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말 먼 곳> 관련 이미지.

영화 <정말 먼 곳> 관련 이미지. ⓒ 전주국제영화제

 

사람이 도시를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떠남이 희망으로 인한 것이든 절망과 상처로 인한 것이든, 새로운 삶의 터전에 자리한 사람은 곧 어떤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이전 삶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류의 기대 말이다.

영화 <정말 먼 곳>은 편견과 혐오로부터 도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진우(강길우)는 어떤 이유로 서울을 등지고 인적이 드문 강원도 화천으로 떠내려 왔다. 동생이 맡기고 간 조카와 함께 말이다. 그곳에서 홀어머니(최금순)와 부녀인 중만(기주봉)과 문경(기도영)이 함께 사는 가족을 만나 그들과 함께 소를 먹이고 양을 친다.

엄마의 존재를 잘 모르는 조카 설(김시하)은 자꾸 진우를 엄마라고 하고, 화천 가족의 딸 문경을 친언니처럼 따른다. 문경은 진우에게 티가 날 만큼 호감을 표하지만 좀처럼 진우는 흔들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진우의 친구라며 현민(홍경)이 내려오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군내버스에서 내린 현민과 진우가 포옹하는 모습, 나누는 눈길을 보면 직감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였고 이들이 겪은 상처는 곧 성소수자를 향한 도시 사람들의 편견이었을 것이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얻은 두 사람은 과연 화천에선 성공적인 정착이 가능했을까.

제목처럼 두 주인공이 원했던 안식처는 정말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극중 현민의 직업이 시인임을 활용해 두 사람의 마음을 시로 표현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 인해 관객이 성소수자들이 겪을 법한 혐오의 시선을 대변해 제시하기도 한다.
 
 영화 <정말 먼 곳> 관련 이미지.

영화 <정말 먼 곳> 관련 이미지.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정말 먼 곳> 관련 이미지.

영화 <정말 먼 곳> 관련 이미지.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는 화천의 사계절,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여러 인물들을 대비시키며 대자연과 인간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때가 되면 잎이 나고 꽃이 지며, 새끼를 놓는 동식물은 자신을 바라보는 대상이 누구든 묵묵히 자기 본분대로 사는 존재다. 반면 그 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자신이 아는 범주와 상식, 이해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상처를 가한다.

<정말 먼 곳>의 장점은 느리지만 분명한 우리 주변의 변화를 잘 감지해 화면에 풀어놓는 것에 있다. 전작 <한강에게>로 여러 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을 증명하듯 자신이 품고 살았던 혐오의 문제, 특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들이 느끼는 거리감'을 이번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지난 8일 언론 시사회에서 말한 바 있다. 그 거리감은 비단 나와 타인뿐만이 아니라 나와 나 자신의 거리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 퀴어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작품이 한국영화사에서도 존재했다. 때론 과격하거나 급진적이었을 수도 있고, 그 자체로 문제적이었을 수도 있다. <정말 먼 곳>은 외려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바로 당신 옆에 사는 사람의 본질을 단순히 같은 성별을 사랑한다는 사실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지 조용히 묻는다.

산을 따라 굽이 흐르는 강물을 막아 생긴 파로호, 출산을 앞둔 양과 소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누구보다 고립감을 느꼈을 영화 속 캐릭터를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극 중 인물이 내뱉는 대사들이 다소 관념적이라는 걸 빼면 <정말 먼 곳>이 닿아 있는 영화적 미덕이 꽤 많다.

한줄평: 소수자들이 겪는 아픔을 담담하게 간접체험 할 기회
평점: ★★★☆(3.5/5)

 
영화 <정말 먼 곳> 관련정보

감독 및 각본: 박근영
출연: 강길우, 홍경, 이상희, 기주봉, 기도영, 최금순, 김시하
제작: 영화사 행방, 봄내필름, 찰나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공동제공 및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러닝타임: 115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3월 18일
 


 
정말 먼 곳 화천 성소수자 혐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