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UFC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위치에서 은퇴를 선언하는 게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9전 전승의 완전무결한 전적으로 UFC 라이트급을 평정한 하빕 누르마고메도프는 작년 7월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를 코로나19로 잃었다. 하빕은 작년 10월 3차 방어전에서 저스틴 게이치를 서브미션으로 꺾은 후 "더 이상 싸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55kg급 금메달과 UFC 플라이급 챔피언을 따낸 헨리 세후도는 약물이 적발된 밴텀급 챔피언 T.J.딜라쇼의 타이틀 반납으로 공석이 된 밴텀급 타이틀에 도전했다. 2019년 6월 말론 모라에스를 꺾고 두 체급 챔피언에 등극한 세후도는 작년 5월 도미닉 크루즈를 상대로 밴텀급 1차 방어에 성공한 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올림픽 금메달과 UFC 2체급 챔피언까지 따내며 스포츠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최근 또 한 명의 선수가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 격투팬들을 걱정시켰다. 여성 페더급과 밴텀급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암사자' 아만다 누네즈였다. 체급 내 적수가 없어 동기부여가 떨어져 있던 누네즈는 최근 식구가 한 명 늘어나면서 다시 의욕을 되찾았다. 그리고 누네즈는 7일(이하 한국시각) UFC 259에서 열린 여성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메간 앤더슨을 2분3초 만에 서브미션으로 제압하며 12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누네즈(왼쪽)는 자신보다 10cm나 큰 앤더슨을 상대로 스파링하듯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누네즈(왼쪽)는 자신보다 10cm나 큰 앤더슨을 상대로 스파링하듯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 UFC.com

 
흔치 않은 여성 타격가, 여성 밴텀급 챔피언 등극

지금은 페더급과 밴텀급, 플라이급, 스트로급까지 체급이 4개로 늘어났지만 UFC의 여성 디비전은 '암바여제'로 불리는 론다 로우지라는 걸출한 파이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도 -70kg급 동메달리스트 로우지는 스트라이크포스 밴텀급 챔피언 자격으로 UFC에 입성해 밴텀급 타이틀을 6번이나 방어했다. 데이나 화이트 대표가 고집을 꺾고 UFC에 여성 디비전을 만든 것도 로우지라는 확실한 흥행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우지가 남자선수들을 능가하는 인기로 UFC 여성디비전의 위상을 끌어 올릴 때 브라질의 타격가 누네즈는 체급 내에서 크게 주목 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라데와 복싱, 주짓수, 유도 등 다양한 운동을 배운 누네즈는 2008년 브라질의 중소 단체를 통해 격투기에 데뷔했다. 데뷔전에서 서브미션으로 패한 누네즈는 이후 5연속 KO승리를 거두며 여성부가 있는 스트라이크포스로 이적했다.

스트라이크포스 데뷔전에서 KO로 패한 누네즈는 여성 격투기 단체 인빅타FC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1승1패를 기록하며 썩 인상적인 전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누네즈는 2013년 8월 UFC로 이적한 후 2경기 연속 1라운드 KO승리를 따내며 여성부에 흔치 않은 타격가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누네즈는 2014년 9월 캣 진가노와의 도전자 결정전에서 3라운드 KO로 패하며 생애 첫 타이틀전의 기회가 날아갔다.

하지만 누네즈는 패배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파이터였다. 누네즈는 진가노전 패배 후 셰이나 베이즐러를 레그 킥에 의한 KO로 제압했고 사라 맥맨에게는 UFC입성 후 첫 서브미션 승리를 따냈다. 당시 여성 밴텀급은 로우지가 홀리 홈에게 하이킥으로 실신 KO패를 당하고 홈이 미샤 테이트에게 덜미를 잡히며 서로 물고 물리는 춘추전국시대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복잡해지던 여성 밴텀급을 통일(?)시킨 선수가 바로 누네즈였다.

누네즈는 2016년9월 홈에게 극적인 서브미션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테이트의 1차 방어전 상대로 낙점됐다. 경기 초반부터 강력한 펀치를 앞세워 테이트를 몰아 붙인 누네즈는 1라운드 3분16초 만에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가볍게 승리를 거두며 UFC 여성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다. 마지막 기술은 서브미션이었지만 경기 종료 후 테이트의 코뼈가 부러졌을 만큼 누네즈의 강력한 타격이 돋보인 경기였다. 

아이 생긴 후 의욕 폭발, 앤더슨 123초 만에 제압

누네즈는 2016년 12월 돌아온 로우지를 상대로 1차 방어전을 치렀다. 하지만 홈에게 KO패를 당한 후 타격 공포증이 남아 있던 로우지는 누네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누네즈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로우지를 일방적으로 밀어 붙였고 경기 시작 48초 만에 가볍게 KO승리를 거뒀다. 경기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울 정도로 양 선수의 기량 차이는 현저했다(로우지는 누네즈전을 끝으로 종합격투기를 떠나 프로레슬링 단체 WWE로 이적했다).

2017년 9월 현 UFC 여성플라이급 챔피언 셰브첸코와의 2차 방어전에서 2-1 판정승을 거둔 누네즈는 2018년 5월 밴텀급 3차 방어전에서도 라퀠 페닝턴을 5라운드 KO로 제압했다. 그리고 누네즈는 2018년 12월 여성부의 '깡패 파이터'로 불리던 페더급 챔피언 크리스 사이보그에게 도전장을 던져 사이보그의 21연승을 저지하며 51초 KO 승리를 따냈다. 여성부 최초로 두 체급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두 체급 챔피언에 오른 누네즈는 페더급과 밴텀급을 오가며 홈, 저메인 데 린다메, 펠리시아 스펜서를 차례로 꺾고 밴텀급에서 6차 방어, 페더급에서 1차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누네즈는 최근 2경기에서 경기를 판정으로 끌고 가면서 터프함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목표의식을 잃은 누네즈 역시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9월 누네즈의 동성연인 니나 안사로프가 딸을 출산하면서 누네즈의 승리욕이 다시 불타 올랐다.

누네즈는 7일 페더급 2차 방어전에서 183cm의 큰 신장을 가진 호주의 앤더슨을 상대했다. 하지만 누네즈에게 신장 차이(10cm)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앤더슨을 타격으로 압박하며 주도권을 잡은 누네즈는 경기를 그라운드로 끌고 간 후 암바 그립을 잡아 앤더슨에게 가볍게 항복을 받아냈다. 경기 후 딸과 기념촬영을 한 누네즈는 승리인터뷰에서 "아이가 생긴 암사자가 얼마나 더 강해질지 두고 보라"며 타이틀 롱런을 다짐했다. 

한편 메인이벤트로 열린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전에서는 얀 블라코비치가 미들급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를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고 1차 방어에 성공했다. 아데산야는 격투기 데뷔 후 첫 패배를 당했다. 3경기로 열린 밴텀급 타이틀전에서는 챔피언 페트르 얀이 4라운드 후반 도전자 알저메인 스털링의 무릎이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얼굴에 니킥을 날리며 반칙패를 당했다. 양 선수 모두에게 찝찝한 결과로 두 선수는 향후 재대결이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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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C 259 여성 페더급 타이틀전 아만다 누네즈 매건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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