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 파퀴아오는 플라이급부터 라이트미들급까지 무려 8체급을 석권한 복싱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파퀴아오는 곧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훗날 '역대 최고의 복서'를 논할 때 그의 이름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파퀴아오가 지구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파퀴아오는 주로 경량급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체중이 무거운 사람과 싸운다면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싸움에 있어 '체격'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서양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동양인들이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격투스포츠 단체 UFC에서도 무거운 체급인 헤비급과 라이트 헤비급에 동양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국내는 비롯한 아시아 격투기 대회에서도 종종 중량급 경기가 열리지만 UFC와 비교해 보면 수준 차이가 꽤 확연하다.

하지만 미리 짜놓은 합으로 액션을 연기하는 영화에서는 체구가 작은 동양인도 얼마든지 거구의 서양인들을 제압할 수 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여러 무술을 연마하고 스스로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한 전설의 액션배우 고 이소룡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가 직접 주연뿐 아니라 각본, 연출, 무술감독까지 맡은 영화 <맹룡과강>에서도 서양의 덩치 큰 배우들을 홀로 제압하는 이소룡의 화려한 액션연기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이소룡이 <사망유희> 촬영 도중 사망하면서 <맹룡과강>은 이소룡이 완성시킨 유일한 연출작이 됐다.

이소룡이 <사망유희> 촬영 도중 사망하면서 <맹룡과강>은 이소룡이 완성시킨 유일한 연출작이 됐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전설의 액션스타' 이소룡, 메가폰을 잡았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경극배우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아역배우로 활동했다. 그리고 7살 무렵에 시작한 태극권 수련은 이소룡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이소룡은 영춘권, 채리불권 같은 중국무술뿐 아니라 복싱, 유도, 태권도 등 여러 나라의 무술을 다양하게 섭렵하며 신체를 단련했다. 이소룡은 1966년 미국의 TV드라마 <그린호넷>으로 이름을 알린 후 홍콩으로 넘어와 액션배우의 길을 걸었다.

이소룡은 나유 감독과 손을 잡고 만든 영화 <당산대형>과 <정무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홍콩은 물론이고 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액션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정무문>에서는 또 하나의 전설이 된 성룡이 스턴트맨으로 출연했는데 비록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역할이었지만 성룡은 당시 이소룡과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소룡은 그 시절 액션배우 지망생들에게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정무문> 이후 나유 감독과의 사이가 틀어진 이소룡은 직접 영화사를 차리고 시나리오까지 쓰며 차기작을 준비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바로 이소룡이 홍콩에서 찍은 3번째 영화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연출작 <맹룡과강>이다. 영화의 인기나 지명도로 보면 <맹룡과강>이 <용쟁호투>나 유작인 <사망유희>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소룡이 연출부터 각본, 무술감독까지 책임진 작품이기에 <맹룡과강>이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맹룡과강>에서 화려한 액션연기와 의외의 코믹한 요소, 그리고 여주인공 묘가수와의 러브라인까지 보여주는 이소룡은 이듬 해 미국 감독 로버트 클루즈와 함께 한 <용쟁호투>를 대히트시켰다. <용쟁쟁호투>는 85만 달러의 적은 제작비로 전세계에서 무려 9500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이소룡을 세계적인 액션 히어로로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1972년에 만들어진 <맹룡과강>보다 1973년 작 <용쟁호투>가 먼저 개봉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소룡은 차기작 <사망유희> 촬영이 한창이던 1973년 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뇌부종으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이소룡의 유작이 된 <사망유희>는 재촬영과 편집과정을 거쳐 이소룡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1978년 세상에 공개됐다. 참고로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대역을 연기한 배우는 한국배우 고 김태정이었다(그는 <사망유희> 이후 한동안 홍콩에서 '당룡'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척 노리스와 벌이는 최후의 콜로세움 혈투
 
 묘가수(오른쪽)은 <당산대형>,<정무문>,<맹룡과강>까지 이소룡과 세 작품을 함께 하며 좋은 연기호흡을 보였다.

묘가수(오른쪽)은 <당산대형>,<정무문>,<맹룡과강>까지 이소룡과 세 작품을 함께 하며 좋은 연기호흡을 보였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맹룡과강>이 의미가 깊은 이유는 이소룡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소룡은 홍콩에서의 첫 작품이었던 <당산대형>에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감독과 주연, 각본, 무술감독을 도맡으며 영화 전체를 홀로 책임진 작품은 <맹룡과강>이 유일하다(이소룡은 <사망유희>에서도 각본과 연출을 맡았지만 촬영 도중 사망하면서 안타깝게도 영화를 완성시키지 못했다). 

여느 이소룡 영화들이 그렇듯 <맹룡과강> 역시 액션이 중심이 되는 영화라 이야기의 구조나 서사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에 중점을 둔다. 로마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총기를 소지한 서양 마피아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소룡은 당황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서 만든 표창으로 총을 든 상대를 가볍게 제압한다. 촌스럽다는 이유로 이소룡을 무시하던 식당 동료들도 그의 화려한 액션을 본 다음엔 모두 그를 사형으로 대우한다.

현란하면서도 절제된 기술로 여러 상대를 한꺼번에 제압하는 소위 '무쌍' 장면도 멋지지만 역시 <맹룡과강>의 하이라이트는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척 노리스와의 마지막 결투장면이다. 실제 콜로세움에서 촬영을 했다면 더욱 웅장한 화면이 나왔겠지만 촬영허가가 나지 않아 실제 촬영은 실내 세트장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집중해서 보면 비슷한 배경이 반복된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심판이자 관중 역할을 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두 고수의 대결은 무술 영화에서도 손꼽히는 일대일 대결 명장면으로 꼽힌다. 척 노리스와의 대결 장면은 이소룡 영화 중 가장 긴 격투 장면이기도 하고 이소룡 특유의 독특한 괴성도 질리도록 들을 수 있다. 이소룡은 말리는 심판이 없다고 척 노리스를 죽을 때까지 때린 다음 그의 시체 위에 도복을 덮어주며 무도인으로서의 예를 차린다.

시작부터 끝까지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지만 이소룡은 각본가이자 감독으로서 영화적 재미를 위한 장치들도 곳곳에 심어 놓았다. 특히 영어를 하지 못하는 당룡이 로마 공항과 식당에서 당황하는 장면은 꽤나 코믹하고 식당 사장으로 출연하는 여주인공 묘가수와는 풋풋한 러브라인을 형성하기도 한다. 묘가수는 1970년대 초반에 활동한 배우임에도 <맹룡과강>에서 전혀 촌스럽지 않은 미모를 과시하며 남성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가라데 고수로 출연한 한국의 액션배우 황인식
 
 가라데 고수로 출연하는 한국배우 황인식(오른쪽)은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액션배우로 활동했다.

가라데 고수로 출연하는 한국배우 황인식(오른쪽)은 홍콩과 한국을 오가며 액션배우로 활동했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이소룡의 영화들엔 언제나 인상적인 악역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최종보스로 등장하는 NBA 슈퍼스타 카림 압둘자바의 출연은 두 사람의 키 차이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당시 밀워키 벅스의 핵심선수였던 압둘자바는 이소룡과의 친분으로 시즌 중에 짬을 내 영화를 촬영했다.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브루스 리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맹룡과강>에서 이소룡과 최후의 콜로세움 혈투를 벌이는 척 노리스는 6년 연속 세계 미들급 가라데 챔피언을 차지한 세계적인 모두인이었다. 무술시범을 다니던 도중 이소룡과 처음 만났는데 무도인이었던 척 노리스가 <맹룡과강>을 통해 영화 배우로 데뷔한 것도 전적으로 동갑내기 이소룡과의 친분 때문이었다. 이후 노리스는 배우로 변신해 8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스타로 군림했다.

한국 관객이라면 중간보스격으로 등장하는 한국 배우 황인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합기도 명인이기도 한 황인식은 <맹룡과강>에서 자부심 강한 일본의 가라데 달인으로 등장한다. 등장할 때는 식당 동료들을 제압하며 폼나게 나타나지만 실상은 엑스트라에 가까운 조연이기 때문에 이소룡을 한 대도 때려 보지 못하고 완패를 당한다(이소룡에게 패한 것도 서러운데 나중에는 식당 직원들에게도 몰매를 맞는다).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동한 황인식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도 1층의 합기도 고수 역으로 출연했고 80년대에는 성룡과 함께 <사제출마>, <용소야>에 출연했다. 황인식은 일생을 액션 배우로 살아 왔지만 1989년에 방영한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기한 특이한 경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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