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한 장면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나를 처음 '미드(미국 드라마)'라는 신세계로 인도해준 작품은 SBS를 통해 방영된 < ER >이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NBC를 통해 방영되었던 < ER(Emergency Room)>은 시카고 카운티 종합병원 응급실을 배경으로 한 의학드라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드라마에선 '의사'라고 하면 돈을 많이 버는 특별한 사람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 ER >속 의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고달픈 직장인들이었고, 월급을 넘어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자신의 직업적 이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부자 나라' 미국에서 의료 보험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로 인해 의사들이 도덕적인 고뇌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전국민 의료 보험제도가 당연한 사회에 사는 나에게는 '부'의 이율배반적인 민낯이었다.  

< ER >로부터 20년, 미국은 달라졌을까?    내가 < ER >을 시청한 것이 2000년대 초반, 그로부터 어언 20여년 흐른 현재 미국의 의료 현실은 달라졌을까? 이 궁금증은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뉴 암스테르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공립 병원 <뉴암스테르담>, 그런데 왜 '뉴암스테르담'일까? 영국의 점령 이후 새로운 명칭인 '뉴욕'이라 불리기 전엔 다른 점령국이었던 네덜란드의 수도 이름을 따 '새로운 암스테르담'이라 불렸다. 드라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병원인 '벨에뷰병원'의 병원장이었던에릭 만하이머(Eric Manheimer) 박사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 ER >로 부터 20여년이 흘렀지만 미국 사회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공공병원은 있지만 그곳에서 공공 의료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의료 보험은 가난한 자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항생제만 있어도, 기본적인 인슐린만 있어도 해결될 '병고'가 다리를 절단하고 응급실에 실려오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학교 기간제 교사가 가장 기본적인 당뇨병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쓰러지고, 의료 체계에서 밀려난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뒤 보험 혜택을 받는 불법을 자행하기도 한다.

<뉴암스테르담>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의 제일 첫 마디는 여전히 "보험이 없는데요"이다. 20년 전에도 보험이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던 환자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료의 치외법권 지대에 놓여있다.
 
<뉴암스테르담>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현실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이 그토록 많은 사상자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의 시즌1,2를 채운다. 

그렇게 돈이 있어야 치료도 받고 목숨도 보장받을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것도 미국의 심장이라는 뉴욕 한복판에 오래된 공립병원이 있다. 하지만 말이 공립병원이지 이른바 '합리적인 경영'을 앞세운 뉴암스테르담은 영리 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병원이었다. 그렇게 하는데도 여전히 공립 병원으로서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새로운 의료 팀장으로 맥스 굿윈(라이언 이골드 분)이 부임한다. 

새 의료팀장이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돈이 되는 수술에만 골몰하던 의료진들을 해임하는 것이었다. 대신 병원장과 이사장이 대놓고 '그건 사회주의야'라며 난색을 표하는 실질적인 조치들을 과감하게 실천해 나간다. 

공공의료의 본령, 뉴암스테르담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한 장면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공공병원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의료'를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나 병원의 경영이라는 목적이 내세워지면 공공 의료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사회주의라며 병원 운영진의 항의를 받은 맥스 굿윈의 시도는 사실 심플하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뉴암스테르담의 본령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거리를 지나가던 맥스 굿윈의 눈에 상처를 치료 받지 못해 곧 썩어 들어갈 것 같은 다리로 인해 고통받는 노숙 여인이 눈에 띈다. 맥스는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지 병원으로 데려오려고 한다. 치료비가 없다는, 보험이 없다는 그녀에게 말한다. 뉴암스테르담은 공립병원이라고 말이다.

치료비를, 보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립병원이지만 사람들은 보험이 없이는 치료받을 수 없는 미국 의료 체계에 길들여져 공립병원인 뉴암스테르담조차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맥스 굿윈은 뉴암스테르담 카드를 만들어 뉴욕 곳곳에 돌린다. 그러자 이사회장이 이를 반대하고 나선다. 뉴욕 시민들이 뉴암스테르담이 공립 병원인 걸 알면 병원이 망한다면서 말이다. 

맥스 굿윗이 극중 에피소드를 통해 벌이는 일들은 사실 공립 병원으로서 상식 차원의 것들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는 그 상식이 이상주의가 되고, 사회주의가 되며, 병원을 망하게 할지도 모를 일이 되는 게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 되었다.

물론 맥스 굿윈의 '상식'이 도발적이긴 하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이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당뇨 치료제인 인슐린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맥스는 그 문제의 원인이 인슐린을 비싸게 공급하는 거대 제약 회사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는 제약 회사와의 담판을 짓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맥스는 병원 내 실험실에서 자체적으로 인슐린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물론 반대에 봉착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인슐린을 상대적으로 싸게 파는 캐나다에서 인슐린을 공급받고자 한다. 그 시도도 인슐린 구입 트럭이 국경을 넘지 못해 실패한다. 맥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방송을 통해 인슐린조차 구하지 못하는 환자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맥스의 시도는 성공했을까? 거대 제약 회사의 인슐린 가격을 낮추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 실패일까? 인슐린을 공급받지 못해 쓰러졌던 기간제 교사는 무료로 평생 인슐린을 공급 받을 수 있게 됐다. 겨우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맥스는 자신의 환자를 우선 살렸다. '인간의 얼굴을 한 맥스의 공공의료는 이런 식으로 한 발자국씩 앞으로 간다.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한 장면

드라마 <뉴 암스테르담>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그가 아픈 이들을 위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시도들은 항상 '병원을 파산으로 이끈다'는 위협을 받는다. 또 비효율적이라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럴까? 병원의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설문조사에 냉소적인 직원들의 상황을 살피던 그는 오랜 출퇴근 시간으로 피로에 절어 사는 직원들을 위해 통근 버스를 마련한다. 통근 버스를 시행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올리는 방식이다. 또 오래된 관행적 업무로 인해 실제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는 비효율적인 직원들을 재배치한다. '휴머니즘'이 비효율적이거나 무능하지 않다는 반례를 만든 것이다. 

에릭 만하이머 박사의 원작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뉴 암스테르담>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에는 21세기의 미국에서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이상주의적'인 사례들이 빈번하게 나온다.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몽상적'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에피소드들이다.

그래서 <뉴암스테르담>은 신선하다. 여전히 21세기에도 '인간의 선의와 의지'가 보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서사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적'이다. 사이코패스와 좀비, 보다 강력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드라마적 요소가 되어가는 시대에 선한 얼굴로 공동체적 삶을 실천해 나가는 모습이 오랜만에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듯해 기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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