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과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대형마트에 익숙해져 있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OO슈퍼'나 'OO상회'로 불리던 작은 구멍가게들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마치 보물창고 같았던 그곳에는 눈깔사탕부터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넘쳐났고, 100원짜리 동전이라도 몇 개 생기는 운 좋은 날엔 어김없이 슈퍼로 달려가 평소 눈여겨보던 간식거리를 챙겨 나오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던 구멍가게들은 편의점과 마트에 밀려 하나둘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나를 설레게 했던 그 구멍가게는 내 추억의 한 페이지에서 시간이 멈춘 채 그대로 박제되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 가게의 문을 열 때면 참 행복했던 그때가 가끔 그리워지곤 했다.
 
tvN에서 방영 중인 <어쩌다 사장> 속 '원천상회'는 어릴 적 내가 사랑했던 그 구멍가게와 닮아 있었다. 오래된 것에서만 느껴지는 향수와 감성을 품은 시골의 작은 가게는 소박하지만 정겨웠던 나의 추억 속 슈퍼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무려 사장이 차태현과 조인성
 
 tvN에서 방영 중인 <어쩌다 사장> 한 장면.

tvN에서 방영 중인 <어쩌다 사장> 한 장면. ⓒ tvN

 
하지만 나의 추억 속 슈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가 있다. 무려 사장이 차태현과 조인성이라는 거다. 세상 푸근한 웃음으로 동네 오빠처럼 살갑게 사람을 대하는 차태현과 대충 막 찍어놔도 화면에 슬로우 효과만 걸면 백발백중 화보를 만들어버리는, 얼굴 자체가 몹시 재미난 조인성이 사장이란다. 아무리 나의 기억을 몽땅 헤집어 봐도 저런 사장님들은 평생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이 사장님들, 태생부터 원천상회 사장님들이었던 것처럼 참 맛깔난다.
 
일찍이 '원천상회'는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의 핫플레이스이자 원천리의 교통과 물류, 오락문화의 허브이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표를 끊어주는 발권 기능을 갖춘 교통의 출발점이자, 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용품과 식재료, 먹거리를 납품받아 원천리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물류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인형뽑기로 오락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라면에 대게를 넣고 끓여주는 요식업의 기능도 갖춘 만능가게이다. 무엇보다도 원천리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초보 사장님들, 은근히 할 일도 많고 사람들 왕래도 잦은 원천상회를 잘 지킬 수 있을까. 일단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이 사장님들 능력자들이다. 주로 가게업무를 담당하는 차태현은 3일 만에 가게 영업을 간파했고, 요식업을 담당하는 조인성은 손님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요리를 선보인다. 이 사장님들 인맥은 또 어찌나 화려한지, 사장님들이 불러 모은 알바들의 면모도 심상치 않다.
 
반나절 만에 원천상회의 영업 시스템을 파악하여 사장을 가르치는 똘똘이 박보영, 동네 면사무소 직원들과 섞여 있어도 전혀 위화감을 찾을 수 없던 부지런한 윤경호, 시어머니의 전복장으로 몇 회째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좋은 엄마 김재화, 조인성의 "나랑 있잖아" 말 한마디로 여성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구원투수 박경혜, 가자미 세 마리 정도는 한 번에 낚아 올리는 낚시왕 박병은, 울렁거리는 파도 앞에서도 멀미와는 손절하는 초보 낚시꾼 남주혁까지 평소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의 알바 능력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알바는 먹방계의 신성 신승환이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경솔하게 젓가락을 내려놓지 않는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수차례 밭을 드나들며 토마토를 따먹을 만큼 치밀하다. 올챙이국수에서 열무김치, 열무김치에서 흰쌀밥을 거쳐 전복장, 오이지무침으로 물 흐르듯 다음에 먹을 것을 찾아내는 동물적 감각도 갖췄다. 불은 호빵은 그냥 먹지 않는다며 전자레인지로 찜기 효과를 낸 후 먹는 섬세함마저 갖춘 '먹달인' 신 선생은 알바생과 먹깨비의 경계에서 큰 웃음을 던져줬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계속 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사람 때문인 것 같다. 저런 외모의 소유자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을 깨고 조인성은 가게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허물없이 말을 건넨다. 심지어 너무 친근해 일말의 경계마저 사라진다. 어르신들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따듯한 안부를 건네고, 젊은 친구들과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조인성도 결국 사람이다. 평범하지 않은 외모를 가졌을 뿐, 결국 그도 사람이었다.
 
넉살 좋은 차태현은 모르는 게 있으면 당당히 손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 일을 처리한다. 세 아이의 아빠라는 장기를 살려 뽑기왕 동원이가 인형뽑기를 할 때는 옆에서 응원해주고, 부끄럼쟁이 꼬마 정섭이가 밥을 먹지 않자 피자를 잘 먹었던 걸 기억해내고 피자를 건넨다. 한번 들렀던 손님은 잊지 않고 기억해 두 번째 방문에는 일상사를 주고받는 사이로 만드는 그는 영락없는 동네 사장님이었다.   

원천리에는 '사람'이 있다
 
원천리에는 사람이 산다. 평생지기 친구 '까불이' 할머니에게 '핀퉁아리'를 날리시는 '짹짹이' 할머니, 두 쌍의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 대게를 드실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대게를 꼭꼭 씹어 발라 드시는 건치 어르신들, 본인이 아침에 납품한 막걸리를 저녁에 손님으로 와 몽땅 먹어버리는 막걸리 사장님, 자식들이 크니 같이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다는 아버지의 해장길에 함께 동행한 두 딸과 그 딸의 아이, 누군지 모를 이에게 따듯한 커피를 공짜로 내어주기 위해 자판기 위에 동전을 올려놓는 인심 좋은 사장님이 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에겐 오래전에 잊힌 기억들이다. 정과 인심을 나누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골마을 한가운데 원천상회가 있다. 누군가의 마실에 종착역이 되기도 하고, 길을 떠나는 이들의 출발점이기도 한 그곳엔 특별한 사장님들이 있다.
 
원천상회는 어쩌다 사장이 된 차태현과 조인성이 발을 들인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마법의 장소가 되었다. 살아가다 어쩌다 한 번은 이런 사장님들이 있는 정겨운 가게를 만날 수 있을까? 파를 먹지 않는 손님이 조인성이 건네준 파를 맛있게 먹는 경이로운 경험이 가능한 그곳, 언젠가 한 번쯤은 나도 꼭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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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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