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웹툰작가 조석은 지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마음의 소리>라는 개그 웹툰을 무려 14년 동안 연재하며 '웹툰계의 공무원'이라 불렸다. 연재기간 동안 인기캐릭터인 '애봉이'와 결혼도 했고 2015년과 2018년에 두 딸을 얻었다(첫째는 '율봉이'라는 캐릭터도 있다). 축구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그는 유럽 축구의 흐름을 코믹하게 풀어낸 <자율공상축구탐구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렇게 개그웹툰의 대표작가인 조석도 몇 차례 외도를 한 적이 있다. 바로 거대 물고기들에게 물을 빼앗긴 인간들의 삶을 그린 <조의 영역>과 멸망한 지구에 남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시크개그 <문유>가 그것이다(조석은 <조의 영역>과 <문유>를 통해 '조석 유니버스'를 넓혀가는 중에도 <마음의 소리>를 한 번도 휴재하지 않았을 정도로 개그 작가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이렇듯 한 장르에 특화된 예술가들은 자신이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미개발지구'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는 장르별 전문 감독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한 크리스찬 베일의 풋풋한 소년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 <태양의 제국>도 아카데미라는 '미지의 영역'에 다가가려 했던 최고의 상업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도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흥행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태양의 제국>은 2200만 달러의 흥행수익에 그쳤다.

흥행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태양의 제국>은 2200만 달러의 흥행수익에 그쳤다.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아카데미 감독상 탐냈던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

<죠스> <레이더스> < E.T. > 등을 크게 히트시킨 스필버그 감독은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와 함께 1970~198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흥행 감독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 E.T. >는 세계적으로 무려 7억92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10억 달러 흥행작이 흔한 요즘에 보면 대단치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티>가 개봉된 시기는 2010년대가 아닌 물가도 싸고 상영관도 턱없이 부족했던 1982년이었다.

스필버그 감독에게 열광한 것은 대중들뿐만이 아니었다. 스필버그는 1978년 <미지와의 조우>를 시작으로 1982년 <레이더스>, 1983년 <이티>를 통해 세 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보수적인 아카데미 투표인단은 스필버그에게 3연속 수상 실패를 안겨줬다. 그에게 '관객과 평단의 인정을 동시에 받은 이 시대 최고의 명감독'이라는 수식어까지는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아카데미의 외면은 스필버그 감독의 승부욕에 불을 지폈다. 3연속 수상실패를 통해 아카데미로부터 '어쩔 수 없는 상업 영화감독'이라는 낙인이 찍힌 스필버그 감독은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투표 인단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85년 인종차별과 남녀차별 문제를 건드린 <칼라 퍼플>을 만든 스필버그 감독은 2년 후 제임스 G. 발라드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태양의 제국>을 선보였다.

<태양의 제국>은 상하이에 살던 부유한 영국인 소년 제이미가 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주연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떡잎을 발견할 수 있는 영화다. 애초에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2200만 달러의 저조한 흥행수익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9개 부분을 휩쓸어 간 <마지막 황제>와 맞붙으면서 스필버그 감독은 또 한 번 아카데미의 외면을 받았다.

<태양의 제국> 이후 아카데미에 대한 미련을 버린 스필버그 감독은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 <후크>, <쥬라기 공원> 등을 통해 다시 대중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94년 <쉰들러 리스트>로 드디어 아카데미 수상의 한을 풀었다(스필버그 감독은 1999년에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또 한 번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만74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은 최근 <인디아나 존스5>의 제작에 참여했다.

'될성부른 떡잎' 크리스찬 베일의 신들린 연기
 
 크리스찬 베일은 <태양의 제국>으로 전미 비평가협회 청소년 연기상을 수상했다.

크리스찬 베일은 <태양의 제국>으로 전미 비평가협회 청소년 연기상을 수상했다.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1974년생 크리스찬 베일이 <태양의 제국>에 출연했을 때의 나이는 고작 만 12세였다. 영국 웨일스 출신으로 TV시리즈 <아나스타샤>를 통해 데뷔한 크리스찬 베일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해 스필버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을 목표로 만든 영화의 단독 주연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베일은 나이답지 않은 야무진 연기를 선보이며 스필버그 감독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피난을 가다가 부모와 떨어진 짐(크리스찬 베일 분)은 집에 가 있으라는 엄마의 말에 따라 힘들게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집은 이미 일본군이 휩쓸고 간 후였다. 결국 짐은 거지꼴을 한 채로 상하이 거리를 헤매다가 미국인 베이시(존 말코비치 분)를 만난다(결국 베이시 일행도 얼마 못가 일본군에게 잡힌다).

세계 제2차대전이라는 전쟁에 휩쓸려 포로 수용소까지 오게 된 영국 소년 짐은 포로 수용소에서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활발하게 살아간다. 특히 일본군이 영국 수용소 병원 의사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는 어깨 너머로 배운 일본어를 사용해 일본군 상사에게 엎드려 절하며 의사를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짐은 의사로부터 반짝반짝 광이 나는 신상 구두를 선물 받는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인의 총에 맞아 죽은 일본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장면은 <태양의 제국>의 주제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베이시를 비롯한 미국인들은 일본인이 죽었으니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짐에게 그 일본인은 적이 아니라 친절하게 망고를 잘라 주려 했던 '친구'였다. 그리고 스필버그의 영화답게 짐은 안전하게 피난을 떠나 있던 부모님과 재회한다(그리고 짐은 21년 후 조커에 맞서 고담시를 지키는 '어둠의 기사'가 된다).

영화 속에서 짐은 일본군 전투기 제로센을 유난히 좋아한다. 특히 석양에서 일본군 파일럿을 향해 경례를 하는 장면을 꽤나 멋지게 연출해서 스필버그 감독은 한동안 국내 관객들에게 '친일감독'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남자아이가 크고 강한 전투기를 동경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에 사실 크게 문제 삼을 장면은 아니다(영화 후반에는 제이미가 수용소를 폭격하는 미군 전투기를 보며 환호하는 장면도 나온다).

'B급 무비 대가' 벤 스틸러도 <태양의 제국> 출연
 
 존 말코비치(왼쪽)는 <태양의 제국>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존 말코비치(왼쪽)는 <태양의 제국>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개성파 배우 존 말코비치는 독특한 캐릭터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많은 배우들이 모여있는 할리우드에서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콘에어>의 악역 사이러스 그리섬과 <레드> 시리즈의 마빈 보그스로 유명한 말코비치는 스스로 "인간성이 결여된 캐릭터에 끌린다"고 말하는 배우다. 말코비치의 연기관에 비춰 보면 앞으로도 그의 독특한 연기 색깔은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말코비치도 초창기에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는데 <태양의 제국> 역시 말코비치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캐릭터였다. 순식간에 전쟁고아가 된 짐을 거두고 수용소에서도 미군 수용소의 리더 역할을 하는 베이시는 '본의 아니게' 어린 짐에게 멘토 같은 역할을 해준다. <태양의 제국>에서 처음 만난 스필버그와 말코비치는 2011년 <트랜스포머3>에서 기획자와 배우로 다시 만났다.

비중이 작은 조·단역 중에서는 데인티 역을 맡은 벤 스틸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이미가 미국인 수용소로 이사(?)오기 전, 미국인 수용소에서 베이시의 심복으로 나오는 데인티는 낯선 영국인 짐에게 "초콜릿 좋아해?"라고 물은 후 "나도 (좋아해), 있으면 하나 줘"라는 썰렁한 농담을 던지며 텃세를 부린다(<태양의 제국>에 나오는 유일한 개그대사이기도 하다). 물론 역할이 작기 때문에 벤 스틸러의 연기를 보려면 '매의 눈'을 떠야 한다.

1998년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벤 스틸러는 <쥬렌더>, <폴리와 함께>, <피구의 제왕> 등 주로 B급 정서가 강한 코미디 영화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출연한 배우로 유명하다. 벤 스틸러는 <청춘스케치>와 <케이블가이>, <트로픽 썬더> 등을 직접 연출한 감독 겸 배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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