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날 키워준 건 할머니였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화내기보다는 감싸주는 쪽을 택한 할머니의 사랑은 내 성장의 자양분이었습니다. 내가 결혼해 아이를 낳자 엄마는 이따금씩 아이를 돌봐주면 한없는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엄마가 우리 아이에겐 내 기억 속 할머니와 같은 모습이겠지요. 누구에게나 할머니·엄마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할머니·엄마를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편집자말]
*주의! 이 글에는 영화 <미나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한 부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열심히 키우며 살고 있지만 뿌리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은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다 자기 농장을 만들기 위해 시골인 아칸소 행을 택한다.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아칸소의 황량하고 외로운 삶에 지쳐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윤여정)를 부른다. 모니카의 엄마이자 두 손주의 할머니인 순자(윤여정)는 그렇게 가방 가득 고춧가루와 멸치, 미나리 씨앗을 들고 미국을 향한다. 영화 <미나리> 이야기다. 

앤(노엘 조)과 데이빗(앨런 김) 두 남매는 할머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할머니와 한 방을 써야 하는 둘째 데이빗은 더더욱. 데이빗은 할머니가 코를 곤다며 불만이지만 이미 '낙장불입'이다. 할머니는 짐을 싸들고 오셨고 물러설 곳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싸온 커다란 가방에는 쓰디쓴 한약이 들어 있다. 할머니가 심장이 아픈 손주를 위해 한국에서부터 지고 온 것이다. 데이빗은 누나 앤이 달콤한 탄산음료를 마시는 걸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몰래 화장실을 향한다. 지긋지긋한 한약을 세면대에 부어버린다. 이 장면에서 뜨끔했다. '저거 내가 하던 짓이잖아!' 
 
 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주)

 
나는 <미나리>가 지금처럼 많은 상을 받지 않았어도 극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일부러 영화를 볼 시간과 마음을 마련해뒀을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내게 늘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 역시 유년시절을 할머니와 보냈고, 그 가운데 2년은 부모님 없이 오롯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데이빗이 할머니에게 냄새가 난다고 질색을 하거나 할머니가 하는 말을 무시할 때 가슴이 욱신거려 혼났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할머니 손에서 큰 손주라면 한 번쯤 비슷한 행동을 해보지 않았을까. 

할머니의 투박한 애정표현을 헤아리기에 손주들은 너무 어리다. 데이빗이 그랬고 내가 그랬다. 함께 살던 시절, 데이빗의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밤을 입으로 깨물어 내게 내밀곤 했다. 나는 할머니가 내민 밤, 고구마 같은 주전부리는 쳐다도 보지 않고 동네 가게에서 사 온 과자만 입에 넣었다. 할머니는 내가 손대지 않아도 매일 감말랭이처럼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간식거리를 작은 그릇에 넣어두었다. 그 그릇에 내가 어쩌다 한 번 손을 뻗으면 할머니는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까맣고 주름진 얼굴로 웃던 할머니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할머니와 살던 유년기에는 과자만 찾았는데 30대 후반이 되니 밤이나 고구마를 일부러 찾아 먹는다. 유년의 미각이란 게 참 무섭다. 

<미나리>에서 순자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습지에 미나리를 심는다. 터를 잘 잡은 미나리는 소담하게 자라나 가족의 먹거리가 되어준다. 순자는 흐뭇한 얼굴로 미나리를 보며 말한다. "미나리는 아무데서나 막 자라니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지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에도 찌개에도 넣어 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이 장면을 보는데 오래 잊고 지냈던 할머니의 맛이 떠올랐다. 순자의 얘기처럼 내게도 '뽑아 먹고 건강해진' 풀이 있었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 판씨네마(주)

 
어린 시절 나는 코가 유난히 약한 아이였다. 밤에 잠을 자다 툭하면 코피를 쏟았다. 양도 적지 않아서 한 번 코피를 흘리고 나면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이러다 말겠지 하던 엄마도 내가 코피를 흘리는 주기가 잦아지자 병원을 다녀야 하나 걱정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소쿠리를 든 채 집을 나섰다. 한참 뒤에 나타난 할머니는 즐거워 보였다. 소쿠리에는 잔디처럼 생긴 잡초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이 잔디 같은 풀이 '삐비'라고 했다. 책을 좋아하던 나는 단숨에 말괄량이 삐삐? 하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삐삐가 아니라 삐비라고 했다. 삐비는 삘기라는 식물의 사투리 표현이다. 다른 말로는 띠라고도 불린다. 삘기는 다 자라면 강아지풀 같은 모습이 되는데, 어린 이삭을 날로 먹기도 하고 뿌리줄기를 달여 먹기도 한다. 보기엔 쭉정이 같지만 이삭을 먹어보면 은은한 단맛에 깜짝 놀란다. 풀내가 섞인 싱그러운 단맛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많이들 먹었다고 하지만, 내가 자라던 80,90년대만 해도 삘기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손녀가 자다 코피를 흘려 걱정이라는 할머니의 말에 동네 이웃이 삘기 달인 물을 먹여보라고 귀띔을 한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그날로 당장 마을을 돌며 삘기를 캐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생으로 달이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마당에 삘기를 널어 말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삘기가 나물처럼 꼬들꼬들하게 말랐다. 할머니는 마른 삘기를 소중히 걷어 물에 넣고 달였다. 물에 삘기를 넣어 끓이자 보리차보다 더 진한 갈색이 우러나왔다. 한약을 싫어하던 나는 먹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할머니는 완강했다. 딱 한 모금만 마셔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오만상을 쓰고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한 맛이 있어서 한약보다는 마시기 훨씬 수월했지만 뜨거운 차에서 묘한 향이 올라와 마시기가 싫었다. 나는 정말로 딱 한 입만 마시고 도망쳤다. 

다음 날, 동네 어귀에서 뛰어 노느라 땀을 흘린 뒤 집에 들어온 내게 할머니가 "보리차 주래?"하고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보리차보다 달고 시원한 걸 주겠다며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잠시 후, 할머니가 내민 그릇에는 커피색의 네모난 얼음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이게 '하드 같은 것'이라고 했다. 사각 얼음을 하나 입에 넣자 달고 시원한 맛이 퍼졌다.

나는 신나게 사각사각 달콤한 얼음을 다 먹어치웠다.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었다. 알고 보니 그 얼음은 삘기 우린 물을 얼려 만든 것이었다. 그 해 여름, 할머니와 내가 살던 집에는 커피색 얼음이 늘 냉장고 냉동실에 준비돼 있었다. 할머니의 정성 덕분일까, 자다 코피를 흘리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9살쯤 되고 나서부터는 코피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미나리만큼 '원더풀'한 삘기의 기억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 판씨네마(주)


<미나리>를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할머니를 떠올렸다. 자기 손으로 키우던 손녀가 품을 떠나 학교를 차례로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는 동안 한 자리에서 늙어간 나의 할머니. 앉은자리에 풀 한 포기 안 날 것처럼 꼬장꼬장했지만 손녀를 위해 삘기를 캐고, 말리고, 달이고, 얼리던 사람. 한국에서 미국의 아칸소까지 와 달라고 해도 마다하지 않았을 사람. 나의 할머니를. 

나는 이민 1세대도, 2세대도 아니지만 <미나리>가 좋았다. 러닝타임 내내 할머니와 함께 살던 유년 시절로 나를 데려가 주었기에 그렇다. 가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울 때, 삘기 얼음을 꺼내 먹듯 이 영화를 꺼내서 음미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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