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피다'는 무슨 뜻일까?"
"기분이 좋아진다", "다쳤다", "얼굴에 피가 난다."


지난달 23일 종영한 EBS 6부작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에서 초등학생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의 어휘력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을 조명하고,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담은 <당신의 문해력>은 방송 후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들, 성인들까지 문해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은 많은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3월 2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EBS 사옥에서 <당신의 문해력>을 연출한 김지원, 민정홍 PD를 만났다. 

두 사람은 방송이 끝났지만 촬영분 정리와 출연료 정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지난해 1월 방송된 10부작 교육 다큐멘터리 <다시 학교>를 함께 제작했던 민정홍, 김지원 PD는 '교과서 읽지 못하는 아이들' 편을 취재하면서 처음으로 문해력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지원 PD는 "2019년 3월부터 거의 2년을 준비한 아이템"이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에게 그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도저히 수업이 안 된다. 초등학교 단위에서는 생각보다 글을 못 읽는 애들도 많다. 중학생들은 글은 읽지만 교과서를 이해 못 한다. 저희도 '그 정도일까?' 반신반의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인 거니까. 기초 단계 교육을 살펴봐야겠다 싶었다. 취재하다 보니까 전 연령대에 걸쳐서 이 문해력이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더라. 그래서 이걸 확대해서 따로 6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자고 한 것이다."(김지원 PD)

성인 남녀 880명 대상으로 문해력 테스트 진행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스틸 컷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스틸 컷 ⓒ EBS

 
특히 방송 이후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인문해력 테스트가 일반에 공개되면서, 응시자가 32만 명까지 치솟았다. 민정홍 PD는 "이렇게까지 호응이 있을 줄 몰랐다"며 "사내 동료 분들이 (글자가 작고 읽어야 하는 지문이 많아서) 휴대폰으로 보는 게 힘들었다는 얘기도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김지원 PD 역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해주셔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저는 (동료들에게) 왜 봤냐고 물었다. 그런데 '궁금하잖아. 내 문해력이 어떤지'라고 하더라. 재미로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접고 싶은 마음이 드는 문제들이어서 이렇게 많이 테스트 하실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현재까지(29일 기준) 32만3천 명의 사람들이 테스트를 완료했는데, 클릭만 하시고 테스트를 끝내지 않은 분들까지 포함하면 40만이 넘는다. 이 지루한 테스트를 참고 끝까지 풀어보셨다는 건 엄청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주로 자녀가 있는 학부모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모두가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해주길 바라고 시작했지만 타깃층은 그렇지 않을까 했다. 방송이 나가고 나서 많이들 공감해주시더라. 너무 감사하다. 저희 기획의도 대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김지원 PD)


<당신의 문해력>은 여느 EBS 다큐멘터리와 달리 김구라, 황광희, 이현이, 별, 알베르토 몬디 등 연예인 진행자와 패널들을 섭외해 VCR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교양 다큐멘터리이지만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만든 이러한 포맷은 문해력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함이었다고.

민정홍 PD는 "프로그램에 정보량이 워낙 많았고 그림과 이야기로만 푸는 다큐멘터리 형태보다, 대화나 설명하는 게 더 다가가기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지원 PD는 "재밌는 건 더 많았는데 많이 잘라냈다"며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능처럼 하하호호 웃는 포인트도 많았는데 러닝타임이 모자라서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방송에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가제'란 단어를 몰라서 로브스터(가재)를 떠올리는가 하면, '글피'를 처음 들어본다는 학생들이 등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일각에서는 '보통의 학생들이 진짜 이 정도 수준이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 PD는 "보통이라는 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보통의 초·중·고생을 찾으려 했다. 물론 취재 과정에서 만나고 인터뷰한 교사와 학생들은 훨씬 더 많지만, 그 중에서 현실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례들을 골라서 내보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두 PD는 교실을 촬영하며 더욱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며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저희도 '설마 그 정도까지?'라고 생각하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깜짝깜짝 놀라게 되더라. 학생들을 인터뷰 하면서 '아 이게 일반적인 거구나' 저절로 입증됐다. 중학교 3학년 2400명을 대상으로 한 어휘력 테스트, 성인 문해력 테스트 등은 이게 우리 사회에 진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를 확인받기 위한 과정들이었다. 방송 이후에 시청자분들, 학부모분들도 많이 놀라셨던데 사실 학교 선생님들은 놀라시지 않더라. '아 그랬지, 맞아. 요즘 나도 많이 느꼈던 거야'라는 반응이었다. 지금 학교의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드러냈다고 보시는 것 같았다."(민정홍 PD)

"방송에 안 나간 부분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아이들이 글을 아예 안 읽는다. 단어를 모르는 건 '아 내가 모르는구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안 읽는 건 다르다. 중학생들과 실험을 했다. 4줄, 8줄, 20줄의 글을 읽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긴 글이 있으면 '지루해요'라든지, '읽기 싫어요'라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 '귀찮아요'라고 하더라. 글을 딱 보면 귀찮다는 거다. 길이를 보고 읽을지 말지를 판단한다. 3줄만 넘어가면 읽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안 읽으니까 어휘를 알 수도 없지. 참을성 있게 긴 글을 읽어내는 것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능력인데 아이들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이고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정말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김지원 PD)


"실질적인 솔루션 제시가 방송의 중요한 목표였다"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스틸 컷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스틸 컷 ⓒ EBS

 
<당신의 문해력>은 문해력, 어휘력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중학생과 함께 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만 4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말놀이와 소릿값 기초 교육을 보여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민정홍 PD는 "실질적인 솔루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는 게 이 방송의 중요한 목표였다"고 전했다. 

"중학교에 직접 들어가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도 그래서다.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가 있고 아주 심각하다는 것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다. 고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이 부분은 사실 공교육 쪽에서 더욱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에 보면, 선생님들이 직접 하루에 30분 더 가르치고 대여섯 명을 데리고 추가로 교육하셨는데 굉장히 힘든 일이다. 개인이 다 짊어질 수 있는 몫도 아니고. 그 선생님들은 그만큼 열의가 있으셨고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기 때문에 직접 나서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문해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교육 내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교과서로 얘기했던 것도 그래서다. 미국의 교과서는 어떤지 살펴보면서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한지 말하고 싶었다. 전담교사제도 사실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실제로도 관심 갖고 진행 중인 지방 교육청들이 있다. 공교육 안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이 문제에 대비하고 있었더라. 특히 독일은 성인 문해력부터 아동까지 10년 단위 프로젝트를 꾸려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체계적으로 준비해나가지 않으면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더욱 시스템 얘기를 하고 싶었다."(민정홍 PD)


방송이 아이들의 교육에 집중하다보니, 제작진들은 '성인들의 문해력 해결은 어떡하라는 거냐'는 토로와 한숨도 많이 들었단다. 김지원 PD는 "(방송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건, 중학생 이상의 읽기는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생들이 보여준 패턴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휴대폰하고 책 안 읽고 그런 게 똑같다"며 "중학생 프로젝트를 보시면서 성인들은 참고해서 활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보시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이어 회사 차원에서도 공적책무 수행을 위한 관련 프로그램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클래스e>를 소개하기도 했다.

"유아, 초등, 중학생, 성인까지 저희에게 계속 질문이 들어온다. 저희 애는 어떤데 어떻게 할까요. 케이스별로 다 다르니까 질문하시는 마음은 이해가 가는데 원칙은 같다. 문해력 문제는 저희가 뿌린 씨앗이기도 하고 회사 차원에서 파생 프로그램들을 고려하고 있다. 이번에 <클래스e>라는 EBS 강의 프로그램에서 저희 방송에도 자문했던 조병영 교수가 '리터러시'(문해력)에 관한 강의를 3주 동안 한다. 읽는다는 게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 건지, 독자가 된다는 건 어떤 건지에 대한 강의가 될 것."(김지원 PD)

"독일을 자세하게 보여주지 못 한 점 아쉬워"  

2019년부터 시작된 <당신의 문해력> 프로젝트는 취재 도중 '코로나 19'라는 거대한 위기를 맞아야 했다. 김 PD는 "섭외가 엄청 힘들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아서 촬영이 더욱 힘들어졌었다. 교사들도 신경써야 할 게 더 많아서 힘들어했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촬영을 하면서 코로나로 인한 교육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전했다.

"저도 촬영 일정이 늘어난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건 소소한 불편함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당연히 성장을 하는데, 학교 수업이 없어서 아이들의 성장 그래프가 꺾이는 거다.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고, 혼자 읽기 수업만 해야 하니까 예년보다 성장이 더뎠다. 그걸 옆에서 정말 많이 목격했다. 선생님이 눈을 마주치면서 '가제가 뭐야?'라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온라인이니까. 이 (코로나) 현장이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구나. 그런 걸 많이 느껴서 마음이 아팠다."(김지원 PD)

"저희가 1년 전에도 <다시 학교>를 촬영했고, 그 이후에 이어서 <당신의 문해력>을 한 거다. <다시 학교>를 하면서 1년 동안 본 학교와 코로나 이후 1년 동안 본 학교는 너무나 달랐다. 학습 격차가 더 심해졌고 교사분들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시더라.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학습이 교육 이슈를 전부 잡아먹고 있기는 한데, 문해력이라는 문제는 그래서 더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또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민정홍 PD)


두 사람은 특히 코로나로 인해 해외 취재를 충분하게 할 수 없었던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미국과 뉴질랜드는 코로나 발생 이전에 현장 취재를 마쳤지만 독일,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직접 취재할 수 없었다고. 현지 인력을 동원해 인터뷰를 따는 등 방법을 강구했지만 방역 지침으로 인해 그조차 쉽지 않았단다.

민 PD는 "해외 사례에서 담고 싶은 부분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충분한 취재, 촬영이 안 되더라. 소개밖에 못한 게 아쉬웠다"며 "유아기부터 노년층까지 문해력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독일을 좀 더 자세하게 보여주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스틸 컷

EBS 다큐멘터리 <당신의 문해력> 스틸 컷 ⓒ EBS


그럼에도 방송에서는 문해력 문제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영미, 유럽권의 학교들을 다양하게 조명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뉴질랜드에서 직접 만난 한국인 부부 이야기를 꺼내놓은 김 PD는 "우리 교육 예산을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이 더 있을 것 같다"며 "교육정책을 짜는 분들이 꼭 우리 프로그램을 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제가 갔던 뉴질랜드 초등학교에 한국인 학생이 있었다. 부모님은 한국인 이민자고 아이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그 친구는 영어가 모국어인데, 그 모국어를 못해서 2학년 때 리딩 리커버리(읽기 회복)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았다더라. 지금 6학년이고. 부모님과 인터뷰할 때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한국에서 '아이가 읽기를 못해서 보충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셨다면 어떤 기분이었겠냐'고. 한국에는 뉴질랜드처럼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까. 두 분 답변에 진짜 공감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하시더라. 

뉴질랜드에서는 리딩 리커버리 수업이 끝나고 3학년, 4학년 계속 학년이 올라가도 아이가 다른 친구들 만큼 따라가고 있는지 계속 체크해서 리포트를 준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는 거다. 국가나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디까지일까. 저는 지금 한국 교육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기본적인 것들을 책임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1등을 할 수는 없지만,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을 같은 위치까지 올려주는 역할이라도 (공교육이) 해주면 좋겠다. 그게 저희 프로그램이 하고 싶었던 얘기였다. 사실 한국도 교육 예산 적지 않게 쓰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김지원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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