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날 키워준 건 할머니였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화내기보다는 감싸주는 쪽을 택한 할머니의 사랑은 내 성장의 자양분이었습니다. 내가 결혼해 아이를 낳자 엄마는 이따금씩 아이를 돌봐주면 한없는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나의 엄마가 우리 아이에겐 내 기억 속 할머니와 같은 모습이겠지요. 누구에게나 할머니·엄마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할머니·엄마를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편집자말]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처음 만난 손자, 데이빗에게 선물이라며 밤을 꺼내서 보여준다. 껍질을 까주려고 밤을 입안에 넣고 깨물어 속살을 뱉어 건네자 미국에서 나고 자란 7살 데이빗은 기겁을 하며 몸을 한껏 뒤로 뺀다. 손자와 친해지고 싶은 할머니의 한국식 방법이 미국 손자에게 생각보다 잘 통하지 않는다. 영화 <미나리>의 한 대목이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감독의 어린 시절이 녹아든 자전적 영화로,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한국계 가족의 이야기이다. 낯선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가는 이민가족의 서사도 서사지만, 봄바람처럼 마음을 살랑이게 하는 부분은, 한국에서 온 할머니의 진한 한국식 사랑이 미국 손자에게 잔잔하게 스며드는 장면들이다. 할머니로부터 손자에게로 전해지는 한국적 정서는, 세대와 문화와 국적을 뛰어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승계로 보는 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데이빗을 이끄는 할머니의 연륜

안타깝게도 할머니(윤여정)와 데이빗(앨런 김)은 처음에 자꾸 엇나간다. 화투를 가르치며 나쁜 말을 쓰고, 한국에서 쓰디쓴 한약을 가져온 할머니가 데이빗은 못마땅하기만 하다. 그런 데이빗을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는 잠자리에서 곧잘 오줌을 싸는 데이빗을 장난스레 놀려댄다. 설상가상으로 그 사실을 데이빗의 새 친구 앞에서 폭로까지 해 버린다. 할머니에 대한 못마땅함은 분노가 되고, 데이빗은 할머니에게 맹랑하기 짝이 없는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할머니가 괜찮다니 성큼 개울가로 내려가 주변을 노니는 데이빗

할머니가 괜찮다니 성큼 개울가로 내려가 주변을 노니는 데이빗 ⓒ 판시네마

 
그렇다고 할머니와 데이빗이 시종일관 각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햇살 좋은 어느 날엔 집에서 좀 먼 개울가까지 산책 겸 탐사도 함께 간다. 부모는 뱀이 나와 못 가게 했다지만, 할머니는 괜찮다며 개울 가까이 가도 좋다고 한다. 할머니가 괜찮다니 성큼 개울가로 내려가 주변을 노니는 데이빗. 할머니와는 오랜만에 평화다. 할머니의 연륜이 데이빗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고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정말 개울가 저편에 굵은 나뭇가지 위를 스르르 지나가는 뱀이 나타난다. 데이빗이 깜짝 놀라 뱀을 향해 큰 돌을 막 잡아 던지려는 찰나 할머니가 침착하게 말한다. 
 
"데이빗아, 내버려 둬. 내버려 두면 제 알아서 갈 길 간단다. 사실 눈에 보이는 위험은 그리 무서운 게 아니야.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무서운 법이지."

오랜 세상살이에서 얻은 할머니의 살아 있는 지혜도 미국의 손자에게 생생히 전해진다. 

할머니와 당돌한 어린 손자의 이야기는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영화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바로 2002년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다. 이 영화에서도 말은 못 하지만 손자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베푸는 할머니가 나온다. 할머니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린 손자, 상우(유승호)와 어쩌다 잠시 함께 지내게 된다. 산골의 할머니와 버르장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손자의 소소한 일화들이 전혀 소소하지 않은 감동으로 이어지며 지금도 내 마음속 명작으로 고이 기억되는 작품이다. 

<집으로>의 할머니는 <미나리>의 할머니랑 결이 좀 다르긴 하다. <미나리>의 할머니가 손자와 티격태격하며 애정을 전한다면, <집으로>의 할머니는 마치 할머니네 집을 둘러싼 산들과 앞 개울 같은 느낌이다. 늘 같은 자리에 머물며 말없이, 한없이 손자를 품어주는 게 꼭 자연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천방지축 상우를 품어 따뜻한 심성의 사람으로 자라게 한다. 
 
    나란히 앉아 있으나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듯

나란히 앉아 있으나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듯 ⓒ 튜브엔터테인먼트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스팸이 없으면 밥을 못 먹고, 낮이나 밤이나 게임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상우는 말 못 하는 할머니를 대놓고 업신여긴다. 그래도 할머니는 노여워하지 않는다. 그저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할 뿐이다. 어슴푸레한 저녁, 산중 시골 방에 바느질을 하는 할머니와 게임에 온 정신이 팔린 상우는 나란히 앉아 있긴 하나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게 선명하게 와 닿는다. 

몸만 할머니네에 있을 뿐, 여전히 도시 물이 잔뜩 밴 상우가 드디어 할머니의 세상을 마주하게 될 일이 일어난다. 게임기의 배터리가 나가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는 상우의 못된 짓이 도를 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배터리 살 돈을 내놓으라고 빨래하는 할머니를 밀치질 않나, 하나밖에 없는 요강을 발로 차 깨 버리는 심통을 부리질 않나, 할머니의 한 벌밖에 없는 기운 고무신을 숨겨 버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상우에게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물을 길어 맨발로 산을 오르내릴 뿐이다. 못된 상우는 급기야 할머니의 비녀까지 빼어 들고 배터리를 살 요량으로 인근을 사방팔방 돌아다니지만 빈 손으로 돌아온다. 상우는 그제야 할 수 없이 게임기에서 눈을 들어 자신을 둘러싼 할머니의 세상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소나기에 빨랫줄에 젖어가는 옷들이 보이고, 심심해서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맘에 드는 옆 동네 여자아이와 순박한 동네 형도 만난다. 시도 때도 없이 동네를 뛰어다니는 미친 소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한밤중에 배가 너무 고파 깨어난 상우는 방 한쪽에 밀쳐져 있던 백숙을 맛있게 뜯어먹는다. 할머니가 저녁으로 해주셨지만 후라이드가 아니라며 투정만 부리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백숙이다. 배가 부른 후에야, 방 한켠에 몸져누운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닭을 구하느라 장에까지 먼 길을 비까지 맞으며 다녀온 할머니가 병이 난 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상우의 심경변화가 일어난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상우는 열이 나는 할머니에게 이불을 덮어드리고, 머릿수건을 올려드리며, 밥을 차려 내온다. 할머니가 상우를 돌봐준 방식 그대로 할머니를 돌봐드린다. 

할머니의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상우
 
    후라이드가 아니라며 투정만 부리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백숙

후라이드가 아니라며 투정만 부리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백숙 ⓒ 튜브엔터테인먼트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상우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진심이 조금씩 조금씩 상우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세상은 천천히 상우의 몸속에 그득했던 스팸, 콜라, 햄버거, TV, 게임 등 도시의 온갖 중독들을 해독해내고,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 대해 느끼고 배워가게 만든다. 

할머니의 세상을 배워가던 어느 날, 상우는 둔턱에 빠져 무릎에서 피가 나고 다치게 된다. 몸도 성치 않은 그때 하필 미친소로부터 추격까지 당해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간신히 터벅터벅 몸을 끌고 집으로 향하는데 마중 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하늘 아래 유일한 제 편이라도 만난 듯 꺼이꺼이 북받쳤던 울음을 토해낸다.

할머니는 상우의 상처를 살피고 괜찮다며 연신 얼굴과 어깨를 쓰다듬는다. 할머니의 투박한 손길에 담긴 깊은 위로가 상우를 더없이 안심시켰을 것이고, 상우는 이제 할머니의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의지하게 된다. 상우에게 베푼 할머니의 헌신적 사랑은 가시돋친 상우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두 영화에서 할머니들은 손자들이 잘 자라도록 필요한 양분을 빨아 올려주는 뿌리 같은 존재들이다. 미국에서든, 시골에서든 부모보다 넓은 영역을 허하여 세상을, 사람을 느끼게 하고, 진한 사랑과 함께 지혜까지 전해준다. 그렇게 감화된 진한 사랑과 지혜 덕분에 손주들은 정체성도 확립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자로 성장한다.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남겨줄 것으로 이보다 더 귀한 게 있을까.

<집으로>의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하는 걸 보니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나던 구수한 짚더미 태운 냄새가 떠오른다. 명절에 방문한 할아버지 댁에서 아침잠에 곤하게 빠져 있을라치면, 할아버지는 방이 식어 손주들이 추울까 봐, 동도 트지 않은 추운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피러 나가셨다.

그리곤 한참 있다 짚더미 태운 냄새 가득 밴 채로 방에 들어오셔서는 살그머니 손주들 손을 어루만지며 어쩜 손이 이리도 보드랍냐고 감탄을 하시다, 따뜻하게 잘 잤냐고 나긋나긋 물어보셨다. 할아버지의 손길과 정감넘치는 목소리로 잠을 깨던 그 아침이 참 정겹고 좋았더랬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다는 게 어찌나 든든하고 달콤하던지. 당연히 짚더미 타는 냄새는 그 시절 따사로운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고, 늘 그리워하는 냄새가 되었다. 지금은 민속촌에나 가야 맡을 수 있는 아주 귀한 냄새가 되어 버렸지만. 구수한 짚더미 냄새를 남겨주고 가신 주름진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길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이다.
덧붙이는 글 기사로 채택되면, 동시에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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