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3주년을 맞아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납니다. 출전했던 선수들과 그해 겨울을 평창에서 보낸 이들을 만나 평창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습니다. '다시, 나의 평창'의 여덟 번째 주인공은 평창 패럴림픽에서 '제2의 컬링 붐'을 일으켰던 휠체어 컬링 선수들, 정승원·차진호·방민자 선수입니다.[편집자말]
 선수들의 환희와 눈물의 장소인 강릉 컬링 센터에서 패럴림픽 때의 대표팀으로 뛰었던 차진호, 방민자, 정승원(왼쪽부터) 선수가 포즈를 잡고 있다.

선수들의 환희와 눈물의 장소인 강릉 컬링 센터에서 패럴림픽 때의 대표팀으로 뛰었던 차진호, 방민자, 정승원(왼쪽부터) 선수가 포즈를 잡고 있다. ⓒ 박장식

 
대한민국에 컬링이라는 종목을 널리 알린 것을 넘어, 컬링이 국민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온갖 유행어가 양산됐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은 컬링의 인기는 열흘 뒤 열린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방민자·서순석·이동하·정승원·차진호(개명 전 차재관)까지 다섯 명의 선수들은 '오성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휠체어 컬링 종목에 출전해 패럴림픽 흥행을 견인했다. 컬링 경기의 지상파 중계를 시청자들이 먼저 요구하는가 하면, 선수들이 연승 가도를 달리자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들은 여러 팀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를 뽑은 '어벤져스'와도 같은 팀이었다. 실제로 패럴림픽이 끝난 후에는 선수들이 다시 원래의 소속팀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3년의 시간이 지난 2021년, 이 중 정승원·차진호·방민자 선수는 전남도 휠체어컬링팀 '스나이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남장애인체육회의 지역기업 취업연계 사업에 따라 지난해부터 한전KDN(이외 민병석·박용철) 취업 선수로 등록돼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 패럴림픽에서의 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지난달 10일 정승원·차진호·방민자 선수를 강릉 컬링센터에서 만났다.

"승원 형님이 다 데리고 왔죠"

세 사람은 패럴림픽 이전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서울시청 실업팀이 창단하기 이전 클럽 팀으로 운영되었을 때에는 함께 팀에 속해 있었고, 실업팀이 창단될 때 잠시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정승원 선수는 "실업 팀 창단 때 나이가 많아서 합류를 못했다"며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정 선수가 패럴림픽이 끝난 뒤 경기도 클럽의 코치로 전국장애인체전을 뛰려고 했을 때 전남에서 '선수가 부족하니 와서 뛰어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단다.

그는 "그렇게 경기에 나갔는데 전남이 사상 처음으로 종합 4위를 했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서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훈련비를 넉넉하게 주더라"라며 "그래서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웃었다. 

전남 '스나이퍼' 소속이 된 정승원 선수는 함께 지냈던 동지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지난해 연락을 받은 차진호 선수는 "승원 형님이 '평창 때는 기대했던 만큼 성적을 못 냈으니 우리가 다시 함께 뭉쳐서, 대표가 되어가지고 베이징 때는 메달을 한 번 따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바로 합류를 했다"고 말했다. 

방민자 선수 또한 "실업팀에 있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 실업팀의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편하게 컬링을 하고 싶어서 정승원 선수에게 '전남으로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바로 괜찮다고 오라고 해서 왔다"라고 말했다.

선수들끼리 오래 알고 지낸 만큼 '팀 케미'도 좋다. 차진호 선수는 "컬링이 팀 스포츠 아니겠느냐. 다음 패럴림픽 때부터는 다시 팀으로 선수들을 뽑는다고 하니 우리 멤버가 더욱 잘해서 베이징 패럴림픽 때의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방민자 선수도 "낯선 사람들과 경기하는 것보다 경기력에서나, 실질적으로나 더욱 좋지 않을까"라고 거들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탓에 패럴림픽 이후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던 점은 아쉬워 했다. 특히 세계대회 경험이 많지 않았다. 정승원 선수는 "생각보다 시합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해외 팀과 초청전 정도는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계획도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쉽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정 선수는 "다른 하계종목 동료들은 장애인 아시안게임을 통해 성적을 얻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서 한 번쯤 추진을 해줘서 우리 종목을 포함한 선수들이 아시아 선수들끼리 맞붙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얼음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지더라니까요?"
 
선수들에게 3년 전 평창 패럴림픽은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 본 순간이었다. 선수들은 '그런 함성이나 관심을 받으면서 경기하는 건 다신 없을 일'이라고 추억했다. 선수들에게는 '오성 어벤저스'라는 별명도 붙었고, 방민자 선수에게는 '안경 이모'라는 애칭도 붙었다. 방 선수는 "패럴림픽 기간 핸드폰을 쓰지 않아서 끝나고서야 '안경 이모'라는 별명을 알았다.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니, 새로운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승원 선수도 그때의 추억을 꺼냈다. 평생 처음으로 꿈의 무대인 패럴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갔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는 그는 "우리 국민들이 TV 화면으로 보는 것은 물론 직접 오셔서 응원하는 가운데에서 뛴다는 자부심이 너무나도 컸다"고 말을 했다.

"안방에서 패럴림픽을 하니까 시차 때문에 고생할 일도 없고, 식사도 입에 맞아서 너무 좋았어요. 관중들이 엄청나게 응원도 해주시고, 박수도 쳐주시고 하니 눈 감고도, 거꾸로 굴러도 이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꼭 말을 해야겠어요. 처음에는 관중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점점 관중 분들이 늘어나니까 점점 얼음 온도가 올라가는 게 느껴져요! 휠체어도 뒤로 밀리고, 웨이트가 잘 안 들어가기도 해서 다시 감각을 잡는 데 애를 꽤 먹었어요. 그때 놀란 게 우리만이 아니에요. 시합하는 선수들이 전부 깜짝 놀라더라고요."

방민자 선수는 가족의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장애를 입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몰라서 여러 해를 고민했다. 그런데 컬링 선수가 되어 국가대표도 하고 큰 무대에 섰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는 방민자 선수는 "그렇게 되니까 가족들의 시선이 바뀌더라"라며 웃었다.

차진호 선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저는 휠체어를 삶의 중간부터 탄 중도장애인이에요. 가족들이 볼 때 '밥이나 제대로 먹고 살까'하는 걱정이 많았을 겁니다. 운동을 시작했을 때에도 긴가민가했겠죠. 그런데 패럴림픽에 나갈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되니 가족들이며, 친구들, 고향 선후배들까지 찾아와서 응원을 하는 거예요. 이 자체가 너무나도 뿌듯했습니다. 식구들에게 '나도 이런 것을 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여준 것이니까요."

1위로 4강 진출, 하지만 아쉬웠던 4위
 
 평창 패럴림픽 당시의 차진호, 방민자, 정승원(왼쪽부터) 선수.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선수들은 4위라는 아쉬운 최종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평창 패럴림픽 당시의 차진호, 방민자, 정승원(왼쪽부터) 선수.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선수들은 4위라는 아쉬운 최종 성적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 박장식

 
선수들은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가장 먼저 4강에 안착했다. 예선 경기를 단 한 게임을 남겨두고 거둔 성적이었다. 여유롭게 4강에 진출하며 자부심을 느꼈던 선수들이지만 아쉬운 결과를 마주해야만 했다. 준결승과 3, 4위 결정전에서 잇달아 미끄러지며 최종 4위에 머문 것이다. 

충분히 좋은 성적이었지만 아쉬움이 더욱 컸다. 차진호 선수는 "지금도 평창 패럴림픽 때 경기 내용을 보지 못하겠다. 사실 강릉 컬링센터도 한동안 들어가기 싫었을 정도로 분한 마음이 컸다"라며 "메달의 목전에서 경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보니 더욱 아쉬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사실 처음에는 예선을 그렇게 쉽게 통과할 줄도 몰랐어요. 열흘 정도 온 힘을 다해 패럴림픽 게임에 임했고, 4강까지 1위로 통과를 했으니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생각대로 안 됐잖아요. 패럴림픽을 마치고 나서 3개월이 넘게 좌절 속에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 충격을 겪으니 한참 동안은 패럴림픽 때를 생각하기 싫었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결과를 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운동을 하면서도 (그때 경험이) 내가 노력하게 되고, 준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베이징 때를 목표로 더욱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 때의 설욕을 갚기 위해서니까요."


정승원 선수는 패럴림픽이 끝나고 무작정 차를 몰아 함양 쪽으로 갔단다. 특히 절친한 차진호 선수의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지리산 한가운데 마을로 향했는데, 다른 동네 분들이 다 알아보시는 것을 보고 더욱 감정이 복받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방민자 선수는 얻은 것이 있다며 "팀 경기에서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느꼈다. 그래야만 팀워크가 끝까지 무너지지 않더라"라며 "아픈 기억이지만 여러 교훈들을 얻게 된 패럴림픽이었다"라고 소회했다. . 
 
"우리의 강점은 '단합'... 이번에는 '찬스' 안 놓칠 겁니다"
 
지금도 선수들은 훈련이나 경기를 위해 강릉 컬링 센터를 찾으면 컬링장 바깥 도로를 다섯 바퀴씩 돌고 들어간다. 경사진 길이 많은 경기장 앞 길을 돌 때마다 패럴림픽 때가 생각이 난다고. 

그런 각골통한의 평창을 뒤로하고 선수들은 베이징을 준비하고 있다. 정승원 선수는 "우리가 강하면 상대가 강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고 있다. 특히 다른 실업팀들을 주의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모든 문제를 선수들과 코치들이 함께 터놓고 나누는 팀이니, 더욱 단합되어 경기를 준비할 수 있다"라고 팀의 장점을 말했다.

차진호 선수도 "과거에 비해 컬링장이 많지 않았지만, 컬링장이 점점 늘어나니 선수들의 실력도 상향 평준화가 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며 "누가 팀을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서로 보완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마음가짐을 밝혔다. 

방민자 선수도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탓에 대표팀 선발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지난해 시즌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올해에는 대표팀 선발전이 꼭 치러져서 다가오는 베이징 패럴림픽을 기분 좋게 대비하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베이징에서 주의해야 할 팀은 없을까. 정승원 선수는 중국 선수들을 꼽았다. 중국 선수들은 평창 대회 당시 메달을 획득했던 바 있다. 그는 "선수들의 힘이 굉장히 강하다. 사적으로는 나를 '따꺼'나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이지만, 평창에서 아쉬운 경험을 했으니만큼 더욱 조심해서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인상적이었다.

"패럴림픽 끝날 때에는 다시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다시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선수는 이런 기회가 왔을 때, 찬스를 잡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이번에는 찾아온 찬스를 절대로 놓지 않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컬링 강점은 '팀워크', 베이징 때 좋은 성적 내야죠"
 
 한창 훈련에 열중인 (왼쪽부터)정승원, 차진호, 방민자 선수.

한창 훈련에 열중인 (왼쪽부터)정승원, 차진호, 방민자 선수. ⓒ 박장식


벌써 선수들 주변에서는 '베이징 때 꼭 나가라, 중국에 응원을 가겠다'고 말한다고. 차진호 선수는 "주변에서 친구들이며, 아는 사람들이 꼭 패럴림픽에 나가라고 통사정을 한다"며 웃었고, 방민자 선수는 "벌써 가족들이 베이징에 같이 가자고 계까지 들고 있다"라고 전했다. 

특히 방 선수는 "컬링장이 춥긴 하지만 스톤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에 빠져 지금까지 컬링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큰 경기를 마치고 나서도 어느새 그 소리가 다시 듣고 싶더라"라며 말을 이어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어요. 그래서 한 번 더 뭉치면 무조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팀을 만든 것이 아닐까요. 우리 팀에 차진호와 정승원이라는 해결사 두 명이 있으니만큼, 2022년에는 꼭 메달을 획득해 잘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평창'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정승원 선수가 먼저 평창을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단어'라고 말문을 뗐다. 그는 "평창 패럴림픽 때의 아쉬움을 모두 잊고, 앞으로 베이징에서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전하겠다. 우리 팀원, 나아가 한국 휠체어 컬링 선수 모두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방민자 선수는 "팀에 여성은 나 혼자이지만 모두 동등한 선수인 것이 휠체어 컬링"이라며 "함께하는 자세로 경기에서 주어진 역할에 임하고, 우리 팀이 가는 데 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차진호 선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스포츠를 하는 모두의 목표'죠. 나간 이후에야 목표가 '메달'이 되니까요. 그래서 저도 평창 대회로 패럴림픽을 처음 나갔을 때 '이제 좋은 결과만 있으면 이걸로 마무리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두 번째 도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베이징에서는 두 번 다시 아쉬운 일이 없게, 열심히 훈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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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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