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아무도 없는 곳> 포스터

영화 <아무도 없는 곳>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오래된 다방 카페에서 미영(이지은 분)이 졸고 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소설책을 읽는다. 문득 잠에서 깬 미영은 낯선 남자가 자신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가 보다. 미영에게 자신이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남자. 미영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한다. 미영의 아는 언니이자 남자의 사촌 누나가 두 사람을 소개시켜 준 듯 싶다.

미영은 조금 전 남자가 읽고 있던 소설책을 보며 어차피 만들어진 이야기라 소설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자는 그래도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사람들이 믿게 된다며 여자에게 금방 만들어낸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5성급 호텔과 스위트 룸, 그 호텔에서 일하는 늙은 벨보이와 노숙자에 대한 이야기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대고 뭉근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미영의 태도가 조금씩 변한다. 자신이 먼저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만들어진 이야기 따위 읽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던 미영은 남자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금방 흠뻑 빠졌다. 남자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미영은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이지만 남자의 말이 더 유효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자의 이야기보다 더 진짜 같은 여자의 이야기는 비로소 현재가 되고,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의 진짜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02.
김종관 감독의 신작 <아무도 없는 곳>은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연우진 분)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추억이 남아 있는 길 위에서 미영과 유진(윤혜리 분), 성하(김상호 분), 주은(이주영 분)을 차례로 만나며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서로 떨어져 있으나 하나의 이야기처럼 맞물리며 또다른 이야기를 완성해낸다. 흐르는 시간과 노화,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상실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까지 삶을 살아가며 마주할 다양한 모습의 조각들에 대해 담은 이번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며 경험할 깊은 감정들을 끌어내어 여운을 전한다.

굳이 따지자면, 감독의 전작인 <더 테이블>(2017)과 가장 유사해 보이지만, 단순한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4개의 이야기를 담아냈던 지점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습이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흘러가는 형식으로 담아낸 지점도 그렇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분절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며 호흡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한, 전체 스토리 라인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주인공인 창석이지만, 각각의 분절된 스토리 라인을 이끌어 가는 것은 해당 챕터 속 인물들이라는 점도 주목해 볼만 하다. 주인공이 피쳐(Pitcher, 이야기를 던지며 화제를 생산해 내는 인물)가 아니라 캐쳐(Catcher, 이야기를 받으며 화제를 수렴시키는 인물)의 역할을 맡으며 액션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리액션이 발생하는 지점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03.
영화는 크게 총 5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던 4명의 인물이 주도하는 각각의 내러티브와 그 막(Act)과 막 사이의 분절된 공간,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진행되는 장면들을 합친 주인공 창석의 내러티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텅 빈 골목을 보여주며 각각의 이야기를 구분해주는 역할을 하는 듯했던 장면들이 단순한 파티션으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종의 자투리처럼 보이는 장면들은 전반의 장면이 후반의 다른 장면과 이어진다든지, 후반의 장면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식의 형태다.

가령, 영화의 초반부에 창석이 걷던 길 위에서 발견한 공중전화 박스는 어떤 감성을 전달하는 사물체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골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피사체로, 또 이제는 사라진 감성을 대변하는 대상으로 활용된다. 그 공중전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들여다 보는 것, 그것의 진짜 의미에 대해 관객들은 처음부터 인지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가 되면 그 장소는 이제 더 이상 하나의 단순한 사물이 아닌 창석의 이야기가 된다. 초중반에 등장하는 바(Bar)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장면들이 이렇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은 주인공 창석이 걸음을 옮기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들이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영화 속 공간들은 새로운 공간이 아니라, 창석이 언젠가 자주 다니던 공간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너랑 자주 걷던 길을 걸었어. 봄이 참 좋았던 길인데, 이제 많이 변했더라'로 시작되는 길 위에서의 독백은 물론, 두 차례 등장하는 주은이 일하는 바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성하와의 만남 역시, 두 사람이 과거 동일한 공간에서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 주인공인 창석에게, 아니 이 세계관을 탄생시킨 김종관 감독에게 있어 공간이란, 다분히 현재의 시간을 소비하는 물리적인 장소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경계에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감독의 말이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 새벽이라는 밤과 아침이 바뀌는 시간의 경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을 중심으로 한 과거와 현재의 경계 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의 기억을 아직 잊지 못해 지금까지도 을지로의 오래된 다방, '시티커피'를 찾는 미영의 모습처럼 말이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04.
"근데 기다리신다던 분이 많이 늦으시네요", 창석과 기억을 파는 게임을 하던 주은은 창석이 기다린다던 손님이 오랫동안 오지 않자 이렇게 말한다. 사실 창석이 기다린다던 이가 오지 않을 줄은 이미 알아차린 눈치다. 바텐더 생활을 하며 손님들의 모습을 지켜봐 온 그녀라면, 또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져왔던 주은이라면 충분히 알아차리고도 남았을 법하다. 주은은 곧 핸드폰을 들고 평소의 습관대로 자신만의 시를 녹음한다.

'기다린다는 말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오는 사람 없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이 장면이 계속해서 되새겨졌던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의 타이틀 때문이었다. 오는 사람은 없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무도 없는 곳'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이 표현은 영화 곳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이미 그런 상황에 처해 있고, 또 어떤 이는 이제 곧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 어떤 누군가는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처음 언급했던 각각의 이야기가 분절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며 호흡한다는 점이 여기에 있다.

성하의 대사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가 되는 동안 그는 청산가리를 어렵게 구해 두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자신도 따라 죽으려고 그랬단다. 숨은 붙어있지만 깊은 잠에 빠진 아내를 보면서도 사람이 희망이란 걸 못 놓게 되더란다. 처음의 희망이 꺼지면 새로운 희망을 구하게 되고, 그러면서 엄한데 돈도 많이 쓰게 되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가 섬이라고 생각했어요. 섬."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그런 섬처럼 자란 이들이 너무 많다. 계속해서 길을 걷는 창석도, 수화기 너머의 여자도, 눈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에 한국을 떠난 인도네시아 남자도 모두가 섬이다. 영화는 또 이렇게 연결된다.

05.
영화의 모든 지점이 소설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처음에서 창석이 말했던 그 소설, 미영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핀잔을 줬던 그 소설 말이다. 창석의 직업이 소설가였던 것도 무관하지는 않다. 그는 영화의 말미에 책상 앞에 앉아 유진과 함께 걷다 만난 이상한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글을 쓴다. '손을 잡자. 손을 잡아야 길을 안 잃어.' 처음에 이 말만 남기고 허우적대던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는 아니다. 그 여자는 이제 같은 말을 하면서도 한 어린 아이의 손을 붙들고 있다. 그리고 창석은 그 장면을 이렇게 쓴다. '엄마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라고.

영화 속에 등장하던 또 다른 엄마 역시 어떤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두 팔을 휘적거리며 창석의 곁을 지나치던 그 여자와 또 다른 엄마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사람들이 믿게 되는 법이니까.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영화 <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06.
영화가 끝났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쩐지 이 영화를 '정수'라고 표현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 작품이야말로 김종관 감독의 정수다'라고 말을 하고 나면,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남겨갈 그의 발목을 내가 움켜쥐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감독이 만들어 온 그 동안의 작품들을 겹쳐 쌓은 뒤 가장 무거운 것들만 내려 남겨둔 기분이 드는 작품이다. 어느 한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에서, 굳이 일부러 드러내려 했다기 보다는 감출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흘리고 만 지점들을 모두 모아 남긴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들을 사랑해 온 나는 이번 작품에 마음을 오롯이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아니, 잠식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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