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기리보이

기리보이 ⓒ 린치핀뮤직


래퍼 기리보이가 지난 22일 발표한 앨범 <시공간이랑 어쩌라고>에는 두 곡이 수록돼 있다. '시공간'과 '어쩌라고'다. 앨범명이 위트 넘친다. 이중 타이틀곡 '시공간'의 가사를 보면 <시공간이랑 어쩌라고>라는 앨범 제목이 단지 두 노래제목을 붙인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한다. 

'시공간'은 사랑을 과학의 관점에서 풀어내어 참신함이 돋보이는 곡이다. 시공간이라는 과학 안에서 사랑을 하며 이리저리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는 화자는 "시공간이랑 어쩌라고"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입장이다. 가사를 보자.

"시간은 진상이야/ 너와 나 헤어질 때로 데려가니까/ 여기는 비상이야/ 누군가 시계태엽을 감으려니까/ 우린 3차원 속 사람으로서/ 4차원 같은 미친 사랑을 하고/ 2차원적인 싸움을 매일 하지만/ 난 그냥 1차원 속 그저 미개한 인간/ 넌 자꾸 내게 중력처럼 당겨/ 그럴수록 나는 멀어질 텐데"

헤어짐의 순간으로 간다는 첫 구절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여기는 비상이야'라는 구절에선 시계태엽을 감으려는 이를 막으려는 화자가 있는 공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다가 4차원부터 1차원까지 시공간이 뒤섞이는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사랑이라는 알 수 없고 복잡한 차원의 문제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우린 중량이 다르니까 떨어질 때도/ 다를 수밖에 없어 사이 벌어진대도/ 내가 빨리 갈 때/ 너가 많이 느려지는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그냥 과학인 거야

그니까 내가 느려질 때/ 너는 나의 발을 맞춰/ 과학 문제처럼 그냥 내 해답을 맞혀/ 그럼 내가 이제 그 문제를 해결할게/ 나의 실수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할게"


연인 사이가 멀어지는 걸 중량에 비유해 과학이라고 못 박는 점에서 화자가 이런 갈등의 상황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눈치챌 수 있다. 나의 잘못 혹은 너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는 것 자체가 괴로운 화자는 "그냥 과학인 거야"라고 말하면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진다. 그럼 '나의 실수들을 과학적으로 해명할게'에 이어지는 그 문제들을 살펴보자.

"문제 1 우린 일이 너무 많아/ 너가 먼저 끝나도/ 내가 안 끝날 수 있잖아
문제 2 넌 의심이 너무 많아/ 진짜로 걔는 친구고/ 친척일 수 있잖아
문제 3 진짜 너무 막혀 차가/ 우리 데이트 장소 맨날 강남이잖아
문제 4 5 6 7 8 9 10/ 넌 이걸 풀 생각이 전혀 없단 거지"


마치 과학 시험지 앞에 앉은 기분이다. 첫 번째 문제를 보면 두 사람의 속력의 차이를 언급하고 있고, 두 번째 문제는 말하자면 가설의 문제, 세 번째 문제는 공간의 문제, 네 번째 문제는 의지의 문제다. 화자는 연인과 자신 사이의 심리적 문제를 이렇듯 시공간에 얽힌 문제로 옮겨놓음으로써 여전히 '우리 잘못이 아냐'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관계가 깨어지지 않길 바라는 화자의 심리를 추측해본다.
 
 기리보이의 <시공간이랑 어쩌라고> 앨범자켓

기리보이의 <시공간이랑 어쩌라고> 앨범자켓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내가 두뇌를 꺼내서 보여주면/ 너가 날 이해하고서 봐줄라나/ 내가 달콤한 말들로 공격하면/ 너가 씁쓸한 미소로 반응한다/ 사랑 같은 건 왜 이리 달콤할까/ 우린 왜 맨날 개미처럼 반응하다/ 싸우고 사과하고 화내고 반복/ 사랑은 과학이고 우리는 그 과정"

가사를 계속 보면 헤어진 듯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만 같다. 여전히 사랑은 달콤하다는 생각을 가진 화자는 매번 비슷한 과학적 패턴으로 싸우고 화내고를 반복하는 이 과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랑은 과학이니까, 우리는 그 과정 안에 있으니까 때론 서로 멀어지고 때론 보다 가까워지는 이 과정이 당연하다고, 자연의 이치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랑을 과학에 빗댄 것이, 가사 초반부에선 어쩔 수 없는 합리화처럼 보였지만 가사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처럼 보였다. 물론 이 가사를 쓴 기리보이의 의도는 다를 수도 있다.

한 명의 리스너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끝 부분 가사를 보면서 두 사람의 해피엔딩을 그려보았다. 

"너와 나는 같을 때와/ 다를 때도 항상 함께 하는 xy"
기리보이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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