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가시리잇고>의 한 장면

드라마 <가시리잇고>의 한 장면 ⓒ SKY-채널A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냉대와 모욕 속에 노비의 질곡을 지게 된 민유정(박정연 분). 그런 그를 사랑했고 그를 구하려다 불길에 뛰어들게 된 '조선의 음악 천재' 박연(찬희 분).
 
SKY 사극 <가시리잇고>는 두 사람이 600년을 뛰어넘어 2021년에 다시 만나 음악 활동을 함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KT Seezn에서 미리 공개된 제5회는 박연이 가수 지망생인 민유정의 오디션 현장에 따라갔다가 우연찮게 무대에 함께 오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21세기에 태어난 민유정과 달리 2021년에 갑자기 환생한 박연은 민유정의 집에 얹혀살면서 유정이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데다가 그 자신이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기에, 긴장감을 느끼는 유정을 도와 즉석으로 듀엣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삿갓에 도포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박연을 보고, 사람들은 사극 출연자이거나 국악인이겠지 하는 정도로 가벼이 생각한다.
 
5회 방송이 6분을 경과할 때, 무대 위의 박연은 민유정의 노래 중간에 자연스레 끼어든다. "까닭 없는 아픔이오 꿈이었다고 생각하오"를 부르는 대목에서부터 약속이나 한 듯이 호흡을 맞춘다.
 
공연을 지켜본 심사위원은 "감동입니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들었던 노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라며 다른 참가자들을 배려하지 않는 극찬의 평가를 내린다. "합격(1차 합격)입니다. 축하드립니다"라는 선언에 민유정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오늘날의 오디션 열풍을 반영하는 이 장면을 실제의 조선시대 사람이 본다면, 그는 자기 시대와 지금 시대에 존재하는 공통점에 주목할지도 모른다. 공연 예술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점과 연예인 충원 시스템이 역동적이라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철학자이자 예비 관료인 동시에 예술가였던 선비
  
 드라마 <가시리잇고>의 한 장면

드라마 <가시리잇고>의 한 장면 ⓒ SKY-채널A


조선시대를 이끈 선비들은 철학자이자 예비 관료인 동시에 예술가였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시를 읽고 지었다. 시 짓는 능력이 이들의 출세에 결정적이었다. 시를 짓지 못하면 과거시험 통과에도 지장을 겪었다.
 
오늘날 우리가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는 이상으로 선비들은 명시를 암송하거나 즉흥시를 짓곤 했다. 이들이 시를 얼마나 좋아했는가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롤모델인 정몽주의 삶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이 건국된 1392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틈만 나면 시상에 젖어들곤 했다. 여행 중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술을 마시다(飮酒)>에서 그는 "집에 돌아가 돈 떨어졌다고 자책하지 말자/ 새로운 시들이 비단주머니에 가득 남았으니까"라고 읊었다. 경비가 많이 들더라도 여행을 하며 시를 마음껏 짓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정도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었기 때문에, 조선시대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보다 예술적 기운이 더 충만할 수밖에 없었다. 선비를 고리타분한 존재로 치부하는 인식은 이들이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은 예술적 감성이 풍성한 사회였고, 그런 속에서 공연예술가를 충원하는 시스템도 발달했다. 오늘날의 연예기획사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체도 상당히 많이 생겨났다.
 
그런 조직 중 하나가 재인청(才人廳)이었다. 2009년에 <한국사 시민강좌> 제45집에 실린 박전열 중앙대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의 유랑 예인의 계통과 연희'는 "재인청은 지방 관아의 연희 행사에 동원됨은 물론 궁중의 대규모 행사에도 동원되어 산악, 백희, 갖가지 춤, 판소리 등을 연희"했다고 말한다. 이런 재인청이 연예인을 충원하고 무대에 세우는 데도 역할을 했다.
 
이 논문은 재인청 조직과 관련해 "각 도마다 도청(都廳)이 있었는데, 그 장을 대방(大房)이라 했으며, 대방 밑에는 두 사람의 도산주(都山主)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도 단위의 조직이 존재했으니, 지금의 연예 기획사에 비해 조직력이 결코 약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재인청은 경기·충청·전라도 역사에서 발견된다. 이 조직이 확인되지 않는 곳에서는 재인촌이라는 존재가 나타난다. 작년에 <국제문화예술> 제1권 제2호에 실린 김미희의 '조선시대 연희 집단의 계통에 따른 성격과 음악 전승 양상'은 경기 이북의 재인촌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재인촌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자료가 부족하여 알기 어렵지만, 평안도·황해도를 비롯해 경기 이북에서 재인 또는 광대로 불리는 사람들이 재인촌을 형성해 살았고, 재인촌은 황해도 등 군마다 있었으며, 이들은 삼현육각의 음악을 세습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거문고·가야금·향비파와 북·장구·해금·피리 및 태평소 둘을 포함하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의 음악이 재인촌을 통해 전승됐으니, 이곳이 음악학교 기능도 어느 정도 수행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당패 같은 개별 조직도 예술가를 자체 선발했지만, 재인청·재인촌 등도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역량이 있었다.

연예인 충원 방식은 이 외에도 더 있었다. 관노비(공노비) 중 일부를 관기로 충원하는 것도 그런 방식 중 하나였다. '관기'나 '기생' 하면 흔히 술시중을 연상하지만, 술시중은 그들의 본업이 아니었다. 주업은 어디까지나 예능이었다. 공직자와 그들의 사적 접촉은 원칙상 허용되지 않았다. 힘 있는 관료들이 권력을 남용해 사적인 목적을 충족했을 뿐이다.
 
관기들은 원칙상 예능 실력으로 평가를 받았고, 개중에는 한양으로 발탁되는 이들도 있었다. 광해군의 최측근인 어우당 유몽인이 정리한 <어우야담>에는 경상도 상주에서 관기로 활동하다가 한양으로 스카우트된 성산월이 밤늦게 귀가하던 중에 비가 쏟아지자 어느 선비의 공부방을 노크하며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양으로 스카우트돼 자부심이 대단한 성산월이 밤새도록 신신당부했지만, 이름이 김예종인 이 선비는 무서워 떨며 끝끝내 열어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성산월은 "너는 정말 복이 없다"며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돌아갔다.

조선시대 연예인이 갖춰야 했던 자질 
 
 드라마 <가시리잇고>의 한 장면

드라마 <가시리잇고>의 한 장면 ⓒ SKY-채널A


불교 사찰에서도 예술가 충원이 있었다. 위의 박전열 논문은 "불교의 포교를 위한 연희가 있는가 하면, 불교를 표방하여 수입을 올리고자 하는 연희 집단도 있었다"며 "원효의 무애희 전통이 오랜 동안 지속되면서 민중에 널리 수용되고, 무애희뿐만 아니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불교적 색채를 띤 다양한 재승 계통의 연희 집단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불교 악극인 무애희를 공연하는 재승(才僧)이 되는 길도 예술가가 되는 코스였던 것이다.
 
연예인을 충원하는 방식이 역동적이었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옛날의 예술가 충원에는 오늘날과 다른 측면이 당연히 있었다. 지금은 예술적 소질만 출중하면 연예인이 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연예인 상당수는 무당처럼 무속적 특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예술적 소질에 더해 무속적 특성도 연예인이 갖춰야 자질 중 하나였던 것이다. 누구나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까지만 해도 그런 특성을 가진 연예인들이 훨씬 유리했다.
 
거기다가 신분적 제약도 있었다. 관청 공연의 기회가 훨씬 많은 관기의 경우가 특히 그랬다. 관기가 되려면, 신분이 노비여야 했다. 양인(자유인) 신분을 가진 사람은 이 점에서 결정적 제약을 갖고 있었다.
 
취미나 부업이 아니라 전업으로 예술을 할 경우에는 상상 이상의 희생을 치를 수도 있었다는 점 역시 오늘날과 다른 점이다. 오늘날에는 연예인이 사업을 겸영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정치인이 되는 데에 별다른 장애가 없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연예인이 되려면 상당한 사회적 절연을 감내해야 했다.
 
재인촌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든지 불교로 귀의해야 한다든지 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거기다가 대중예술 전문가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도 각오해야 했다. 선비들처럼 취미나 부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고, 이에 전적으로 뛰어들 경우에는 사회적 편견과도 맞닥트려야 했다.
 
그런 차이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공연 예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항상 높았고, 이를 위한 인적 충원 시스템도 항상 활발하다는 점이다. 이런 수요와 충원 시스템이 계속 기능을 발휘해왔기에 한국의 대중예술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시리잇고 박연 재인촌 조선시대 연예인 재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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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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