가진 정약전이 만인이 평등하고 모두가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약전이 최하층 계급인 창대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최대한 그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됨됨이를 더욱 강조한다.   
 
 영화 <자산어보> 장면

영화 <자산어보> 장면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약전의 열린 생각은 가거댁(이정은)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가거댁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수발을 드는 가거댁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양반이지만 집의 청소를 하려고 한다거나 최대한 빚을 지지 않으려고 돈을 건네는 등의 행위가 그것이다. 또한 관련하여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가거댁과 창대, 약용 셋이 옥수수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때 가거댁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씨만 중하고 밭은 귀한 줄 모른다." 여기에는 아이를 낳는 여자는 홀대받고 씨를 뿌리는 남자들만 대우를 받는 그 시대 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거댁의 말을 들은 정약전은 그에 대해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 하찮게 취급받던 여인의 말에도 반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영화적 설정이었지만, 정약전의 열린 사고방식을 보여준 하나의 에피소드였다. 

결국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 즉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로 보인다.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가르쳐주고, 제자가 품고 있는 이상향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가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준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다.

이번이 첫 사극 연기인 설경구는 열린 생각을 가진 정약용처럼 보이고, 변요한은 그가 가진 퉁명스럽지만 총명한 이미지로 청년 창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허구가 다수 섞여있다 할지라도 이 영화에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정과 지식이 담겨 있다. 

영화는 정약전과 정약용이 서로 주고받았던 시를 배우의 목소리를 빌려 들려주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관객들에게 그 시의 한자를 그대로 화면에 보여준다. 화면으로 제시되는 한시는 실제로 감정을 담아 그 한시를 읽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 화면과 함께 하나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시와 어우러진 이 영화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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