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은 올림픽이 아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영화라는 예술은 국가대항전 종목도 아니요, 그 가치를 평점과 매출액과 같은 수치만으로 매길 수 있는 재화도 아니다. 더군다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세계 최고의 영화시상식이라는 보편적 인식도 지난해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로컬 시상식' 발언을 하며 보기 좋게 비꼬지 않았던가.

영화 <미나리>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서 후보가 되며 모든 언론과 여론이 고양되고 동요된 듯하다. <미나리>에 태극마크를 부여하며 부산스럽게 수상 여부를 점치기보다는 가족들과 고즈넉이 차 한 잔 마시며 영화를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 가족을 다룬 영화이지 않은가.
  
 <미나리>의 한 장면

<미나리>의 한 장면 ⓒ Plan B Entertainment

 
뿌리 내리기
 
눈이 좀 부시지만 따스해보이는 볕 아래서 녹지를 가르는 두 대의 차량. 커다란 짐차와 승용차 한 대가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온 한 가족이 두 차에 짐을 나눠싣고 이사를 하는 중이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누나와 막내. 네 식구가 그 주인공이다. <미나리>의 시작은 실화에서 출발한다.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한 감독 리 아이작 정(정이삭)은 한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가 실제로 미국이라는 낯선 곳으로 넘어온 부모님과의 생활을 기초로 완성한 이야기가 <미나리>인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 개구쟁이 소년 데이빗(앨런 킴)의 시선은 감독의 시선이기도 하다.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의 시골 동네 아칸소로 이사를 온다. 제이콥은 자신이 한국 작물로 농사를 지어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확신을 보이며 아내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내는 영 못미덥다. 더군다나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이 언제라도 병원을 갈 수 있으려면 차라리 원래 머물던 캘리포니아가 더 낫다는 생각에 쉽사리 남편의 뜻에 회유가 되지 않는다.
 
제이콥은 자식들에게 농사로 성공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모니카는 여전히 불안하고 막막하다. 가족을 위한다는 미명으로 개인의 욕구를 채우는 건 아닌가 싶다. 그 날 밤 폭풍우를 동반한 토네이도가 몰려왔다. 농사가 성공하려면 비옥한 토양에 씨앗이 뿌리를 잘 내려야한다. 폭풍전야. 과연 이역만리 한국에서 넘어온 이민자 가족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뿌리를 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미나리>의 한 장면

<미나리>의 한 장면 ⓒ Plan B Entertainment

 
할머니같지 않은 할머니
 
제이콥의 야망에 비해 모니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농작물이 잘 자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일을 해야하는 터. 그래서 모니카는 병아리 암수를 감별하는 일을 시작한다. 우리네의 부모와 조부모세대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으로 갔을 때 할 수 있었던 일은 병아리 감별사와 피차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컨베이어 벨트의 한 부속이 되어 기계적으로 노동을 해야했다. 부모의 빈 자리 속 아이들을 위해, 특히 심장이 약한 아들 데이빗을 위해 구원자가 등장한다. 모니카의 어머니, 그러니까 아이들에겐 외할머니인 순자(윤여정)가 한국에서 오게 된다.
 
영화의 흐름으로 유추하기에 제이콥과 모니카의 두 자녀 중 첫째 앤(노엘 조)은 지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걸 보아하니 한국에서 태어난 듯하다. 순자는 앤을 지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데이빗과는 미국에서 처음 조우하게 된다. 데이빗에게 한국 할머니 순자는 너무 낯설다. 급기야 데이빗은 할머니는 할머니같지 않다며 할머니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여느 미국 할머니처럼 쿠키를 구워주지도 않고 남자 팬티를 입고 집을 돌아다닌다는 게 데이빗의 변이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가 마냥 귀엽다.
 
어느 하루, 순자는 심장이 아파 잘 뛰지도 못하는 손자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다. 숲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한국에서 꽁꽁 싸온 미나리 씨앗을 냇가 옆에 심는다. 영화를 보기 전 수많은 관객들이 가졌을 '왜 제목이 미나리일까'에 대해 영화가 처음으로 대답하기 시작한 대목이다. 할머니는 왜 미나리 씨앗을 미국까지 챙겨온 것일까.
  
 <미나리>의 한 장면

<미나리>의 한 장면 ⓒ Plan B Entertainment

 
에덴동산과 선악과
 
영화 <미나리>는 기독교적 색채를 유독 많이 드러내 보인다. 제이콥이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쳐갈 농지에 '에덴동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서도, 제이콥의 농사를 도와주는 미국인 폴(윌 패튼)이 매주 일요일마다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고난을 체험하는 장면에서도 그 흔적들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기원을 논할 때 기독교, 정확히 말하자면 개신교의 역사를 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존 구교(가톨릭)로부터 벗어나 종교개혁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일궈낸 신교(개신교), 그 중에서도 한 교파인 청교도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기위해 유럽을 벗어나 이주한 곳이 지금의 미국인 북아메리카 지역이다. 미국은 '개신교'와 '이주민'의 나라인 것이다. 영화 <미나리>가 미국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윤여정 배우에 대한 주목도보다 오히려 작품이 개신교의 색채와 이주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에덴동산, 십자가와 같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거나 보여지는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더라도 모니카가 제이콥의 머리를 감겨줄 때 물을 부어주는 장면은 흡사 기독교의 세례 장면처럼도 보이고 할머니 순자가 미나리를 심어놓은 수풀에 뱀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미나리가 선악과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되며 인류는 선과 악을 구분지을 줄 알게 되었다는 성경 상의 설정. 선과 악을 좀 더 확대시켜 해석하자면 선은 희망을, 악은 절망을 대변할 수도 있겠다. 미나리는 희망일까, 절망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미나리>의 한 장면

<미나리>의 한 장면 ⓒ Plan B Entertainment

  
한국 관객과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미국에서 먼저 <미나리>가 공개된 후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이 지난 한 해 받은 트로피만 수십여 개에 달한다. 사실 한국 관객들에게 배우 윤여정이 연기력으로 칭찬받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뉴스는 아니다. 50년이 넘는 연기자 생활동안 그녀는 스크린에서, 안방극장에서 늘 자신의 존재감을 연기력으로 증명해왔고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연기자보다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진 소탈하고 쿨한 이미지 덕에 '멋진 할머니'의 한 전형이 되어있다. 하지만 김기영 감독의 <화녀> <충녀>를 봤고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하녀> <돈의 맛>을 이미 본 한국 관객들에게는 윤여정이 <미나리>의 할머니 순자로 주목을 받고 상찬을 받기 시작한 것에서 아주 조금은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녀 최고의 연기로 <미나리> 속 순자를 꼽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제이콥을 맡은 스티븐 연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지점에서도 한국 관객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스티븐 연의 연기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화의 설정 상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는 한국에서 이민을 온 부부였기에 스티븐 연이 분한 제이콥은 한국어가 아주 유창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스티븐 연 역시 <미나리>의 감독 리 아이작 정과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다. 물론 이전에 출연했던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보다 한국어 실력이 더 유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의 설정을 알고있는 한국 관객들에게 조금은 어눌한 스티븐 연의 한국어 대사 처리가 아쉬운 지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어를 모르는 해외의 관객에게는 이는 생각해 볼 거리도 되지 않는다.
 
배우 윤여정은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개인상을 받은 것보다도 몇 개의 영화제에서 앙상블상을 수상했을 때가 훨씬 기뻤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영화 <미나리>의 배우들은 촬영 기간 내내 같은 숙소에서 묵으며 영화 속 가족처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미나리>는 러닝타임 내내 중심을 잡으며 극을 이끌고 간 한예리와 스티븐 연의 무게감 있는 연기와 날 것 그대로의 순수함을 보여준 아역들의 매력 그리고 이를 조화롭게 지휘해내는데 성공해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연출까지 모든 면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몇 개나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가족들과 또는 가족들과 같이 소중한 주변 사람들과 영화 <미나리> 속 가족이 전해주는 메시지와 미나리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중하게 대화를 나눠보길 더욱 권장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언종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eon_etc)와 브런치(https://brunch.co.kr/@eonet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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