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본의 실사영화는 한때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50년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받은 <라쇼몽>의 구로사와 아키라, 세계 영화감독들의 극찬을 받는 <동경 이야기>(1953)의 오즈 야스히로, <하나비>(1997)의 기타노 다케시 같은 유명감독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일본 영화계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어느 가족>(2018)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스파이의 아내>(2020)를 연출한 구로사와 기요시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감독이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강세인 만화영화(애니메이션)가 일본 영화의 주류처럼 보이는 현상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미야자키 하야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와 <썸머 워즈>(2009)의 호소다 마모루, <초속 5센티미터>(2007), <너의 이름은>(2017)의 신카이 마코토 같은 거장이 즐비하다.
 
<스파이의 아내>는 아사히 텔레비전의 단막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하여 인기를 얻어야 비로소 투자가 들어온다는 얘기다. 문화산업으로 수용되는 영화에는 예술적 요소뿐 아니라, 기술과 자본이 필수적이다. 미국 자본이 투입되어 마무리된 <카게무샤>(1980)의 쓰라린 과거가 되풀이되는 것이 일본 영화의 현주소다.
 
영화의 시공간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이미지.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스파이의 아내>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40년 일본의 항구도시 고베를 시공간으로 하는 영화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발발한 것이 태평양 전쟁이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대륙침략을 노골적으로 감행한다. 여기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던 부대가 관동군이다.
 
영화에서 만나는 공간은 고베에 국한되며, 부산과 한반도, 만주와 상해, 인도의 봄베이와 런던 및 샌프란시스코는 인물들의 대화로만 처리된다. 무역상(貿易商) 유사쿠가 자신의 조카 후미오와 함께 만주에 갔다가 고베 항구로 데려오는 여인 히로코와 흑백으로 처리된 관동군 필름으로 관객은 확장된 공간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영화의 시간은 상당히 확장돼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완전한 패망과 1년 후에 있은 사토코의 미국 방문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6년 이상의 시간 경과를 <스파이의 아내>는 포용한다. 영화의 시간이 객석에 가지는 의미는 2020년에 구식 영사기 필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제 관동군의 야만적인 행적의 확인일 것이다.
 
유사쿠는 정말 스파이였나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스파이'라는 단어였다. 본디 스파이의 사전적인 의미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기업에 침투하여 기밀을 알아내는 사람"이다. 유사쿠는 일본인이고, 그가 만주에서 얻어낸 극비자료는 일본 관동군이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천연두를 비롯한 일군의 악랄한 생체실험을 한 것이다.
 
일본인이 일본군의 정보로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것인데, 그를 스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유사쿠는 자신을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자)'이라고 선언한다. 무의미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미국이 개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패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유사쿠는 확신하고 있다.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사토코.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이미지.

영화 <스파이의 아내>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이 지점부터 <스파이의 아내>는 흥미를 자아낸다. 유사쿠의 눈에 사토코는 언제나 철이 없고 귀엽기 그지없는 여성이다. 반면에 사토코에게 유사쿠는 절대적인 사랑과 의지의 대상이다. 그가 만주에서 돌아왔을 때 마중 나간 사토코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남편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은 그들 관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사토코와 유사쿠가 어떤 인연으로 부부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더욱이 헌병분대장 타이지가 고베로 전근 온 것이 사토코 때문이라는 유사쿠의 말에 담긴 함의도 잘 모른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오직 현재에만 집중돼있다.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삼각관계의 요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감독의 노련한 속임수처럼 보인다.
 
유사쿠와 타이지
 
세계주의자 유사쿠는 언제나 깔끔한 정장과 넥타이 차림이다. 그는 우아하게 위스키를 마시며, 최신의 영사기를 돌려가며 가정용 영화를 제작하는 호사가다. 그의 비밀금고 옆에 자리하고 있는 체스판에 놓인 말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국가나 사회의 대격변이나 역사적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 처한 개인의 운명 같은 것 말이다.
 
반면에 타이지는 언제나 일본제국의 헌병 분대장 제복 차림이다. 군화와 군모는 물론 빳빳하게 다려진 제복과 군도의 날카로운 선이 그를 웅변한다. 타이지의 집무실 한가운데 적혀있는 한자 '忠孝(충효)'는 그의 세계관 전체를 압축한다. 국가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이며,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인 그는 제국주의의 충실한 수호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대결과 각축 한가운데에 위태롭게 떠 있는 섬이 사토코다. 그녀가 남편이 부재중인 집으로 타이지를 초대해 위스키를 권하는 장면은 유사쿠와 타이지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일제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영국의 술을 마실 수 없다면서 위스키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개 방향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왜 '아내'에 방점이 찍혀 있는가

<스파이의 아내>에서 주인공은 유사쿠가 아니라 사토코다. 사토코의 눈으로 보는 제국주의 일본과 관동군 예하 731부대의 생체실험 만행, 일제의 패망과 유사쿠의 실종 같은 주요한 사건은 모두 사토코의 시선에 포착된 것들이다. 이것은 구로사와 기요시가 현대 일본의 치명적인 문제를 교묘하게 피해 나가기 위한 고육책이자 전략이다.
 
나치 독일의 후예 도이칠란트와 달리 일본은 지금까지 태평양 전쟁 전후에 벌어진 일제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 어떤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확인조차 거부해온 나라가 현대 일본의 실체다. <스파이의 아내>에서도 유사쿠가 입수한 문제의 흑백필름이 연합군의 수중에 들어가 일제의 야만성을 폭로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객석을 채운 관객들만이 '아, 저것이 731부대가 자행했다는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생체실험의 실상이구나' 하는 정도를 알아차릴 뿐이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스파이'라 불린 유사쿠의 행적이 아니라, 스파이의 아내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토코의 행적을 좇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영화의 주인공은 유사쿠가 아니라, 사토코가 된다.
 
사토코가 갇힌 정신병동은 6호실이다. 안톤 체호프가 1890년 사할린 여행을 마치고 나서 탈고한 중편소설 <6호실>(1892)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했던 멀쩡한 의사가 광인으로 몰려서 죽음을 맞는다는 소설 <6호실>. 사토코는 일본 전체가 미쳐 돌아갈 때 스스로 광인을 자처함으로써 시대의 증인이 된 셈이다.
 
타이지가 후미오의 손톱 열 개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생짜로 뽑는 장면은 당대 일본의 광기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제국주의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남편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아 일제의 본질을 소극적으로나마 폭로하는 사토코. 아마 그것이 구로사와 기요시가 도달한 최종지점은 아니었을까.
구로사와 기요시 스파이의 아내 731부대 생체실험 6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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