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독의 맛>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독의 맛> 포스터. ⓒ 넷플릭스


 
대만 타이난,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유명한 음식점의 사장 린쇼잉의 칠순 잔치가 열린다. 남동생 가족과 세 딸, 사위와 손녀가 모인다. 물론 손님들도 많이 찾아 그녀를 축하해 준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의 남편 천보창은 하필 그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알고 보니 보창은 불교에 귀의해 차이라는 여인과 타이베이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의 죽음 따위에 자신의 칠순 잔치를 망칠 수 없다고 생각한 쇼잉은 행사를 강행한 후 장례식을 준비한다. 

열흘 동안 음식점 문을 닫고 일가족이 모여 천보창의 장례식을 준비하는데, 세 딸과 손녀가 제각기 다른 성격과 인생사를 펼쳐놓는다. 아빠와 비슷한 성향의 첫째 딸은 유방암 재발로 고통 받는다. 둘째 딸은 성형외과 의사로 암 전문의 남편과 함께 잘 사는 듯 보이지만 딸을 미국으로 보내 의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음식점을 물려받고자 하는 셋째 딸은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간직해 엄마와 대립하는 형국이다. 그런가 하면, 둘째 딸의 딸인 손녀야말로 쇼잉을 가장 지근 거리에서 챙기며 그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 같다. 

린쇼잉과 가족들에게 천보창의 죽음은, 오랜 세월 함께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생각도 하기 힘들었던 그의 살아생전보다 더 많고 큰 감정을 전한다. '곁에 있지도 않았던 작자가 애들 아빠이자 남편이랍시고 죽어서 돌아왔네' '그래도 아빠는 아빠고 돌아가셨으니까 챙길 건 챙기고 기릴 건 기려야지' 등. 평생 밖으로만 돌았던 남편을 뒤로하고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고 엄마로서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던 린쇼잉으로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특히, 천보창과 진심 어린 사랑을 나눴다는 차이라는 여인의 존재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걸까.

2020년 대만 최고 흥행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고독의 맛>은 공학도 출신의 젊은 실력파 감독 조셉 수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2017년 동명의 단편 영화로 선보였다가 2020년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다시 선을 보였다. 그녀가 손녀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져온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2020년 대만에선 넷플릭스 아닌 극장에서 개봉했다가 2021년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대만 현지 영화계에선 <고독의 맛>이 몇몇 이슈를 뿌렸다. 제57회 금마장 영화제에서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 1개 부문밖에 수상하지 못했는데, 린쇼잉 역을 맡은 천수팡(1935년생)으로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금마장 영화제 최고령 여우주연상 수상자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2020년 대만에서 1억 대만 달러를 돌파한 영화가 단 두 편인데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과 <고독의 맛>이다. 그중에서도 <고독의 맛>은 2020년 대만의 최고 흥행작으로 이름을 남겼다. 

넷플릭스가 소개하는 대만 영화의 퀄리티가 나날이 상향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 척도가 금마장 영화제로 대표되는 비평 면이고 대만 현지 수익으로 대표되는 흥행 면인 듯하다. 어느 한 면에서도 어중간하지 않은 확실한 영화들만 소개하는 것 같아, 보는 사람도 믿음직하고 대만 영화계 자체도 날개를 펼치는 것 같다. 대만이야말로 중국과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느낌을 고루고루 받아서 고유하게 승화시킨 동북아의 진정한 대표적 나라가 아닌가 싶다. 

누가 칠순 린쇼잉을 위로해 주나

영화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다양한 감정선에 따라 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린쇼잉이 중심이 되겠지만 말이다. 린쇼잉의 삶은 우리네 한국의 여느 동년배 여성의 삶과 매우 흡사한 것이, 평생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어느덧 삶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는 모양새가 그렇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구한테도 동정이나 응원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아이들한테도 말이다. 

영화 속 세 딸도 똑같다. 평생 옆에서 힘들게 노역하며 버젓이 키워냈 엄마의 칠순 잔치이건만, 평생 가족들의 돈과 마음만 축냈던 아빠가 죽어서 돌아오자 그에게 일방적인 동정표를 날리는 게 아닌가.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는 말의 의미일까, 엄마와는 오만가지 것들을 함께하며 좋은 감정이 쌓일 수도 있겠지만 나쁜 감정이 쌓일 수도 있는 반면 종종 보는 아빠와는 좋은 시간만 보내며 좋은 감정만 쌓았으니 좋은 기억밖에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제목 '고독의 맛'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도움을 주진 못했을 망정 피해만 끼친 남편을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긍정받기는커녕 부정을 당하니 진정 고독하기 짝이 없다. 마음 챙길 겨를이 없고 마음 둘 곳이 없으며 아려 오는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어 아프기만 하다. 누가 린쇼잉의 마음을 알아 주고 챙겨 주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자신밖에 없는 것 같다. 

정리와 선택의 순간, 포기하고 내려놓기

인생은 매순간 정리과 선택이 뒤따른다. 린쇼잉은 지나온 세월을 뒤로 하고 오래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정리하고 선택해야 했다. 남편이 죽을 때까지 이혼해 주지 않고 붙들고 있었던 그 감정,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인지 그에게 집착한 것인지 자신의 지난 세월이 불쌍해 쥐고 있던 것인지. 그가 죽을 때 곁에서 끝까지 있었던 차이라는 여인을 보곤, 그녀의 진심 어린 사랑 나아가 그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느꼈다. 더욱더 고독해진 린쇼잉, 감정을 정리하고 '내려놓기'를 선택한다. 

그녀는 사면초가의 고독에서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감정을 '포기'하고 남편을 보내줬을까, 남편과 차이의 사랑과 세 딸 제각각의 인생에서 파생된 어쩔 수 없는 마음가짐이 주는 고독의 맛을 음미하며 남편을 진정으로 '용서'했을까. 남편을 용서했을 거라고 보지만, 그렇다면 그녀의 인생이 너무 슬프다. 그렇다고 감정을 포기하고 남편을 보내줬다고 하기엔, 그 또한 그녀의 인생이 너무 안쓰럽다. 하여,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지만 찝찝한 뒷맛 또한 남긴다. 우리네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더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내려놓기'를 선택한 린쇼잉, 종국에 그녀는 '나 혼자만 희생하면 만사가 좋아' '나 혼자만 입을 다물고 귀를 닫고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모든 이가 행복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동양적인, 대만적인, 여성으로서, 그 나이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메시지를 던질 만한 이야기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쉬움 아닌 안타까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안타까움이 아쉬움으로 번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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