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

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 ⓒ 판시네마

 
미국 교포 감독의 자전적 영화가 해외 평단과 주요 시상식을 휩쓸고 있다. 그 주인공은 지극히 한국적 제목인 <미나리>다. 

1980년대 한국을 떠나 미국 중부 시골 마을 아칸소에 자리 잡은 제이콥(스티븐 연)과 모니카(한예리) 가족의 고군분투. 농작물을 심어 큰 사업을 벌이려는 이들의 계획과 달리 상황은 어려워지기만 하고, 결국 한국에서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까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3대가 서로 갈등하고 다시 보듬는 과정이 꽤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민자의 정서

배우 한예리가 맡은 모니카는 경제부흥기에 한창 접어들던 당시 한국과는 동떨어진 외로운 이민자 1세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캐릭터다. 배우 또한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 부분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영어 대본) 번역본이라 어떤 이야기인지 완벽하게 이해되진 않았다. 감독님을 빨리 뵙고 싶었는데 만나니 너무 좋은 사람이더라. 시나리오고 뭐고 감독님과 뭘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유년 시절 기억을 들으며 제가 알고 있던 여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이모, 할머니 등 1980년대 여성들의 얼굴과 기억이 제 안에 많이 남아 있더라. 모니카는 이민 가서도 폐쇄적으로 생활한 사람인 만큼 한국적 정서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가정을 이룬 두 사람. 1980년대 한국에서 살던 다수의 청년들이 그랬다.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했고, 한번 결혼한 이상 어찌 되든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차 있곤 했다. 한예리는 "그렇게 어린 두 남녀가 너무도 어린 나이에 많은 걸 책임져야 할 상황이 됐다. 그 시대를 거친 어머님, 아버님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며 "그나마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려 노력한 게 대단하다. 아마 저였으면 그냥 도망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말했다.

"당시 한국은 엄청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민자들은 딱 거기에 멈춰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계시더라. 감독님의 가족분들의 옷, 사진을 보며 분위기를 생각하려 했다. 그리고 대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가 기억하는 엄마, 아빠의 말투를 반영하려 했다. 그때 우리 부모들은 자기야, 오빠야 이렇게 부르지 않잖나. 첫째 아이 이름으로 부르곤 했기에 감독님께 말씀드려서 반영했었지. 영화 말미에 나오는 창고 장면에서 '여보'라고 외치는데 나름 그게 애정이 담긴 표현으로 들리길 원한다(웃음)."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 판씨네마(주)

 
맨땅에 헤딩 정신

한국 이민자 1세와 그의 자녀를 중심에 세운 <미나리>는 미국 개봉 이후 주요 행사에서 연기상, 작품상을 받는 등 낭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예리 또한 골드리스트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현지 매체에선 오스카상 예비후보로 윤여정과 한예리를 거론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 <기생충> 이후 이처럼 뜨거운 반응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한예리는 "아마도 미국이 이민자들의 땅이라 그런 게 아닐까"라며 조심스럽게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미나리처럼 미국 땅에 뿌리내려 살고, 다음 세대들까지 단단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영화에 공감해주시는 것 같다. 이민자뿐 아니라 보편적인 가정, 유년 시절, 개인의 이야기가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나쁘거나 상처 주는 일이 없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또 감정을 강요하거나, 특정 장면에서 강하게 화두를 던지는 게 아닌 편안하게 영화에 물들고 다가갈 수 있게끔 해서 더 사랑받는 것 같다.

내리사랑이란 말도 있잖나. 여러 외신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우리 할머니 이야긴 줄 알았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긴 줄 알았다는 등. 그렇지!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모니카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 상황을 해결하기보단 자신에게 다가온 일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가족을 지키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게 사랑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모니카가 갖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곧 가족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겠구나 싶다."


뿌리 자체를 옮기는 것, 척박한 땅에서 처음부터 삶의 터전을 일구는 일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다. <미나리> 속 모니카를 한예리라는 사람에 대입해 보길 부탁했다. 막막함,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무언가를 시작한 경험이 있는지 묻는 말에 한예리는 잠시 생각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

영화 <미나리>에서 모니카 역을 맡은 배우 한예리. ⓒ 판시네마

 
"연기할 때 조금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다. 사실 맨땅인지도 모르고 시작한 건데 돌아보니 맨땅이었던 것이지. 아직까진 아주 두려운 상태에서 시작한 일은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영화를 처음 했을 때 뭔지도 모르고 즐거워서 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 어떤 득이 된다는 생각도 없이, 그땐 돈도 안 받고 연기하고 그랬다. 일단 뭔가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시작하기만 한다면 허투루 하는 건 없겠지 하는 생각이 있다. 그때 맨땅에 헤딩을 나름 많이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감사하다. 또 다른 뭔갈 그런 식으로 해야 할 때 제가 겁먹지 않고 했으면 좋겠다. 예리야! 일단 하자! (웃음)."

<미나리> 이후 한예리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종종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렇기에 오스카 수상 여부나 미국 현지에서 이어지는 각종 수상 소식은 그에겐 부수적인 것이었다.

"이 영화를 발판 삼아 뭔갈 이룬다는 목표가 있었다면 시원하게 좋다고 얘길 할 텐데 전 그저 윤여정 선생님과 함께 촬영하면 재밌겠다, 감독님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하고 싶었다는 생각뿐이다"라며 한예리는 "할리우드 진출을 말하고 오스카를 말하는 게 여전히 쑥스럽고 이상하다. 단체 모바일 메신저 방에서 서로 축하하고는 있는데 서로 만나지 못해서 아쉽고 그렇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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