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

 
지난해 3월, 한국 영화 최초로 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자신이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미국의 한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정이삭(미국명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는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다. 

<미나리>에 나오는 남자 아이 데이빗처럼 콜로라도주 덴버의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부모를 따라 2살 때 영화의 배경이 된 아칸소주로 옮겨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맡은 스티븐 연처럼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고, 농장을 일궈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족들을 데리고 아칸소주에 왔다.

영화에 나온 농장 화재 사건도 정 감독의 가족들이 실제로 겪은 일이고, 함께 살았던 그의 할머니도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 윤여정처럼 미나리를 키웠다. 정 감독은 "할머니가 한국 채소를 키웠는데, 미나리가 가장 잘 자랐다"라며 "내게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뜻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호등도 없고, 햄버거집도 두어 곳에 불과할 정도로 '깡촌'에서 자란 정 감독은 명문 예일대에 진학했다. 원래 작가를 꿈꿨지만,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물학을 전공하며 졸업 후 의사가 되려고 했으며 영화에는 별 관심도 없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평범한 학생인 그를 바꿔놓은 수업
 
 정이삭 감독의 <뉴욕타임스> 인터부 갈무리.

정이삭 감독의 <뉴욕타임스> 인터부 갈무리. ⓒ 뉴욕타임스

 
그러나 4학년 때 필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들었던 영화 수업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매주 과제로 실험적인 영상을 제작하며 새로운 경험을 했고, '7인의 사무라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화양연화'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에 푹 빠져 지냈다. 그는 지난달 27일(아래 한국 시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학 때 기숙사 룸메이트가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길래 왜 저런 영화를 좋아하는지 의아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나의 재능이 끔찍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수업을 듣고 마치 개종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정 감독은 의학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유타대 대학원에 갔다. 당연히 부모는 아들의 선택을 걱정했지만, 사실은 영화 학교에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10여 곳이 넘는 영화 학교에 지원했으나 모두 탈락했고, 1년 넘게 도전한 끝에 겨우 그를 받아준 곳이 유타대였다. 

그가 영화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첫 작품은 2007년 <문유랑가보>였다. 르완다 부족 간의 학살로 고통받은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르완다에서 현지 아마추어 배우들을 섭외해 11일 만에 찍었다. 결혼 전 르완다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아내가 큰 도움이 됐다.

3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는 미국영화연구소(AFI) 영화제 대상을 받고,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다. 미 영화평론가 로저 에벗은 당시 <문유랑가보>에 대해 "모든 프레임이 아름답고 강력한 걸작"이라고 극찬했다.

<문유랑가보>로 성공 가도를 달릴 것 같았던 정 감독은 <럭키 라이프>(2010), <아비게일 함> 등 후속작이 잇달아 실패하며 쓴맛을 봤다. 그는 "내가 문유랑가보를 제작했을 때가 29살이었다"라며 "앞으로 그런 성공을 많이 이룰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감독 은퇴 고민하며 마지막으로 쓴 <미나리> 각본
 
 정이삭 감독의 첫 영화 <문유랑가보> 포스터

정이삭 감독의 첫 영화 <문유랑가보> 포스터 ⓒ 필름무브먼트

 
어느덧 어린 딸을 둔 마흔의 가장이 된 정 감독은 꿈이 아닌 현실을 바라봐야 했다. 마침 인천에 있는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에서 교수직을 제안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영화 감독으로서의 은퇴를 고민하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쓴 것이 <미나리>의 각본이다. 물론 <미나리>를 더 일찍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 감독은 기다렸다. 그는 이 이유를 지난달 26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아버지가 왜 농장을 일구고 싶어했는지, 왜 꿈을 좇았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아버지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려면 더 나이가 들고, 저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한 딸의 아버지가 되었고, <미나리>의 각본을 쓰면서 아버지가 당시 겪었을 감정을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미나리>를 한창 찍을 당시 전 세계 영화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열풍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정 감독은 <미나리> 작업이 끝날 때까지 일부러 <기생충>을 보지 않았다고 했다. BBC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칭찬한 <기생충>을 무척 보고싶었지만, 혹시나 <미나리>를 찍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걱정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작업을 끝낸 뒤 마침내 <기생충>을 봤고, 나도 이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물어봤다"라며 "그 영화는 내게 격려와 낙담을 모두 안겨줬다"라고 덧붙였다. 
 
 정이삭 감독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을 전하는 NBC 방송 생중계 갈무리

정이삭 감독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을 전하는 NBC 방송 생중계 갈무리 ⓒ NBC

 
정 감독은 <미나리>의 자막을 없애기 위해 한국어 대사를 영어로 바꾸는 것도 고민했다고 한다. 만약을 대비해 영어로 된 각본도 따로 준비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사람들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라며 "그 당시 미국의 한인 가정은 집에서 한국어로 대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나리>의 성공에 힘입어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냐는 <뉴욕타임스>의 질문에 정 감독은 "아마도 그럴 것 같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다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내게 벌어졌던 일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 감독의 차기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실사 영화로 정해졌다. 또한 <미나리> 제작사인 브래드 피트의 '플랜B'와 또다시 손잡고 뉴욕과 홍콩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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