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 <쓰리박 : 두 개의 심장>의 한 장면

MBC 예능 <쓰리박 : 두 개의 심장>의 한 장면 ⓒ MBC

 
지난 1일 방송됐던 MBC 예능 <쓰리박 : 두 번째 심장>의 한 장면, 박지성이 절친한 후배 이청용과 자택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나왔다. 이청용은 박지성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며 직접 공수해온 재료들과 아내의 레시피로 자신만만하게 닭볶음탕에 도전한다. 그런데 요리가 완성된 이후 함께 시식에 나선 두 사람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박지성은 음식을 씹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라고 뼈있는 평을 남기며 이청용을 머쓱하게 했다. 박지성은 이후 인터뷰에서 "분명히 양념을 했는데도 하지 않은 느낌? 맛이 밍밍(간이 잘 배지 않은)했다.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맛있는 편도 아니었다"라는 솔직한 소감을 밝혀서 웃음을 안겼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지성의 평가가 이청용의 요리뿐 아니라, 바로 <쓰리박>이라는 프로그램 자체에 대입하더라도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쓰리박>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영웅 세 명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영원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 LPGA 아시아 최초 우승자이자 IMF 시절 통쾌한 샷으로 국민들을 열광시켰던 '골프 여제' 박세리,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이자 대한민국 축구계의 살아있는 전설은 '두 개의 심장' 박지성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인물들이다. 특히 현역 시절부터 미디어 노출에 유난히 신중했던 박지성이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한 것은 최초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모았다.

현재 4회까지 방송된 <쓰리박>은 세 명의 스포츠스타가 현역생활을 은퇴한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 2막'을 그려나가는 모습에 주목했다. 박찬호는 프로 골퍼, 박세리는 요식업 셰프, 박지성은 사이클 라이더라는 새로운 분야에 각각 도전장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쓰리박이 서로 만나기도 했고, 평범한 일상생활과 가족을 공개하는가 하면, 세 사람과 관련된 '황금인맥'(남영우, 홍성흔, 이청용 기성용 등)들이 게스트로 깜짝 출연하여 에피소드를 만들기도 했다. 
 
 MBC 예능 <쓰리박 : 두 개의 심장>의 한 장면

MBC 예능 <쓰리박 : 두 개의 심장>의 한 장면 ⓒ MBC

 
7일 방송된 4회에서 박지성은 지난 회차에 이어 이청용과 함께했다. 박지성과 이청용은 새벽부터 함께 일출을 감상하며 소원을 빌고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이어진 라이딩에서는 계속되는 추위와 난코스에 사이클이 극기훈련으로 변하며 월드컵 때도 볼 수 없었던 녹초가 된 박지성의 기진맥진한 모습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박찬호는 야구계 후배인 이호준, 홍성흔과 '무릎 꿇고 딱밤 맞기'란 내기를 걸고 2:1 골프 대결을 펼쳤다. 후배들의 실력을 다소 만만하게 봤던 박찬호는 방심하다가 한때 패배 위기에 몰리곤 기사회생하는 등 승부욕을 불태웠다. 나이가 들고 은퇴해도 변함없는 야구인들의 뜨거운 승부욕과 깐족거리는 입담 대결이 폭소를 자아냈다.

박세리는 지난 3개월간의 노력이 담긴 '세리테이블'을 오픈했다. 처음엔 잠까지 설쳤다며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곧바로 재료 준비부터 요리까지 막힘없이 척척 진행하며 셰프다운 똑부러진 모습을 보여줬다. 박세리는 취업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을 첫 번째 손님으로 초대해 '힐링 한 끼'를 선물했다. 취준생들은 박세리의 요리를 맛있게 즐겼고, 식사를 마친 뒤 박세리가 정체를 공개하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박세리는 취준생들의 대화를 통하여 요즘 젊은 세대의 일상과 고민을 듣고 인생 선배로서 따듯한 위로와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아쉬운 건 세 스포츠 스타의 매력을 극대화시키거나 오직 <쓰리박>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화된 요소가 없다는 점이다. 사실 방영 전부터 멤버 각자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전설들이고,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든 슈퍼스타들을 모처럼 모은만큼 그들이 함께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지금까지는 세 멤버가 각자 독립적인 근황을 촬영한 VCR를 감상하는 평범한 다큐 프로그램에 머물고 있다. 오직 쓰리박 세 사람만 번갈아가면서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나혼자산다>나 <온앤오프>같은 기존의 관찰예능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더구나 세 멤버 중 막내인 박지성을 제외하면 박찬호와 박세리는 이미 이전부터 방송 경험을 많이 해 예능이 친숙한 인물들이다. 박찬호는 <축구야구말구> <진짜사나이><빅픽처 패밀리> 등 많은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투머치 토커' 캐릭터로 웃음을 안겼고, 박세리도 현재 여성 스포츠 스타들을 다룬 <노는 언니>의 고정멤버이자 맏언니로 활약중이다. <쓰리박>은 박찬호와 박세리가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숱하게 보여준 이미지와 캐릭터를 재탕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MBC 예능 <쓰리박 : 두 개의 심장>의 한 장면

MBC 예능 <쓰리박 : 두 개의 심장>의 한 장면 ⓒ MBC

 
관찰예능은 저마다 비슷해보여도 차별화된 관전포인트가 있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는 사회적 조직관계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서열구도가 빚어내는 해프닝이 핵심이고, <미운 우리새끼>는 철없는 미혼 남성 연예인들의 싱글라이프를 '어머니의 관점'에서 지켜본다는 사실이 웃음을 유발한다. <나혼자산다>나 <온앤오프>는 1인가구 시대를 살아가는 독신남녀들의 자기애와 연대의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비하여 <쓰리박>은 거물급 스포츠스타 세 명을 동시에 섭외하고도 뚜렷한 '핵심 서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은퇴 후 인생 2막'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였지만 내용은 주로 멤버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도전이나 취미생활, 혹은 그들을 둘러싼 인맥자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최근의 관찰예능은 '체험'과 '팀플레이' 위주로 변하고 있다. <나혼자산다>는 초창기 개인의 일상을 보여주던 것에서, 무지개 모임 멤버들이 함께 친목을 다지고 미션을 수행하는 에피소드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윤스테이>와 <어쩌다 사장> 등은 배우들이 시골에서 한옥스테이와 가맥슈퍼 등을 직접 운영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기왕이면 <쓰리박>도 세 스포츠 스타들이 함께 공통으로 힘을 합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에 도전하거나 추억을 쌓아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비싸고 귀한 재료만 잔뜩 모아놓고 정작 제대로 된 요리를 해줄 셰프가 없다는 것이 <쓰리박> 앞에 놓인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쓰리박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