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어 '마인드(mind)'는 대개 '마음'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것을 '뇌'로 번역했다. 인간 두뇌의 화학적 변화로 인간 마음의 여러 활동들을 설명하려 시도하는 영화임을 제목에서부터 좀 더 직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게 두뇌의 화학적 변화로 전부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인류의 스승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 벌써 강조했던 바, 인간의 마음이 지닌 능력은 깊은 어둠에 덮여있다(고백록 10-32-48). 그러므로 <뇌를 해설하다>는 뇌과학으로 시도해본 개연성 높은 추론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영화 포스터  <뇌를 해설하다>

▲ 영화 포스터 <뇌를 해설하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뇌를 해설하다>는 총 5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으며,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각 에피소드 당 러닝타임은 20분 안팎인데, 거기 들어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매우 높다. 심지어 어렵지도 않고 충분히 재미있다.
 
1화는 '기억(Memory)'을 설명한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여, 실제사실과 일치하는 건 50%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이름, 전화번호, 영어단어 같은 것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사람도 엉뚱한 기억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선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특정장소나 유의미한 이야기 등은 인간의 기억을 강화하는 데 있어 유익하다. 예컨대 어린 시절 살던 곳에 방문하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추억에 잠길 수 있으며, 무작위의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것보다 그것들을 의미로 연결해 암기할 때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은 또한 감정과도 관계가 깊은데, 이 둘의 관계는 좀 복잡하다. 인간의 감정은 기억의 강화-약화뿐 아니라, 왜곡에도 상당 부분 기여한다. 영화는 '9.11 테러'에 대한 스스로의 기억 왜곡을 뒤늦게 자각하게 된 여성을 인터뷰한다. 그런 엄청난 사건을 어떻게 잘못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깜짝 놀란다. 그러나, 영화는 충격적 사건일수록 감정이 개입되기에 기억이 더 오염되기 쉽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오염된 기억이 법적 판결에 인용된 사례가 많은데 그 까닭에 무고한 수인(囚人)들이 수십 년이 지난 뒤 무죄 프로젝트를 통해 구제받는 중이다. DNA 등을 통해 유죄판결이 뒤집힌 사례 중 70%가 오염된 기억을 증언한 목격자들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억이 실제 있었던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억은 기억의 주체가 자기의 기존 사고체계에 비추어 진짜 사실을 적절히 '가공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기억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를 한 가지 더 제시한다. 기억이 미래와 관계가 깊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일부분에 질환을 겪는 사람이 기억상실은 물론 미래에 대하여도 '진심으로 아무 생각이 없음'을 근거로 제시한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신비로운 정신활동이라는 이야기다. 기억을 통해 인간은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자아개념의 일관성을 지켜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2화는 꿈(Dreams)을 설명한다. 인간은 잠을 잘 때 간혹 꿈을 꾼다. 잠을 잘 땐 두뇌도 잠을 잔다. 의식을 잃는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두뇌의 모든 부분이 일제히 잠들어있을 때 안구운동을 관장하는 부분이 깨어있는 경우가 있다. 곧 '렘수면'이다. 과학자들은 렘수면 상태가 꿈꾸는 순간임을 알아냈다. 어떤 사람이 렘수면 상태에서 사방을 둘러본다면 그때 그의 안구가 마치 사방을 둘러보듯 움직이는데, 깨어나서는 자기가 사방을 둘러보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게 된다.
 
꿈을 경험케 하는 잠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은 인생의 1/3을 잠으로 채운다. 인간은 잠을 자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 중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해야 할 것은 적극적으로 망각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현대의 꿈 관련 뇌과학 연구가들은, 어떤 사람의 평소 삶과 꿈이 상당한 연관성을 지닌다고 입을 모은다. 낮에 동물을 많이 본 아이들은 동물 꿈을 많이 꾸고, 테트리스를 하다 잠든 사람은 꿈에 테트리스 도형들을 볼 가능성이 높다. 일찍이 <꿈의 해석>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도 간파한 바 있지만, 꿈은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여 한 인간의 자아개념의 투영일 수 있는 것이다.
 
3화의 주제는 불안(Anxiety)이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불안은 생존에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혹멧돼지는 사자를 발견하면 즉각적으로 불안 시스템에 발동을 건다. 식욕과 성욕 시스템으로 가는 혈액과 양분을 중단하고 스트레스를 높여, 투쟁-도피 시스템을 가동할 근육을 긴장시킨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 불안은 조금 더 복잡하게 작동한다. 인간은 집세를 못 내면 어떡하나 불안하고, 교통체증으로 회사에 지각하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실제로 어떤 위협상황이 진짜로 일어났을 때 그에 대한 불안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고 정상적이지만, 아직 현실에 별 위협이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이런 불안은, 스스로 구성한 시나리오가 현실에 그대로 나타나 자신을 해칠 것이라 지레 두려워할 때 생성된다.
 
영화 스틸컷 <뇌를 해설하다>  과거 불안장애 증세가 나타났었을 때 자신의 마음(뇌)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심리학자.

▲ 영화 스틸컷 <뇌를 해설하다> 과거 불안장애 증세가 나타났었을 때 자신의 마음(뇌)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심리학자. ⓒ 넷플릭스

  
불안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려 할 때 사람들은 술, 담배, 마약을 해결책으로 쓴다. 허나, 이는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해결책은 자신의 불안증을 생물학적 합리성에 기반하여 유지하며 치료하는 것이 된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마땅히 불안해야 할 때 불안한 느낌을 갖는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되는 때를 합리적으로 구별하는 작업이 치료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제 영화는 여러 불안증에 효험이 있는 치료로 알려진 명상을 소개한다(4화, 마음챙김/ Mindfulness). 간단히 말해 명상은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며 현재의 자아에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은 현재의 자아에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대번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야 했어"하며 과거를 후회한다. 또는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거야"라며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상하고 이내 두려움을 품는다. 과거의 자아와 미래의 자아를 분주히 오가는 이 정신활동을 어떤 불교인들은 '멍키 마인드'라고 부르는데 명상은 그 같은 멍키 마인드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실제로 명상수련가들이 명상할 때는 그들의 뇌에서 후회(과거)와 공포(미래)를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음이 관측된다고 한다.

 
영화 스틸컷 <뇌를 해설하다>  자아개념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뇌의 부분 그림.

▲ 영화 스틸컷 <뇌를 해설하다> 자아개념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뇌의 부분 그림. ⓒ 넷플릭스

  
그런데 명상의 효과는 놀랍게도 환각제의 효과와 동일하다. <뇌를 해설하다>는 5화에서 환각제(Psychedelics)를 직접 다루면서 이를 입증한다. 대표적인 환각제 LSD는 1940년대에 개발되었다. 이후 LSD의 실질적 효과들이 여러 방식으로 학계에 보고되며 활발히 연구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록큰롤운동과 반전운동에 LSD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각나라들의 정부와 UN은 LSD를 악마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진실은 '환각제가 그럴 정도로 위험한 약물은 아니다'라는 것이지만, 진실보다 조직적 홍보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영화에서 한 과학자는 "명상이 정신의 본성을 탐구하는 검증된 진정한 방식이라면 환각제는 집중코스죠"라고 설명한다. 물론 환각약물이 어떤 구체적 화학작용을 통해 명상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여 인간의 마음을 조절하는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환각약물 연구의 가설과 추론이 다음과 같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공포를 오가며 생성되고 있는 부정적 자아개념에 환각제가 작용하면 그 부정적 자아개념이 개선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뇌를 해설하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자아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의 촉진, 왜곡, 오염이 발생하는 이유도(1화), 인간에게 잠과 꿈이 필요한 이유도(2화), 치료가 필요한 불안증이 발병하는 이유도 모두 인간의 자아개념과 관계가 깊다(3화). 인간의 자아개념은 인간존재를 고귀하고 일관되게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나 <뇌를 해설하다>가 보여주듯, 나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자아개념의 형성과 유지과정에서 때로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문제적 요인이 발생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마음에서 나타나는 진짜 부정적 문제는 인간의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내부에 자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그 옛날 성 어거스틴처럼 "내가 나 자신에게 문제가 됩니다(I have become a problem to myself)"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뇌를 해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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