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은 지금으로부터 1444년 전에 역사무대에 데뷔했다. 그가 고구려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날은 서기 577년 4월 6일이다. 음력으로 3월 3일인 이날부터 고구려인들은 온달 신화의 성립 과정을 목격했다.
 
그의 데뷔 날짜는 <삼국사기> 온달열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이 577년 사건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날짜가 언급된다.  
 
"나라 풍속에 따라 3월 3일이면 항상 낙랑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고 짐승을 포획해 하늘과 산천의 신들에게 제사지냈다. 그날 왕이 사냥하러 나갔으며, 여러 신하들과 5부 병사들도 모두 따라갔다. 온달은 길러둔 말과 함께 따라갔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삼월삼짇날에 열린 이 행사를 '신수두 대축제'라고 불렀다. 이 축제의 부속 행사인 사냥대회에 온달이 참가했던 것이다. 신수두는 최고의 수두를 뜻했다. 수두의 의미를 <조선상고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민족은 우주의 광명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태백산 수림(樹林)을 광명신의 근거지로 생각했다. 그 뒤 인구가 번성하여 각지로 퍼져 나가자, 각 집단은 자기 거주지 부근에 태백산 수림을 모방한 수림을 조성하고 수두라 불렀다. 수두는 신단이란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삼짇날이 봄을 맞이해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거나 화면(花麪)을 만들어 먹는 날이었지만, <조선상고사>가 설명한 것처럼 본래 이 날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이 같은 종교적 성격은 조선 후기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1849년에 홍석모의 풍속학 서적인 <동국세시기>는 이렇게 설명한다.
 
"(충청도) 진천 풍속에 따르면,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여인들이 무당을 데리고 우담(연못 이름) 주변의 동·서 용왕당 및 삼신당에서 아이를 기원한다."
 
아이를 점지해달라고 기도하는 형태로 삼짇날의 종교적 의미가 변모되기는 했지만, 이는 고대 이래로 한민족 최고의 종교 행사 중 하나였다. 이 행사에 사용할 희생 제물을 마련할 목적으로 사냥대회를 열었고, 이때 온달이 참가했던 것이다.
 
<삼국사기> 온달열전은 "그가 말 달리는 것이 항상 앞서고, 잡은 것도 많아서 다른 사람 중에는 이 같은 이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활약이 너무 대단해 "왕이 불러 가까이 오게 한 뒤 성명을 물어봤다"고 열전은 말한다. 답변을 들은 평강태왕은 "놀라며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바보 온달'이 1등을 했기 때문이었다.
 
제우스에 대한 제사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 고대 올림픽이다.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이 온달이 참가한 사냥대회였다. 단순히 사냥대회에서 1등을 한 게 아니라 신성한 종교 행사에서 1등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관념에 따르면 온달의 등장은 신성한 사건이었다. 그런 온달이 바보 온달로 알려졌던 인물인 데다가 고구려 공주의 사실혼 배우자였으니 태왕은 물론 세상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577년에 온달은 세상을 연이어 놀라게 했다. 당시 중국 최강이었던 북주의 침공을 격퇴하는 데도 수훈을 세웠다.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날쌘 모습으로 적군 수십 명을 쓰러트리자 고구려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해 대승으로 끝났다고 온달열전은 말한다. 전투가 끝난 뒤의 논공행상 때도 온달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사냥대회 1등과 전쟁 수훈에 이어 온달 신화를 완성시킨 세 번째 요인은 평강태왕의 선언이었다. 사냥대회 1등 뒤에도 온달을 사위로 인정하지 않던 태왕은 북주를 물리친 뒤에 "너는 내 사위다"라며 예를 갖췄다. 이 세 가지 사건이 577년 4월 6일 이후 연달아 일어났고, 이것이 그 뒤 1444년간 이어질 온달 신화를 낳았다.  

고구려 영웅으로 거듭난 온달
 
 KBS 사극 <달이 뜨는 강> 한 장면.

KBS 사극 <달이 뜨는 강> 한 장면. ⓒ KBS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은 최근 방영분에서 온달이 고구려 영웅으로 부각되는 과정을 다뤘다. 하지만 온달 신화의 3대 요소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공주(김소현 분)의 지원과 온달(나인우 분)의 노력을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온달의 데뷔를 빛내준 신성한 요소들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북주와의 전쟁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공주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온달의 실제 역할을 왜곡되게 표현했다. 몰락한 부족인 순노부가 공주의 주도 하에 3백 정도의 소수 병력으로 참전했으며, 온달이 거짓 항복으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쓰러트렸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전사 온달' 만큼이나 '전사 공주'가 부각됐다.
 
드라마 속의 온달 부대는 정규군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로 출전했다. 하지만 실제의 온달은 고구려 정규군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의 활약이 전체 병사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달이 뜨는 강>의 최근 방영분은 전쟁 뒤에 태왕이 온달을 환대하는 장면에서만 실제 역사에 근접했다. 3대 요소 중 나머지 2개와 관련해서는 역사 기록과 동떨어졌다. 바보 온달이 영웅 온달로 거듭나는 역사적 순간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온달의 성공을 공주의 지원과 온달 자신의 노력이라는 관점으로 묘사하는 것은 현대적 관점에서는 타당하지만, 그 시대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고대인들은 노력하는 인간도 좋아했지만, 신의 은총을 받는 인간을 더 좋아했다. 고구려 사람들이 온달 신화를 만들어낸 데는 그의 성공이 그런 측면을 갖고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신수두 대축제 1등뿐 아니라, 북주와의 전쟁 및 태왕의 사위 승인에도 그런 요소가 개입돼 있었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사람 1명을 죽이는 것은 죄악시하면서도 전쟁터에서 100명을 죽이는 것은 나쁘게 보지 않은 것은 전쟁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인 관념과 무관치 않다. 전쟁 전에 제사부터 올린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전쟁은 신의 의지를 집행하는 거룩한 행위로 인식됐다. 그래서 전쟁 중의 인명살상이 죄악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성공과 신의 섭리
 
 KBS 사극 <달이 뜨는 강> 한 장면.

KBS 사극 <달이 뜨는 강> 한 장면. ⓒ KBS

 
온달 신화를 완성시킨 세 번째 요소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다. 군주는 하늘의 대리인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태왕의 승인은 온달을 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였다. 이처럼 신과 관련된 3대 요소가 온달의 데뷔를 빛내줬기 때문에, 온달이 고구려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인간의 성공과 신의 섭리를 과도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실체를 왜곡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진짜 원동력을 은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이 아닌 고대인의 성공 비결을 이해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을 성공한 인간으로 생각했던 고대 사회의 특징을 분석할 때는, 특정 개인의 성공이 종교적 요소를 얼마나 많이 포함했는가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고대인들은 '실력'과 '노력'에 더해 '신의 축복'도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달이 뜨는 강>은 온달의 성공을 오로지 인간적 관점으로만 묘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갖게 하는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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