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되살아났다. 내복만 입은 채로 맨발로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동네 슈퍼로 달려가는 어린 미연과 미옥을 보면서. 내게도 같은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가 무서워 까만 밤 언니와 함께 근처 사는 친척집으로 도망갔던.
 
어른이 된다고 절로 치유되지 않아요
 
마흔을 전후로 갑작스레 상처가 덧나기 시작했다. 그간에 아무렇지 않거나 괜찮아졌다고 여겼던 가족들 정확히는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러지? 다 지난 일인데'라고 하면서도 자꾸만 가슴에 불이 붙는 기분이 됐다.
 
영화 속 희숙, 미연, 미옥, 진섭 남매도 이미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외도, 폭력으로 인한 정서적 학대의 아픔과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다만 세 자매는 그 고통을 외면하고 현실에 더 악착같이 매달림으로써 괜찮은 척 살 뿐이다.
 
하지만 삶의 무게가 더해지고 바라던 것들이 어긋날수록 그들 안의 상처는 더 벌어졌다. 결국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말이다.
 
가학의 주최가 아버지에서 남편과 딸로 바뀌었을 뿐인 희숙은 암 선고를 받으면서, 맹목적으로 종교만을 좇던 미연은 남편의 외도와 세 자매간 분열을 통해서, 진심으로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도무지 "엄마가 뭐 하는지 모르겠"는 미옥도.
 
 영화 <세자매> 스틸컷

영화 <세자매> 스틸컷 ⓒ 영화사

  
부모도 삶의 매순간이 처음, 사과를 모른다면 
 
"아버지 사과하세요. 목사님한테 말고요 우리한테 사과하시라고요!"
 
각각이 마음속에 슬픔과 분함, 거북함을 누르고 아버지 생일잔치에 모였지만 떨어져 살 때는 부딪힐 일 없던 상처들이 한자리에 모임으로써 충돌해 터지고 말았다. 미연은 급기야 이제는 늙어 힘없는 아버지에게 늦었지만 사과를 요구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를 모르고 무기력함으로써 자식들이 상처 입는 걸 방치할 수밖에 없던 어머니 역시 "내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나?" 같은 말로 자식들을 압박하고 되레 자신의 남편을 감싸려고 애쓴다.
 
내가 마흔이 다 돼서도 자꾸만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고 말했을 때 내 부모님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미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인생의 모든 날이 처음 온몸으로 부딪히며 헤쳐 넘어야 하는 크고 작은 파도 같음을 알기에 원망보다는 '그랬구나, 우리도 힘들었지만 너도 아팠구나' 하는 공감과 위로를 바랐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최후 답변은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였다. 어머니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집들도 많지 않느냐. 이제쯤 되면 스스로 잘 해결할 나이도 되지 않았니"라고 하셨다.  
 
 영화 <세자매> 포스터

영화 <세자매> 포스터 ⓒ 영화사

 
  
"어른은 내 안의 어린이를 내가 돌보는 것"
 
내 속에 자꾸만 덧나는 상처를 치유해보고자 가족 불화 경험담과 그 극복 방법에 대한 동영상 강좌나 책을 많이도 봤다. 그러는 중에 어떤 이의 어른에 대한 정의가 마음에 와닿았다. 여전히 부모를 원망만 하는 것은 어린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어른이 됐다면 이제 스스로 내가 바라는 어른이 돼서 나 자신을 돌보면 된다고.
 
살면서 남을 부러워한 적이 그다지 없었는데 이제쯤 생각해보니 화목한 가정, 사랑과 믿음으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부모로부터 자식이 얻는 유산은 마치 한 세계를 밝히는 빛 혹은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것임을 알고 그런 유산이 없는 것이 아쉽긴 했다. 그러나 결핍과 시련 또한 주는 것이 있다.
 
나처럼 그리고 영화 속 네 남매처럼 오래도록 가족, 부모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가 있다면 하나, 그 고통은 절대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다고 절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니 긴 시간 아프더라도 당신이 잘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가족을 보고 살지 않더라도 역시. 

또한 당신의 상처가 잘 아물도록 돌봐주지 않는 부모라면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이 버거워 과거를, 자식이라 해도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니 원망보다 동정을 할 일이며, 이제 어른의 나이가 됐다면 부모에게 바라는 위로와 응원은 이제 내 스스로가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힘껏 원껏 해주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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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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