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농구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단연 전주 KCC 이지스다. 아슬아슬한 6강 후보 정도로 예상되던 평가가 무색하게, 단독 선수를 달리며 정규리그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이다. 큰 기복 없이 승수를 꾸준히 쌓아나가며 안정적인 승률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시즌이 개막되기 전까지만 해도 원주 DB 프로미, 서울 SK 나이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안양 KGC인삼공사 등이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다. 문경은 감독이 이끄는 SK는 최준용, 안영준, 최부경, 김민수 등 다양한 색깔의 장신 포워드진을 앞세운 밸런스 농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으며, DB는 기존 허웅, 두경민, 윤호영 등에 FA 빅맨 김종규(30·207㎝)가 합류한 후 내외곽에서 더욱 탄탄해졌다.

현대모비스 같은 경우 간판스타 양동근이 은퇴했지만 함지훈, 전준범, 서명진 등 노장과 젊은 피의 적절한 조화, 최고 외인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숀 롱(28·205㎝)과 FA 대어 장재석(30·204㎝)을 품에 안으며 우승 후보의 전력을 갖췄다. 한술 더 떠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최진수(32·203㎝)까지 데려와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또다시 모비스 왕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KGC는 포지션별로 신구조화가 잘되어 있고 특유의 압박수비에서 타팀의 경계를 샀다.

하지만 변수가 많은 스포츠에서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일뿐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판도는 다르게 돌아갔다. 현대모비스만이 상위권(2위)을 지키며 전력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을 뿐 DB(9위), SK(8위)는 예상 밖 부진으로 6강 플레이오프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KGC는 연승과 연패를 거듭하며 기복이 심한 모습이다.

줄부상, 팀내 사건사고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중도에 종료된 2019~2020시즌 정규리그를 공동 1위로 마친 두 팀의 갑작스러운 추락은 예상 외 결과다. 그런 가운데 불안한 전력으로 평가받던 '다윗' KCC의 1위 질주는 '공은 둥글다'는 스포츠계 격언을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다.
 
 KCC 1위 질주의 가장 큰 힘은 양과 질을 모두 충족시키는 '가드진'이다.

KCC 1위 질주의 가장 큰 힘은 양과 질을 모두 충족시키는 '가드진'이다. ⓒ 전주 KCC 이지스

 
KCC 전성기를 이끌었던 힘은 가드진
 
KCC는 가드진에서 상대 팀을 앞설 때, 좋은 성적을 거두고는 했다. 명가의 초석을 다진 1차 왕조 때는 '컴퓨터 가드' 이상민이 일당백으로 앞선을 이끌었다. 빼어난 운동능력과 센스는 물론 득점능력까지 겸비한 이상민은 원맨리딩으로 팀을 이끌 수 있는 특급 테크니션이었다. 이상민이 있기에 단신 '캥거루 슈터' 조성원이 2번 포지션에서 마음 놓고 활개칠 수 있었다.

사실상 포워드에 가까운 플레이 스타일의 조성원은 이상민의 존재 덕분에 리딩, 수비에 부담을 갖지 않고 공격에 집중했다. 이상민의 속공패스를 3점슛 혹은 레이업슛으로 연결하는 공격패턴은 상대팀 입장에서 공포 그 자체였다. 이상민은 수비에서도 이른바 바꿔막기를 통해 종종 상대 2번을 막아줬다. 양날의 검 조성원을 가장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다. 이상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신선우 감독은 유도훈, 최명도 등 수준급 백업가드를 활용해 최대한 뒤를 받쳐주려 신경 썼다.

허재 감독이 이끌었던 2차 왕조 시절에는 이른바 '들개군단'으로 불리던 활동량 넘치는 가드진의 앞선 수비가 빛났다. 전태풍이라는 강력한 공격형 가드도 함께 했지만 실질적 공헌도만 따진다면 압박 질식 수비를 펼친 기타 가드진이 더 높았다는 평가도 많다.

잘 알려졌다시피 2차 왕조의 핵심은 하승진(36·221cm)이다. 외국인 선수들까지 압도할 정도의 사이즈를 가졌던 하승진이 있었기에 KCC는 빅매치시 높이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하승진은 큰 체격만큼이나 약점도 많았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움직임이 느려 속공, 백코트는 물론 수비 범위에서도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상대팀에서는 미들슛 등이 뛰어난 상대를 앞세워 하승진을 골밑에서 끌어내는 전략을 앞세웠다. 그런 하승진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것은 활동량 넘치는 가드진이었다.

허감독 하에서 강병현, 신명호, 임재현 등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뛰어다녔다. 신명호는 평균 이하의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수비 하나로 롱런에 성공한 케이스다. 대인마크, 도움수비는 물론 어지간한 단신 외국인 선수까지 압박하는 수비력을 통해 2차 왕조의 핵심으로 군림했다.

놀라운 것은 이전까지의 전문 수비수들과 달리 더티한 플레이가 아닌 정면에서 상대 주축선수들을 묶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외려 수비에 한창 물이 올랐던 시절에는 수비수임에도 상대팀의 집중마크에 시달리며 잦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향후에도 수비수로서의 신명호가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KCC 1위 질주의 든든한 원동력
 
KCC는 올 시즌을 앞두고 김지완(31·187㎝), 유병훈(310·188㎝)을 FA로 야심차게 영입했다. '전력상 한계가 있다'는 혹평과 달리 야심차게 대권에 도전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우승 욕심이 없었다면 주전급 가드를 둘이나 데려오지는 않았을 공산이 크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인천 전자랜드에 1라운드 6순위로 지명받았던 김지완은 활동량이 돋보이는 1번 자원이다. 발군의 스피드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골밑을 파고 수비시에도 상대를 악착같이 따라다닌다. 배짱도 좋아 클러치 상황에서의 빅샷이나 버저비터 성공률도 높은 편이다.

확실한 장점을 내세우는 김지완과 달리 유병훈은 이것저것 두루두루 무난하게 잘하는 장신 포인트가드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득점력이 돋보이는 포인트가드도, 패싱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유형도 아니지만 특별히 약한 구석 없이 무난하게 경기를 이끌어가는 타입이다. 수비시 스피드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포지션 대비 좋은 신체 조건으로 이를 커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지완, 유병훈 영입 당시 KCC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위기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좋은 선수임은 분명하지만 이른바 포지션 중첩문제 때문에 영입효과가 반감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던 것.

그도 그럴 것이, KCC에는 이미 이정현(34·191㎝), 유현준(24·178㎝), 정창영(33·193㎝) 등 좋은 가드자원이 많았다. 외려 송교창(25·201cm)의 부담을 덜어줄 포워드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비싼 금액에 데려왔던 최현민이 제 역할을 못 해주는 가운데 노장 송창용만 믿기에는 질적, 양적으로 너무 불안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점인 가드진을 보강한 것에 대해 의문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같은 불안요소는 시즌이 시작되면서 하나둘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KCC 가드진은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정통파 포인트가드 유현준, 활동량 넘치는 김지완, 노련한 전천후 공격수 이정현, 무난한 장신 1번 유병훈, 궂은 일까지 잘하는 살림꾼 정창영 등 플레이 스타일이 제각각인지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했다.

전창진 감독은 한술 더 떠 단순한 기대주에 머물고 있던 이진욱(25·180㎝)에게까지 기회를 주었다. 단 1분을 뛰어도 근성 있게 달려드는 악바리 스타일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KCC의 풍부한 가드진은 전 감독이 즐겨 쓰는 '모션 오펜스'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유현준 정도를 빼고는 신체조건도 나쁘지 않아 3가드가 코트에 나서도 신장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외려 스피드가 돋보일 뿐이었다. 부족한 높이는 장신 포워드 송교창, 클래식 빅맨 유형 외국인 선수 타일러 데이비스(24·208㎝), 귀화선수 라건아(32·199㎝)가 책임졌다.

포지션별 밸런스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장점을 더욱 강화하는 운영 전략은 현재까지는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긴 장기레이스에서 선수들의 부상도 발생했지만 워낙 가드층이 풍부하니 적어도 가드라인 운영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는 모습이다.

KCC는 휴식기 이후 가진 27일 KGC와의 홈경기에서 68-72로 석패했다. 징크스처럼 굳어진 오랜 휴식 후 좋지 않은 경기력을 또 다시 입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 현대모비스와 2게임차 선두자리는 굳게 지키고 있다. 갑작스럽게 연패에 빠지지 않는 이상 여전히 강력한 정규리그 우승후보임은 분명하다.

가드진의 힘을 앞세운 KCC가 현재의 기세를 유지해 정규리그는 물론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차지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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