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성과를 이뤘다. <기생충>에 이은 두 번째 쾌거라는 문장을 쓰려는 찰나, 이런 의문이 든다. 한국 감독에 한국 자본으로 한국에서 제작되어 국내 영화 당국의 지원을 받은 <기생충>은 분명 한국 영화겠지만, <미나리>는 어떤가.
 
배우 윤여정, 한예리 등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배우가 출연했고, 또 다른 주연 스티븐 연과 정이삭 감독 모두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 <미나리>를 한국 영화로 볼 수 있을까.

한국 영화라면 응당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등급 심사를 받아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어야 한다. 하지만 <미나리>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세운 '플랜 B'라는 회사에서 100% 미국 자본(물론 한화 20억 원인 초저예산이긴 하지만)으로 제작했고, A24라는 미국 배급사가 미국 전역 배급을 맡아 지난 2월 12일 개봉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 <미나리>의 국적을 따지는 건 너무도 우스운 일이다. 미국 최대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아이엠디비>에도 이 영화를 미국 영어로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78회'의 역사를 자랑하는 골든글로브가 자초한 꼴이 됐다.

외신과 해외 영화인들의 비판 
 
 외국영화상 수상 당시 정이삭 감독, 그의 딸이 "내가 상 받을 수 있게 기도했다"며 아빠를 꽉 껴안고 있다.

외국영화상 수상 당시 정이삭 감독, 그의 딸이 "내가 상 받을 수 있게 기도했다"며 아빠를 꽉 껴안고 있다. ⓒ HFPA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식에 먼저 들끓은 건 미국 현지 언론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감독'이란 제목으로 정이삭 감독의 수상과 함께 외국어영화상 선정이 논란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사례를 언급하며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다분히 편협하고 인종차별적 논란을 만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경우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이 주로 등장하며 영어는 약 30% 비중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시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 후보에 올라 다른 작품들과 경쟁했는데 이 때문에 주최 측의 규정 변경을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바스터즈> 외에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도 영어 대사의 비중이 거의 없음에도 2007년 작품상을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바스터즈>와 <바벨>의 주연 배우가 <미나리>의 제작자인 브래드 피트였다.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 선정 기준.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 선정 기준. ⓒ HFPA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 선정 기준.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 선정 기준. ⓒ HFPA

 
골든글로브 규정집대로 해석하면 외국어영화상은 '비영어 대사가 50%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과 함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은 작품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에선 수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바꿔 말하면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은 작품상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는 기사에서 '배급사가 골든글로브에 접수할 때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했다'고 명시했지만, <미나리> 입장에선 외국어영화상 외엔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CNN 방송은 "미국 사람들 인구의 20% 이상이 집에선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쓴다"고 비판했고, < LA타임스 > 또한 "<미나리>는 다른 외국어영화들과 경쟁하게 된 유일한 미국 영화"라며 골든글로브 후보작을 결정하는 HFPA(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 구성 문제를 지적했다.

할리우드 외신기자 협회인 HFPA엔 흑인이 한 명도 속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인이고 미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지난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페어웰>의 룰루 왕 감독은 SNS에 "올해 <미나리> 만큼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이민자 가족 이야기"라면서 "미국인을 오로지 영어만 사용하는 사람인 양 규정하는 걸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
 
오스카로 더 알려진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런 논란을 의식하며 2020년부터 외국어영화상을 '국제영화상'으로 바꿔 시상하고 있다. 지난해 <기생충>이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그리고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까지 받은 사례를 보면 편견과 차별을 없애려는 아카데미 측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아카데미 또한 백인 중심, 미국 중심의 무대라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2016년 제88회 행사 때 남녀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1명도 오르지 못해 그간 암묵적으로 쌓여 있던 인종차별 논란의 불씨가 됐다(당시 이병헌이 아시아 최초로 오스카 시상자로 오르기도 했다 - 기자 말).
 
이때 시상식 사회를 맡은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내가 사회자가 아니었다면 이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흑인 배우를 위한 상을 따로 만드는 걸 원하는 게 아닌 백인과 동등하게 연기로만 평가받는 공평한 기회를 원하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시상자를 흑인과 아시아인으로 채우는 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날선 비판이었다. 
 
  지난 10일,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봉준호 감독

지난 10일,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봉준호 감독 ⓒ CJ엔터텐인트먼트

 
봉준호 감독은 본격적으로 오스카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11월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아직까지 오스카 후보에 한 작품도 오르지 못했다는 질문에 "오스카는 로컬(세계적이지 않은) 시상식이지 않나"라고 반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봉 감독의 말은 해외 유명 셀럽과 외신에 의해 보도되며 아카데미 회원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처럼 추앙받았다. 유력 매체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 <기생층>의 4관왕 소식을 전하며 "봉준호가 오스카상을 필요로 한 게 아닌 오스카가 봉준호를 필요로 했다"며 시의적절한 아카데미 측의 변화를 칭찬한 바 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리면 이번 골든글로브 또한 스스로 '로컬 시상식'임을 입증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번 논란을 인지한 골든글로브 측이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데드라인> 등 외신에 따르면 HFPA 의장 티나 첸을 비롯한 임원진은 "앞으로 골든글로브가 회원의 인종 구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비판을 수용해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더 이상 우린 골든이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때에 와 있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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