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펠레>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펠레> 포스터. ⓒ 넷플릭스


불과 얼마 전, 현존 최고의 축구 선수로 손꼽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767골로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로 손꼽히는 펠레의 골 기록을 넘어서 역대 3위(1위는 체코의 요제프 비찬이 805골, 2위는 브라질의 호마리우가 772골)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제스포츠통계재단이 공식적 골을 기준으로 통계 낸 결과에 따른 것이기에 신뢰도 측면에선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체코축구협회와 브라질 프로축구팀 산투스가 나서서 각각 요제프 비찬과 펠레의 골 기록을 높였다.

그런 와중에, 펠레가 SNS를 통해 본인의 골 기록을 1238골로 급격히 높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어느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대기록이라 하겠다. 펠레의 1000골 돌파를 기념하며 축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찾아 볼 수도 있으니,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니다.

축구에서 골은 분명 중요하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골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모두 '역대 최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을 보면 축구에서 골이 전부는 아닌 게 확실하다. 역대 최고가 되기 위해선 개인 기록은 물론, 클럽 기록과 국가대표 기록까지 두루두루 완벽해야 하며 축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해야 한다. '펠레'는 이 모든 걸 갖춘 축구 역사 최고의 선수임에 분명하다. 

간략히나마 들여다보는 펠레의 발자취
 
 다큐멘터리 <펠레>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펠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펠레>는 80세가 넘어 인생의 황혼기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펠레의 발자취를 간략하게나마 들여다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그동안 축구 선수 마라도나, 아넬카, 그리에즈만의 삶을 조명했는데 드디어 펠레에 도달하게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펠레와 마라도나를 가장 앞에 배치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이제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인가 싶다. 마라도나는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과 다큐멘터리 시리즈 한 편을 찍고 2020년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영화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펠레의 모습을 보여주면 시작하는데, 영원할 것 같은 그 이름과 명성이 적어도 그 개인의 외견상으로는 사그라드는 것 같아 충격적이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1940년생인 그는 10대 시절부터 실력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것도 뛰어난 정도가 아닌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이미 완성된 실력을 뽐냈다. 펠레는 1956년에 브라질 최고의 클럽이자 브라질 최초로 남미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에도 올랐던 '산투스 FC'에 들어가 2년 뒤인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한다. 

그의 조국 브라질은 1950년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게 졌고 1954년엔 8강전에서 헝가리에 졌다. 1958년 브라질은 명명백백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그때 브라질 전국민의 관심과 걱정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불과 17살의 나이로 출전한 이가 펠레였다. 

펠레는 모든 이가 잘 알고 있듯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단독 주연급 활약을 보여준다. 프로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대 선수의 첫 월드컵 출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활약이었다. 그는 4강전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한 걸 비롯해 결승전에서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을 넣는 등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후 펠레의 인생과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진다. 

축구 황제 '펠레'의 전성기

1958년 월드컵 이후 펠레는 전성기를 활짝 열어 젖힌다. 수많은 대회에서 수많은 골을 획득하며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브라질 온국민이 '펠레! 펠레! 펠레!'를 외쳤다. 아직 20대도 채 되지 않은 펠레는 이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브라질은 다음 월드컵인 1962년 칠레 월드컵을 바라마지 않았다. 펠레의 자신감도 충만했다. 

하지만 1962년 월드컵이 시작되고 두 번째 경기만에 펠레는 큰 부상을 당해 경기에서 이탈한다. 상대편의 잘못도 아니었고 펠레의 실수도 아닌, 그저 불운에 의한 부상이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펠레가 빠진 브라질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듯했으나, 디펜딩 챔피언팀으로서의 저력을 유감 없이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해 버렸다. 펠레의 자리를 대신해 투입된 아마리우두의 활약이 컸다. 펠레는 아마리우두를 향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를 뛰든 안 뛰든 이미 국가적 영웅이었던 펠레의 영향력이 발휘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월드컵 2연패로 브라질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린다. 전국민이 연일 축제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1964년 군부 쿠데타로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브라질에 정치적 암흑기가 도래한다. 펠레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펠레는 말한다,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고 말이다. 실제로 그는 이전과 다름없이, 높으신 분들이 부르면 그게 누구든 상관 없이 최대한 참석하며 자리를 빛냈다. 그런가 하면, 어떠한 정치적 견해도 내놓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그저 축구만 열심히 했을 뿐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영화는 그의 행보를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펠레는 군부 독재 체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말도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몇몇 사람은 그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펠레를 해칠 수 없었다며 그렇기에 그가 정치적 올바름을 향한 행보를 보였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미국의 국가적 스포츠 영웅이었던 무함마드 알리의 '링 안에서도 링 밖에서도 위대한 파이터'다운 행보처럼 말이다. 물론 펠레의 행보를 두고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아쉬움을 자아내는 건 사실이다. 

펠레를 둘러싼 이야기들
 
 다큐멘터리 <펠레>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펠레>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국내 정치적 혼란을 뒤로 하고 브라질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을 심어 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 시작된다. 대회 2연패로 최강의 우승 후보로 점쳐진 브라질, 그리고 브라질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관심을 갖고 지켜 보는 펠레. 조별리그 시작은 가볍게 승리로 장식했지만, 펠레는 통증을 호소하며 두 번째 경기에선 뛰지 못한다. 결국 브라질은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첫 패배를 기록한다. 이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에우제비우를 앞세운 포르투갈이 맹공격을 퍼붓고, 펠레만을 노리는 가학적인 태클공격도 등장한다. 펠레는 부상을 입은 채 경기를 이어가지만 브라질은 패배해 짐을 싸고 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에 브라질은 침체에 빠지고, 상대의 악질적인 반칙 공격에 신물이 난 펠레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벗는다. 이후 펠레는 클럽 경기에 매진하며 경기장 밖에서도 이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각종 행사에 불려 다니고, 높으신 분들의 부름에 응했으며, 여지 없는 영향력을 뽐냈다. 그러다가, 은퇴를 번복하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한다. 자타공인, 펠레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었다. 펠레는 과연 신화적인 존재가 될 것인가. 

처음으로 지역예선에 출전한 펠레는 브라질의 6전 전승을 이끌며 1970년 월드컵으로 간다. 조별리그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 잉글랜드, 루마니아였다. 브라질은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를 만나 고전했지만, 결국 승리하고 다른 두 팀과의 경기도 모두 승리한다. 그리고, 8강 4강 결승도 모두 이기며 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는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전성기였고, 펠레는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3회 우승 멤버가 되었다. '축구 황제' 펠레로서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새삼 펠레를 둘러싼 각종 기록과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한 삶의 면면이 드라마틱하다. 다큐는 브라질이라는 '나라'와 펠레라는 '개인'에 대해 잘 보여줬지만, 한 편에 담다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펠레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깊고 넓게 다뤘으면 어땠을까란 마음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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