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캡쳐 기후위기 비상사태 시위

▲ 화면 캡쳐 기후위기 비상사태 시위 ⓒ KBS

 
지난 21일 방송된 KBS 특선다큐(그레타 툰베리-미래의 목소리)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에게 집중한 건 나쁘지 않았다. 기후위기(지구온난화)에 대한 그레타의 특별히 예민한 감수성을 부각시키고, 그레타의 적극적 행동과 그에 대한 전지구적 반향을 해설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기후위기에 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던 차에, 분명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였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문득 이런 걱정이 떠올랐다. 이슈가 인물보다 덜 주목받고, 메시지가 메신저에게 묻히는 현상에 대한 걱정이다.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 즉 '견지망월(見指忘月)'이 생각났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끝에서 들을 수 있었던 내레이터의 마지막 대사가 "고마워요, 그레타"였던 것도 마음에 조금 걸린다.
 
그레타에 대한 고마움이 바야흐로 지금 우리의 결론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레타가 간절히 그리고 간곡히 촉구한 이슈, 즉 메시지를 되새기며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불안을 촉구하다
 
2018년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를 시작했을 때, 열다섯 살 그레타는 불안을 촉구했다. 불안은 물론 쾌적한 감정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레타는 불안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를테면 그레타는 사회불안을 적극 조장한(?) 셈이다. 그레타는 처음부터 왜 어른들이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가, 질문했다. 명백히 불안을 느껴야 할 때인데 어째서 어른들은 평안을 느끼는가, 의구심을 표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스웨덴 의회 앞에서 등교거부 시위를 하는 그레타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불안의 아이콘'이라 할 만했다.
 
그레타가 태어나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 앨 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는 <불편한 진실(2006년)>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앨 고어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 현상(Boiling Frog Syndrome)'을 의미심장하게 환기한 바 있다. 냄비에 물을 붓고 펄펄 끓인 후 그 끓는 물에 냉혈동물(cold-blooded animal)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폴짝 뛰어 달아난다. 위험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지한 생물은 불안을 느껴 그에 상응하는 조치(도피)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냄비 안에 차가운 물을 채우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은 다음 불을 켜서 서서히 온도를 올리면 개구리는 '미지근하다—따뜻하다—뜨겁다—점점 더 뜨겁다'를 순차적으로 느끼다가 결국 최후를 맞는다(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 관람 가능). '끓는 물 속의 개구리 현상'은 지구온난화(기후위기)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우화이기도 하다.
 
지구온난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뜨겁다—점점 더 뜨겁다'의 수위에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그래서 그레타는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이 의미 있는 불안임을 알았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그런 의미 있는 불안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그레타는 그 불안감을 제대로 조성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 학교를 빠지기로 결심했다. 그레타는 자신이 유명해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레타는 다만 불안을 퍼뜨리고자 의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레타의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가 여러 곳에 기사화되면서 그레타는 유명해졌다. 여러 국제회의에 연사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레타는 연단에 올라 울먹이며 불안을 연설했다. 때로 불안에 둔감한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발산하기도 했다. 그레타의 메시지는 초지일관 '불안 촉구'였다.
 
그레타가 불안을 조성하며 나선 그때쯤 <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 >에서 수년간 무려 6천여 편에 달하는 논문들을 충분히 검토하며 얻어낸 장중한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펴냈다. 그 보고서는 "지구의 온도상승을 1.5도 이하로 묶어두어야만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그레타의 불안조성에 힘을 보탰다.
 
불안한 상태가 불안정하고 불쾌하여, 불안을 느끼는 게 좀 싫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해야 한다. 그레타가 원했던 것이 바로 우리 모두 불안을 느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모두, 진심으로 불안해하자. 2078년, 자기의 75세 생일에 지구의 기후가 도대체 어떤 상황일지 불안해 마지않는 그레타의 불안한 눈동자를 잊지 말자.
 
화면 캡쳐   (위)그레타의 1인시위, (중간) IPCC 보고서 관련 인터뷰 , (아래) 국제회의에 참석한 그레타의 표정

▲ 화면 캡쳐 (위)그레타의 1인시위, (중간) IPCC 보고서 관련 인터뷰 , (아래) 국제회의에 참석한 그레타의 표정 ⓒ KBS

  
행동을 촉구하다
 
불안한 눈빛, 앙다문 입술, 길게 땋아내린 양갈래 머리, 2018년 스웨덴 의회 앞에서 조촐하게 1인시위를 시작한 그레타의 사진은 삽시간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곧바로 그레타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듬해 2019년 그레타는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그해 5월에는 <타임>지 선정 '올해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혔다.
 
그 와중에 유명세의 부작용이랄까, 그레타가 애스퍼거 장애아라는 사실이 '가십거리'로 소비되기도 했다. 발달장애를 겪고 있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에 서툰 여자아이라며 그레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전문가들 사이에 애스퍼거는 '장애냐 차이냐'로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그레타는 그러한 공격을 지혜롭게 맞받아쳤다. 애스퍼거 특징이 자신에게 '기후위기라는 주제에 대한 반복적 집중'을 가능케 해주었다고 대응한 것이다.

또, 기후활동가 어른들에게 교묘히 조종당하는 꼬마일 뿐이라며 그레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레타는 기후위기에 관하여 스스로 연구했다.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후활동가 어른들에게 보호는 받았지만, 대본을 받지는 않았다. 그레타는 자신을 기후위기가 불러올 전지구적 재난의 '당사자'라 주장했다. 그 같은 그레타의 주장은 전세계 청소년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구온난화가 일으킬 전지구적 재난의 당사자들인 청소년들이 너도나도 "Me too!"를 외치며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벌떼같이 일어났다. 이제 등교거부 1인시위란 없다. 수십만, 수백만의 등교거부 시위가 줄을 이었다.
 
2019년 어느 날, 9월에 있을 국제회의 연설일정을 맞추기 위해 그레타는 미국으로 출발했다. 스웨덴에서 미국까지, 그레타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비행기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탄소배출량이 매우 높은 운송수단이다. 그레타는 자신의 연설뿐 아니라 행동이 주목받고 있음을 알았다. 그레타는 배(요트)를 선택했다. 뱃멀미를 견디고, 바닷바람도 견뎌가며, 탄소배출량 zero(0)를 달성하며, 오랜 시간을 배 안에서 보내고는, 드디어 미국땅에 들어섰다. 다큐멘터리는 그레타의 바다여행을 밀착취재해서 보여준다.
 
화면 캡쳐 그레타가 타고 있는 배: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 패널, 수중 터빈이 장착돼있는 요트.

▲ 화면 캡쳐 그레타가 타고 있는 배: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 패널, 수중 터빈이 장착돼있는 요트. ⓒ KBS

  
2019년 9월 21일, 그레타의 미국입성을 기하여 전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시위가 개최됐다. 한국에서도, 대학로에서 열렸다. 그날 나도 그 시위대열에 참여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소년 참여자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정규학업을 마치고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위협을 직접 감당해야 할 '당사자'들이 그들이란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청소년들은 당사자로서의 절실함을 결사항전의 자세와 몸짓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시위 기자가 직접 촬영한 시위행렬

▲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시위 기자가 직접 촬영한 시위행렬 ⓒ 이인미

 
그로부터 1년 반, 시간이 흘렀다. 기후위기 비상사태는 지속되고 있으며,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 긴급한 비상사태 속, KBS 다큐멘터리 <더 나은 삶 안전한 대한민국: 그레타 툰베리-미래의 목소리>가 그레타를 소환하여, 그레타에게 새삼 고맙다 말 건넨 것은 성의 있는 노력임에 틀림없다.

허나,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고맙다'는 인사말보다 그레타가 더 듣고 싶어하는 말(사실인즉 우리 모든 지구인들에게 의미 있는 말)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건 바로 이런 말, 이런 약속이리라!
 
"지금 당장 책임있게 행동하겠어!"

"난 투표권이 있는 어른이니까 투표로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도록 압력을 넣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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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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