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유배자' 하면 흔히 다산 정약용이 떠오른다. 정조 임금이 육성한 개혁 그룹의 일원인 그는 정조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801년부터 만 56세가 되는 1818년까지 유배 생활을 했다. 그 기간에 그는 오늘날로 치면 70권 정도에 상당하는 약 500권의 저서를 남겼다. 유배 기간이 17년이나 된다는 점과 더불어 그 기간을 연구·개발(R&D)의 기회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인간적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둘째형인 정약전도 만만치 않았다. 정약전 역시 '유배자' 하면 떠올릴 만한 인물이다. 정약전은 1801년부터 15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동생보다 약간 짧은 그의 유배 기간은 비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정약전은 1816년에 58세 나이로 유배지에서 눈을 감았다. 유배지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그의 유배 기간이 동생보다 더 길어졌을 수도 있다. 그의 유배 기간이 동생보다 짧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슬픈 일'이었다.
 
유배 기간이 15년이나 됐다는 점과 함께 그 기간을 학문 탐구의 기회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정약전은 동생과 비슷하다. 동생만큼의 저술 성과는 남기는 않았지만, 그는 유학자들은 물론이고 진보적 유학자인 실학자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물고기학(學)에 접근했다. 그리고 이 어류학에서 특기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정약전이 '흑산'을 '자산'이라 명명한 이유

그 성과는 이준익 감독 및 설경구·변요한 주연의 영화 제목이 된 <자산어보>라는 책이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사회와 국가를 분석하는 글을 주로 남겼다면, 정약전은 그곳에서 물고기를 분석하는 책을 남긴 것이다.
 
<자산어보>의 자산(玆山)은 정약전의 유배지인 흑산도를 가리킨다. <자산어보> 서문에서 그는 "자산은 흑산(黑山)이다"라고 한 뒤, 흑산 대신 자산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에 관해 "흑산이란 이름은 아득하고 어두워서 두려울 만하다(黑山之名, 幽晦可怖)"며 "집안사람들이 편지를 쓸 때는 곧잘 자산으로 부른다"고 한 뒤 "자(玆) 역시 검다는 의미다"라고 덧붙였다.
 
'자'는 '이에, 여기, 지금'의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검다, 어둡다'의 의미도 갖고 있다. 정약전은 후자의 의미를 근거로 '자산'으로 명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산어보>를 <현산어보>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검을 현(玄)이 겹쳐진 글자이므로 '검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는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8년에 <한국 한문학 연구> 제21집에 실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시의 교육활동과 그 성과'에서 임형택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한문학자 이우성의 견해임을 전제로 "玆山은 흔히 '자산'으로 독음되고 있으나, '현산'으로 읽혀지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
 
저명한 한문학자들이 '현'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그 주장이 논리적인 측면을 담고 있으므로, 한 번쯤 경청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수많은 한문 문헌들에 등장하는 '玆'가 '자'로 발음돼온 그간의 관행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3월 31일 개봉된 영화 <자산어보>는 그런 관행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정약전의 유배생활을 그린 <자산어보>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원래대로라면 <자산어보>나 <현산어보>가 아닌 <흑산어보>로 명명됐어야 할 이 책을 들여다보면, 정약전이 유학자치고는 관심 영역이 꽤 넓고 호기심도 대단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실학을 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영화 <자산어보>가 30분을 경과하기 전에 등장하는 문어에 대한 그의 관심을 봐도 그렇다. 영화에서 흑산도 주민인 장창대(변요한 분)가 정약전(설경구 분)의 몸조리를 위해 잡아다 준 문어와 관련하여, 정약전은 <자산어보> 제2권에서 "머리는 둥글다. 머리 아래 어깨뼈처럼 생긴 곳에 여덟 개의 긴 다리가 나와 있다"고 한 뒤 "한 번 달라붙으면 차라리 자기 몸이 끊어질지언정 결코 떨어져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 "물에서 나와도 죽지 않지만, 이빨을 뽑으면 바로 죽는다"고 했다.
 
그는 문어 맛을 복어에 비유했다. "맛은 달아서 복어와 비슷하며 회나 어포에 좋다"고 말했다. 문어를 의학적으로 활용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배 안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데, 민간에서는 이를 온돌이라 부르니, 이는 부스럼의 뿌리를 삭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뒤 "온돌을 물에 갈아 단독(丹毒)이 생긴 곳에 바르면 신통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상처 부위에 세균이 들어가 열이 나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부기가 생기는 단독이 발생했을 때는 문어 뱃속의 온돌을 물에 갈아 환부에 바르면 좋다고 말한 것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그처럼 해양생물을 탐구하고 분석하는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찬찬히 보여준다. 영화가 20분을 경과할 즈음, 흑산도 생활을 갓 시작한 정약전이 섬 답사에 나서 지형을 살피는 장면이 나온다. 귀양살이하러 온 죄인인지 견문을 넓히러 온 학생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상황이다.
 
이 영화의 기본 구도는 흑산도에 귀양 온 정약전이 조카뻘의 현지 어민인 장창대를 성리학 제자 겸 어류학 선생으로 삼아 물고기 연구를 하면서 <자산어보>를 써나간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단둘이 흑산도에 살면서 성리학을 독학하며 출세의 꿈을 품는 장창대가 정약전과 티격태격하면서도 그에게 감화돼 저술 활동을 돕는 과정을 영화는 찬찬히 보여준다.
 
정약전이 유배생활의 절반 가까이를 보낸 곳

'이 영화는 <자산어보> 서문에 근거했다'는 자막이 영화 첫 장면에 나온다. 정약전과 장창대의 인연을 설명한 그 책 서문에 근거했다는 설명이다. 그런 안내문으로 인해 관객들은 이 영화의 사실성을 크게 의심할 필요 없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영화의 기본 구도가 실제 사실과 일치한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영화가 실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장창대의 도움으로 <자산어보>를 집필했다'는 뼈대만큼은 <자산어보> 서문과 일치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기본 구도가 <자산어보> 서문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사실 그대로 재현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정약전이 귀양 초기부터 흑산도에서 생활한 것 같은 인상을 주기 쉽다. 한양에서 남하해 전라도에 도착한 뒤 정약전이 흑산도 해변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산도 생활은 정약전 유배 생활의 일부에 불과했다. 흑산도에 가기 전과 흑산도를 떠난 뒤에 머문 곳이 있었다. 흑산도와 전남 해안의 중간쯤인 우이도가 그곳이다. 정약전은 그곳에 머물다가 흑산도로 갔다. 영화 후반부에도 나왔듯 그는 유배 생활의 후반부를 거기서 보냈다.
 
2017년에 <도서문화> 제49집에 실린 조숙정 전북대 연구원의 논문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기와 <자산어보>에 대한 재검토'는 "정약전이 대흑산도로 옮겨간 시기는 대략 1806년 말이나 1807년 초쯤으로 추정되어 왔다"고 말한다. 1801년에 유배 판결을 받은 정약전이 우이도에서 몇 년간 지낸 뒤 흑산도로 갔고, 유배 생활의 절반 가까이를 우이도에서 보냈던 것이다.
 
인간승리의 모습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영화 <자산어보> 스틸 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또 영화는 정약전과 장창대의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묘사한다. 장창대가 물고기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약전이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정약전이 장창대를 '상놈'으로 부르는 장면들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자산어보> 서문과 충돌한다. 서문에서 정약전은 "섬 안에 '장 덕순(德順) 창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문을 닫고 손님을 사양하며 옛 책을 매우 좋아했다"고 말한다. 덕순은 장창대의 호다. 수직적 관계에 있는 아랫사람이라면 굳이 호를 넣어 거명할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자산어보> 서문에 묘사된 두 사람의 관계는 사제보다는 동학(同學)에 좀더 가깝다. "나는 드디어 그를 초대해 잠을 재우면서 '함께 연구하고 궁리하며(與之講究)', 차례를 매기고 책을 만들어 <자산어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정약전은 말한다. 영화 <자산어보>가 참고했다고 밝힌 <자산어보> 서문에 나타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에 좀더 가깝다.
 
비슷한 분위기는 정약전이 쓴 '장창대에게 보내다(寄張昌大)'란 시에도 나타난다. 이 시에서 정약전은 "사람들은 말하지 장창대를(人說張昌大)/ 높고 높으며 뛰어난 유림이라고(迢迢逸士林)"라고 읊었다.
 
상대방을 높여주려는 의도도 나타나지만, 장창대를 '높고 높으며 뛰어난 유림(사림)'으로 칭송한 것은 어느 정도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의 정약전이 걸핏 하면 '상놈'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동떨어진 상황이다.
 
사료(역사 기록물)와 배치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가 갖는 매력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성리학의 나라가 기울어가던 19세기 초반에 세상을 비춘 실학자들의 생동하고 꿈틀대는 기운과 더불어, 유배를 유배처럼 생각하지 않는 초인(超人)의 인간 승리를 영화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 동식물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실학자의 도전 정신, 자신을 유배 보낸 국가권력의 의중을 우습게 여기고 이를 견학과 탐구의 기회, 나아가 자기완성의 계기로 삼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영화 <자산어보>에서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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