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인디극장 X 오렌지필름 기획전 : Time travel]은 오프라인에서 관객을 만나온 오렌지필름의 '시간'과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을 만나온 네이버 인디극장의 '시간'을 교차하며, 영화가 가진 '시간'을 찾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관객들이 직접 선택한 작품들을 포함한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작품들을 3월에서 8월까지 총 5회차에 걸쳐 순차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작품은 네이버 인디극장(https://tv.naver.com/indiecinema)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스틸컷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스틸컷

▲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스틸컷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스틸컷 ⓒ 네이버 인디극장

 
01.
플라이 투 더 스카이
감독 : 구교환, 이옥섭 / 출연 : 조성환, 구교환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성환(조성환 분)과 교환(구교환 분)이 한국에서 재회한다. 성환이 한국을 떠나기 전에,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었다. 가죽 공예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었던 성환. 그리고 어떻게든 영화판에서 살아남아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교환이다. 결과는 참혹하다. 한국에 남았던 교환은 굴삭기 면허증을 취득했고,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던 성환도 별다른 소득없이 중도 포기하고 돌아왔다. 어쨌든 다른 살 길을 찾은 교환을 보며 성환 역시 건설기계조종사 면허증을 딸까 하고 고민한다.

구교환, 이옥섭 연출의 단편 영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삶을 저울질하는 두 남자 성환과 교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을 온전한 업으로 삼고 살아가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취미 생활로만 남겨두기에는 미련이 남는 마음. 영화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그런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체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영화 속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지만, 흐름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오브젝트들에 담긴 의미 역시 힘을 더한다. 가령, 지속적으로 비치는 가죽 공예품들이 대화 속에서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 성환의 미련을 전달하는 식이다.

'꿈이 바뀐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부끄러운 것은 꿈이 사라진 것이고, 더 부끄러운 것은 꿈을 핑계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방가방가>(2010)의 육상효 감독이 남긴 말을 차용한 부분은 이 작품의 전체를 아우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으면 부러진다'고 알려진 이 작품의 연출 의도와도 서로 상응한다. 기존의 꿈을 포기하는 일도 쉽지 않고, 새로운 꿈을 선택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 삶은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영화 속 두 사람의 모습처럼 흔들리며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겁이 나기도 한다. 소중하고 간절하게 걸어온 이 걸음을 지금 포기하는 일이 혼자만 패배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영화 관두고 중장비 일 하는 거, 그거 진짜로 하는 거지?' 교환에게 묻는 성환의 모습처럼.

영화 <반도>(2020)의 서대위 역으로 상업 영화에까지 무사히 안착하며 대중에게 스스로를 각인시키고 있는 배우 구교환과 영화 <메기>(2018)를 시작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인정받기 시작한 이옥섭 감독의 작품,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은 항상 정제되고 잘 포장된 장면에 익숙해져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상업 영화에 비해 짧고 투박하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여물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말미에서 이뤄지는 두 사람의 대사는 압권이다. 구교환, 이옥섭이 함께 작업한 또 다른 작품들이 반드시 궁금해질 것이다.
 
영화 <고온다습> 스틸컷 영화 <고온다습> 스틸컷

▲ 영화 <고온다습> 스틸컷 영화 <고온다습> 스틸컷 ⓒ 네이버 인디극장


02.
고온다습
감독 : 김호정 / 출연 : 문혜인, 이승현, 서석규

'재능은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생긴대. 내가 믿어 줄게.'

소설가 지망생이 되고 싶은 보코(문혜인 분)와 승현(이승현 분)은 함께 작업실을 공유하는 사이다. 같은 꿈을 꾸며 서로를 응원하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사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함께 하기에 훨씬 힘이 된다. 작업 일정을 조정하는 일로 출판사에 간 보코는 학교 선배였던 희제(서석규 분)를 만나게 된다. 출판업계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희제는 보코에게 자신의 신간 표지 일러스트를 부탁한다.

일러스트 작업은 그녀가 생계를 위해 부업으로 하고 있던 일이다. 보코는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고민 끝에 그 일을 맡기로 한다. 한편, 승현은 공모전에 낼 자신의 작품을 희제에게 보이며 조언을 얻고자 한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보코는 희제에게 허리를 굽혀가며 아부를 떠는 것 같은 승현의 모습이 마뜩잖다. 하필이면, 작업실까지 들어와 그러는 꼴이 더 보기가 싫다.

김호정 감독의 영화 <고온다습>의 이야기다. 35분을 조금 넘는 이 작품은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모양의 방식을 취하려는 두 사람을 조명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그 자락에 닿고자 하는 보코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하루 빨리 성공하고자 하는 승현이다. 서로 다른 방식을 가진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과 승현이 도움을 구하려는 이가 보코와도 인연을 맺고 있는 희제라는 점은 충돌을 일으켜 문제를 발생시킨다. 더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 그 중에는 희제가 그녀에게 일러스트 작업을 맡긴 점도 유효한 부분이 될 것이다. – 보코는 희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 <고온다습>은 어떤 자격지심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신이 바라는 본업의 길 위에서 성공한 지인으로부터 부업의 제안을 받은 것과 그 마뜩잖은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 그런 사람에게 저자세를 보여가며 자신의 작업물을 검사 받으려는 메이트.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어쩌면 당연하고 고마운 일일지도 모르는 일들이 처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감독은 이야기하고자 한다.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던 이가 타인의 어깨를 바라볼 때 미워지는 이유가 이 영화 속에 담겨있는 셈이다.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꿉꿉하고 덥고, 짜증나는 고온다습한 분위기가 영화를 내내 맴돌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 네이버 인디극장


03.
졸업
감독 : 한태희 / 출연 : 이유진, 한초원, 정광수

한태희 감독의 영화 <졸업>은 28번째 생일을 맞는 도연(이유진 분)의 이야기다. 올해로 벌써 세 번째.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택배 상자를 받았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영화 <러브레터>(1995)의 DVD. 도연이 영화 평점 사이트에 별 다섯 개를 줬던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왔던 <몽상가들>(2003), 재작년에 왔던 <화양연화>(2000)도 마찬가지다. 모두 별 다섯 개로, 언젠가 그녀가 사랑했던 작품들이다. 이상한 마음에 자신과 함께 이 영화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리스트를 적어 본다. 세 편 모두에 별 다섯 개를 준 사람이 딱 한 사람이 더 있다. 민아(한초원 분)다. 잊고 지냈던 그녀의 기억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감독의 졸업 작품인 이 영화는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상상에서부터 출발한 작품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비슷한 처지의 모두가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 아마도 각자의 길을 찾아 모두 뿔뿔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지금 돌아보면, 감독 본인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삶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흩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모이기도 하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 <졸업> 속에 등장하는 도연이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감독이 했던 생각들의 출발점에 놓인 고민과 맞닿아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에 대한 쓸쓸함은 극 중 도연과 태우(정광수 분)의 대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입대 후 백일 휴가로 자신이 롤모델로 생각했던 도연을 찾아온 태우. 하지만 그의 앞에 앉은 도연은 그가 생각했던 능력 있고 재기 발랄한 인물이 더 이상 아니다. 특별한 직업없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대신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그녀는 직업의 문제를 떠나 세상 모든 일에 염세적인 태도를 보인다. 어쩌면, 도연에게는 태우 또한 자신의 곁을 떠난 인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다만 여기에서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그런 도연의 태도 또한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연은 자신에게 DVD를 보내온 인물이 누구인지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하루가 아쉬울 휴가를 할애하며 자신을 굳이 찾아온 태우에게도 살갑게 굴지 못한다. 결국 세상이 자신을 떠나갔다고 생각하는 그녀이지만, 자신 또한 세상에게 그리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몫만큼, 그녀 역시 변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세상에는 변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 변화의 시기를 함께 맞이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영화 독립영화 네이버인디극장 오렌지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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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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