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이 단어의 뜻을 아는가? 그렇다면 '양성'이나 '음성'은? 

물론 이 질문에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코로나19의 감염여부를 알려주는 '양성'과 '음성'의 뜻을 포털사이트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이 단어의 뜻을 알려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2020년 광복절을 포함해 3일간의 연휴를 '사흘의 연휴'라고 표현한 정부의 발표 이후 '사흘'이라는 단어는 실검(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에 '사흘'의 의미를 검색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고 실검 1위에까지 오른 것이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더 나아가 글을 이용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 '문해력' 수준은 심각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 ebs

 
이와 관련해 EBS는 지난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6부작 문해력 프로젝트 <당신의 문해력>을 지난 8일부터 방영 중이다.

문해가 안돼서 공부를 포기하는 현실 
  
EBS 다큐 <당신의 문해력>은 딱딱한 다큐만을 보여주는 형식에서 탈피해 김구라, 이현이, 알베르토 몬디, 광희와 한양대 조볌영 교수, 한겨레 김진철 기자 등이 패널로 참가하여 문해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다음은 KTX 홈페이지에 있는 열차표 금액 계산 실례이다. 여러 번 읽어봐도 계산이 쉽지 않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 ebs

 
패널들에게 이 문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문제를 받아든 이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패널 중 한 명인 광희는 '하차'를 외친다. 어디 이들 뿐일까.

EBS는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일 수 계산' 등과 같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문장의 이해도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들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54점.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문장들이기에 결과가 더 충격적이다.

학교 현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실에선 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진다. 영어 때문이 아니라 선생님이 해석해 주는 '한글 단어'를 몰라서 수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모르는 뜻에 손을 들고 '몰라요'라고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한 페이지 당 무려 14번 손을 들었다.
 
'보모', '변호', '피의자', '출납원', '상업 광고' 등

아이들이 모른다고 했던 단어들이다. 아이들은 캐셔는 알아도 캐셔의 뜻인 출납원은 몰랐다. 사회 수업 시간엔 더 심각했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선생님은 봉준호 감독이 애초에 '기생충'이라는 제목 대신 가제로 '데칼코마니'를 쓰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다 말문이 막혔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 ebs

 
'가제'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랍스터'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동물체의 양분을 빨아먹는다'란 문장에 들어간 '양분'이란 단어나,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간의 '위화감'이란 단어도 알 리가 없다. 선생님은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런데 더 충격인 건 이 반에 모여 있는 학생들이 제법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란 점이다.

EBS가 이번엔 중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결과 27%가 또래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초등 수준 정도에 머무르는 학생들도 11%나 됐다(분석 : 낱말 어휘정보처리연구소). 초등 수준의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과서는 당연히 무리일 수밖에 없고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문해력의 문제는 공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수업 때문에 글로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하지만 선생님이 SNS에 올린 공지문을 읽은 아이들은 언제가 등교하는 날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일일이 전화를 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른바 '스압주의(스크롤 압박 주의)'라는 유행어처럼 줄글, 검은 글씨, 긴글 자체를 읽지 않으려는 경향도 '문해력' 저해요소로 작용한다. 

영상시대, 문해력은 필요할까?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 ebs


물론 문해력에 대한 우려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상 시대에 굳이 글을 읽어야 하냐는 것이다. 카드 뉴스나 포스터, 나아가 영상처럼 보다 쉬운 방식을 통해 전달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최근의 경향성에 대해 방송은 공기업에 근무하는 염기철씨의 사례를 예로 든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입사했지만 직장 내 진급 등을 위해 정보 관련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읽는데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간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상황. 제작진이 준비한 문해력 테스트에서 기철씨는 11문제 중 겨우 5문제를 맞혔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기철씨가 작성한 문서가 자주 반려된다고 한다. 32살, 남들이 보기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갔으니 이제 끝이라고 하겠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기철씨에게 문해력 부족은 걸림돌이 된다. 

실제 지난 2020년 9월 21일~28일까지 기업 191개사를 조사한 결과 기업 10곳 중 6곳에서 젊은 세대의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출처는 사람인). 보고서나 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하고, 구두 보고나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수신, 발신, 참조'라는 단어조차 모른단다. 이렇다보니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다시 대학 국어학과 교수를 초빙해 공부시키는 기업도 등장했다.

문해력에 관한 OECD 한 연구에 따르면, 언어 4·5등급의 능력을 가진 사람과 1등급의 능력을 가진 사람의 연봉 차이는 2.7배, 취업률은 2.2배, 건강마저도 2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뇌의 상태를 조사해 봤다. 1년 동안 평균 20권 정도의 책을 읽는 사람과 한 권 읽을까 말까 한 사람의 전전두엽 활성화 정도를 검사한 것이다. 그 결과 활성화 기능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에서 차이를 보인 것이다. 활성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글'만 읽고 있을 때, 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데까지 이른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기자는 <당신의 문해력>이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에 매우 공감한다. 특히 '입말' 중심의 초등교육과정보다 '문어체'가 교과서의 주를 이루는 중등교육과정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문해력 장애를 느낀다. 또 우리나라는 한글을 사용하지만, 한자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기에 한글만으로 뜻을 해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결국 교육 과정 근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다큐는 지난 16일 방영된 4부 '내 아이를 바꾸는 소리의 비밀' 방영분에서 소개한 것처럼 문제 해결을 가정·사교육으로 환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와 책을 읽고 말놀이를 하는 게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공교육이 해야 할 과제를 개인이 떠안아서는 문해력의 격차가 좁혀질 수 없다. 

저런 식의 해법이라면 조만간 문해력 학원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심각한 문해력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당신의 문해력>은 유의미했지만 해결책 모색 과정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당신의 문해력 -1부 읽지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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