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아내>한 장면

<스파이의 아내>한 장면 ⓒ 엠엔엠 인터내셔널

 
1904년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된 일본은 한반도를 병탄으로 몰았으며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아시아 나라들에 상당한 고통을 안겼다. 한국과 중국은 대표적인 피해국이기도 하다.
 
두 나라에서 일본이 자행한 전쟁범죄도 상당했다.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드는 등의 만행부터 731부대가 자행한 생체실험까지, 군국주의 국가 일본의 전쟁범죄는 상상을 초월했다. 
 
2차 대전 패전국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진실하게 사죄하기 보단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면서 피해국가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일본 우익세력들의 뻔뻔함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의 우익세력도 일본과 비슷한 관점을 보이는 데 우익이라는 공통분모가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 내에도 과거사 문제를 진지하게 반성하려 하는 지식인들이 존재한다. 지난날의 과오를 들춰내며 자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는 양심적 일본인들이 과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 작품은 우익세력이 발호하는 일본의 과거 잘못된 행태를 거울처럼 비추는 역할을 한다. 
 
일본의 만행을 알게 된 뒤 고민하는 일본인
 
 <스파이의 아내> 한 장면

<스파이의 아내> 한 장면 ⓒ 엠엔엠 인터내셔널

 
전운이 감돌던 1940년, 후쿠하라 물산을 경영하는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는 부유한 사업가로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서구적인 집에서 전통의상보다 양복을 즐겨 입고, 필름을 활용해 단편 영화를 촬영하고 이를 감상할 정도인 것을 보면, 당시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던 일본의 상류층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평온하던 유사쿠 삶을 전환시키는 일이 발생한다. 그와 거래하고 있는 영국인 무역상이 첩자로 몰려 연행되는 소동을 겪기도 하고, 사업차 출장간 만주에서 생체 실험을 자행하는 731부대의 만행을 알게 된다.
 
이를 기록해 놓은 유사쿠는 이런 사실을 외부로 알리기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아내에게도 알린다. 그냥 지금과 같이 편안하게 살고 싶은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깊게 고민하다 남편을 따르기로 한다. 
 
<스파이의 아내>는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의 경직성도 보여준다. 헌병의 날카로운 감시를 비롯해 거리를 행진하는 군인들의 대오는 도시의 공기를 무겁게 한다.
 
영화에서 특히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유사쿠가 군국주의를 평가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을 세계주의자라고 강조하면서 보편적 인류애를 무시하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한다. 일본의 치부를 전 세계에 알리려는 것도 세계주의자로서 당연한 의무라 여기기 때문이다.
 
과거사 비판하는 양심적 목소리
 
 <스파이의 아내> 한 장면

<스파이의 아내> 한 장면 ⓒ 엠엔엠 인터내셔널


<스파이의 아내>는 전쟁범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의 고뇌와 양심의 외침을 이야기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보여준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보편적·상식적 행동을 해야한다고 촉구하는 것이다.
 
우익세력들의 극단적 주장과는 다르게, 적어도 양심적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사 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은 영화가 일본 과거사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양심적 목소리로 해석되는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면 기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비록 단역이지만 만주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한 여성 역할에 한국 배우 현리가 출연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갈수록 우경화되는 일본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나름 일본 영화인들은 진보적인 생각으로 사회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를 향해 이질적인 형태의 공동체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칸영화제 수상에도 일본 정부의 축하를 받지 못했고, 일본 우익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반핵 다큐멘터리로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지적했고, 배우 테라와키 켄은 아베 총리 재임 시절 부산영화제에서 일본 우경화를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 역시 <스파이의 아내>를 통해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는 점이 반갑다. 더구나 세계적 거장 감독이 이성적 사고로 구현해 낸 냉철한 발언이기에 힘이 느껴진다.

한편 영화 속에 담긴 짧은 단편 영화는 스파이의 '아내'에 초점을 맞춘 이유를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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