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연기와 인생의 주연, 조연은 따로 없습니다. 액터 인사이드는 연기를 해오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었을 배우들을 응원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민성욱 배우 민성욱 배우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민성욱 배우 민성욱 배우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문성근, 송강호, 박원상 등이 거쳐간 극단 차이무 출신으로 연기 경력만 20년을 넘긴 배우 민성욱은 말 그대로 '신 스틸러'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려 보인다. 어지간한 주연 배우들도 그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선 긴장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그는 주어진 장면이 짧든 길든 철저히 분석해갔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가 대중에게 깊게 각인된 여러 작품이 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선 이방원(유아인)의 심복인 조영규 역을 맡았는데 극중 억울한 죽음을 당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고, <피노키오>에선 다혈질의 사회부 기자 장현규 역을 특유의 말투까지 만들어 가며 연기한 덕에 감독과 작가가 분량을 늘려 그를 독려한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캐릭터는 없다는 마음

이제 막 꽃샘추위가 수그러들 무렵 만난 민성욱은 지난해에 이어 본인이 직접 연출을 맡은 무대 공연과 작품 오디션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녹두꽃> <화양연화>를 비롯해 영화 <차인표> <더블패티>에 출연하는 등 올해에도 그는 짧은 장면에 나올지라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기자 역할은 두 번, 검사, 의사도 했고 형사는 좀 많이 했던 것 같다"며 과거 캐릭터를 읊는 그에게서 다양한 표정이 스쳐 갔다. 업계에서 민성욱은 단 한 줄의 대사와 한 컷의 분량이라도 해당 캐릭터의 생동감을 최대한 살리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정말 상상을 많이 하고, 일단 현장에 가면 감독님 의도에서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여러가지를 해보는 스타일"이라며 그는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정의했다. 

"연극 무대에서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데 그간 드라마, 영화 감독님들이 강한 캐릭터를 많이 주신 것 같다. 나름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저 같은 (조연으로 불리는) 배우들은 긴 호흡으로 소통할 기회가 많진 않아서 순간순간 할 수 있는 걸 찾으려 하고, 대본에 써 있는 것 이상으로 준비하고 생각하거든. 어떤 생존력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감독님들께서 불러주시는 것이지."

'직접 혹은 간접적인 경험이라도 최대한 재료를 모으고, 충분히 상상하기'. 민성욱의 준비 방식이다. <피노키오> 때 사회부 기자를 만나 리포팅 연습을 하고, 실제 편집국 회의도 참여한 건 유명한 일화다. "검사, 변호사님들 만나서 듣는 현장 이야기들도 재밌더라"며 민성욱은 몇 가지 일화를 전했다.

"예전에 부산 공연 때였다. 사우나에 갔는데 그 동네에서 힘 좀 쓰시는 분들이 있더라. 온몸에 문신이 엄청났는데 몸을 말릴 때 면봉 두 개를 한꺼번에 양 귀에 꽂고 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건달같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언젠가 그런 모습도 연기에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웃음). 물론 작품마다 작가님들이 잘 쓰시겠지만 저 또한 캐릭터를 준비할 때 나름 근거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가 직접 경험하는 것엔 한계가 있으니 비슷한 배역을 한 배우들을 만나 묻기도 하고, 기사들도 많이 찾아 보는 편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 사실 그 안에선 주연, 조연 구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협업이자, 에너지의 흐름이 중요하거든. 서로 힘을 주고 받아가면서 한 작품 안에서 한 팀으로 맞춰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게 맞지 않을 땐 서로 경계가 생기기도 하지. 둘이 합을 맞추든 셋이 합을 맞추든 작품 안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참 좋다."


"일상의 연기, 신세계를 만난 경험이었다"
 

민성욱 배우 민성욱 배우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연으로 불리는) 배우들은 긴 호흡으로 소통할 기회가 많진 않아서 순간순간 할 수 있는 걸 찾으려 하고, 대본에 써 있는 것 이상으로 준비하고 생각하거든." ⓒ 이정민

 
대중 앞에 서는 배우라지만 사실 어렸을 때부터 활발한 성격은 아니었단다. 주말에 혼자 극장엘 가고, 동네 비디오 가게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비디오를 잔뜩 빌려오는 소년이었던 그는 고등학생 때 <비언소>라는 연극을 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극단 차이무를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매표도 돕고, 무대 진행도 도우면서 무대 연기에 발 들이게 됐다고.

"막연하게 영화 배우가 되고 싶긴 했는데 그 연극을 보고 신세계를 만났지. 그때만 해도 일상적 연기가 거의 없었거든. 차이무에서 배우들이 사투리 연기, 일상 언어를 연기하는 걸 보면서 되게 즐거웠던 것 같다. 같이 나도 무대에서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걸 싫어하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연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터뜨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지."

1980년대 민중 미술 운동의 주역인 아버지(민정기 화백)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적극 지지했다고 한다. 민정기 화백 또한 대학 재학 시절 연극반이었고, 여러 작품에 출연했기에 누구보다 아들의 마음을 잘 이해했을 것이다.

민성욱은 "제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처음 말했는데 그걸 좋게 봐 주신 것 같다"며 출발선에 섰던 당시를 회상했다. 1996년 연극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2006년 영화 <비단구두> 등에서 민성욱은 아버지와 함께 작품에 출연해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연극 무대는 민성욱에게 일종의 고향이자, 안식처와도 같다. 2019년 같은 소속사 동료인 배우 이상윤, 조달환 등과 연극 <올모스트 메인>을 무대에 올려 수익금 전액을 소아재활센터에 기부하는 등 민성욱은 틈날 때마다 무대 연기를 하거나 직접 공연 연출 맡아 갈증을 채우고 있다. 올해 또한 <신바람난 삼대>라는 작품을 연출해 현재 공연 중이다.

"소속사 배우들과 2년에 한 번씩은 공연을 하자고 했는데 쉽진 않더라. 카카오 등 여러 업체에서 도와주셔서 기부까지 가능했는데 그런 여러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났을 수도 있다. 연극 연출은 사실 목표였다기 보단 일이 없을 때 배우들이 힘들잖나. 그 공기를 버틸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후배의 권유로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 우리끼리 극단도 만들었다. '윈즈 팩토리(winds factory)'라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공장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고, 로고도 아이패드로 제가 직접 그렸다(웃음). 

극단을 만든 이후 작품을 계속 올리고 있는데 체력적으론 쉽지 않지만 서로 힘이 되어주고 있다. 종종 후배들에게 재밌는지 물어본다. 우리끼린 잘 되면 '찢었냐? 찢었어요', 어떤 날은 '(잘 못해서) 찢겼어요' 이런다(웃음). 저도 좀 더 구체적으로 봐주고 해야 하는데 부담 가질까봐 객관적으로 평가하진 못하겠더라. 단원도 전속이 아니라 객원 개념으로 받아서 서로 부담 없이 하고 있다.

밖에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안에선 치열하다. 전문 연출가가 아니라 비는 부분도 많은데 좀 더 잘해봐야지. 무대 공연은 우리가 얻는 게 많다. 뭔가 소진된 느낌이 들 때 연극으로 힘을 얻거든. 해외에서도 할리우드 배우들이 종종 연극을 무료로 올리곤 하잖나.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건데 우리도 활성화가 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느려 보이지만 길고 꾸준하게
 

 배우 민성욱과 동료 배우들로 이뤄진 극단 '윈즈 팩토리' 로고.

배우 민성욱과 동료 배우들로 이뤄진 극단 '윈즈 팩토리' 로고. ⓒ 민성욱

 
그렇게 연출자도 되어 보고 극단도 꾸려가고 있지만 민성욱은 자신의 본업이 배우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품고 있었다. 여전히 그는 작품 오디션을 보고 있고, 그를 찾아주는 작품에 열과 성을 다해 준비 중이다. 최근 그는 정가영 감독의 신작 <우리, 자영> 촬영을 마쳤다고.

이 대목에서 민성욱에게 분기점이 된 출연작을 물었다. 잠시 생각 후 드라마 <피노키오>와 영화 <나는 곤경에 처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자는 그에게 대중적 인지도를, 후자는 첫 주연작이자 베를린영화제 참석이라는 추억을 안긴 작품이다.

"<남자의 향기>(1998)가 첫 영화 출연작이긴 하지만 <나는 곤경에 처했다>가 제가 생각하는 데뷔작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왓챠에도 올라왔던데 신기해서 다시 봤다. <우리, 자영> 감독님도 그 영화를 보고 절 찾았다고 하시더라. 영화 촬영 시스템도 굉장히 바뀌었다. <남자의 향기> 땐 조감독님이 배우들에게 삐삐(beeper)를 쳐서 연락하곤 했는데(웃음). 

<피노키오>는 제가 처음으로 감독님에게 '한 번 이렇게 해보면 안 돼요?'라고 제안한 작품이기도 하다. 대사 없이 지문으로 창문 뒤에 장영규(민성욱)가 있다고 돼 있었는데 제가 선글라스랑, 러시아 털모자, 스케이트를 준비해서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걸 보시고 감독님이 살려주셨지. 작가님도 이후 제 대사를 추가로 넣어주셨고."


오랜 활동 기간에서 침체기가 주기적으로 올 때마다 그는 연극 무대, 그리고 매체 연기를 막 시작했을 무렵을 떠올린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 헤맬 때 현장에서 여기저기 물어봐가며 익혔던 기억, 주변 동료들의 시선 등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곤 한다고 그는 고백했다.

"어느 순간 귀찮고 힘들 때가 있지. 근데 예전을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더라. 옆에서 부러워 하는 후배나 친구들도 있고.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 하는데 왜 힘들어 하지?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그렇게 그리웠던 연극 무대였고, 매체 연기였는데 어떤 외적 문제 때문에 잊곤 하더라. 작품을 할 때마다 대여섯 번씩은 대본을 직접 쓰고 고쳐가며 상상을 많이 했는데 그걸 안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쳤던 것 같다.

<미씽 나인>을 찍을 때 송옥숙 선배에게도 남들이 볼 때 허황된 이야기를 제가 연기하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거든. 결국 가짜를 진짜처럼 하는 직업인데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더라도 며칠 간 잠 못 자며 준비한 노력이 빛을 발할 때 참 즐겁더라. 그게 지금까지 제가 연기하는 이유같다.

지쳐버리면 그만큼 타격도 크다. 그래서 긴호흡, 아니 상당히 긴호흡, 아니지 음... 생각보다 상당히 긴호흡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 같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이제 좀 (연기가) 보인다'고. 아 이 일이라는 게 그런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그리시고, 연기도 하신 분인데 이제야 보인다니 말이지. 내가 아직 깊이가 안 됐구나 싶더라. 연기라는 게 정답도 없고, 완성이라는 게 없잖나. 주연을 한다고 끝이 아니지.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걸 상당히 긴 시간을 해냈을 때 그 내공이 얼굴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
 

민성욱 배우 민성욱 배우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민성욱 배우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 하는데 왜 힘들어 하지?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그렇게 그리웠던 연극 무대였고, 매체 연기였는데 어떤 외적 문제 때문에 잊곤 하더라." ⓒ 이정민

 

민성욱 피노키오 화양연화 더블패티 신바람 난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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