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였던 남자 프로배구 삼성화재 소속의 박상하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박상하는 22일 구단을 통해 "중학교 시절 친구를 때렸고, 고교 때도 숙소에서 후배를 때렸다"며 학폭 사실을 시인했다. 이어 "상처 받은 분들께 죄송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책임을 지고 은퇴하겠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라고 밝혔다.

구단도 박상하의 은퇴를 수용하며 "피해자와 가족, 배구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향후 선수 선발 단계부터 학교 폭력 및 불법 행위 이력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겠다. 앞으로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 폭력 피해자들의 신고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밝혔다.

박상하는 2008-2009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우리캐피탈(현 우리카드)에 지명된 뒤 신협상무를 거쳐 2017-2018시즌부터는 FA자격을 얻어 삼성화재로 이적하여 뛰어 온 베테랑 선수다. 초창기에는 라이트로 활약했지만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올스타와 국가대표에도 수차례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본인의 이름과 응원가에서 비롯된 '위아래 센터'라는 친근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 올 시즌에는 소속팀 삼성화재의 주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지난 19일 온라인에서 박상하의 과거 학폭 의혹이 제기되며 그의 배구인생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글쓴이는 1999년 제천중 재학 시절 박상하와 그의 친구들에게 심각한 따돌림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상하는 피해자의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했으나 이후로도 폭로가 이어지자 결국 입장을 바꿔서 학폭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박상하는 피해자가 제기한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인했다. 박상하는 "동창생 납치 및 감금, 14시간 집단 폭행 등은 사실이 아니다. 향후 법적 대응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박상하는 배구계 학폭 사태로 인하여 현역 선수가 은퇴까지 하게 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앞서 학폭 논란으로 도마에 올랐던 이다영-재영(흥국생명) 쌍둥이 자매나 송명근-심경섭(OK금융그룹)의 경우 당분간 팀 전력에서 이탈하기는 했지만 엄연히 현역 선수 신분이다. 이다영과 이재영은 무기한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이는 소속팀이 원하면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상황이고, 송명근과 심경섭은 자숙 차원에서 스스로 올 시즌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경우다.

박상하가 다른 가해자들보다 무거운 책임을 진 것은 맞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박상하는 학폭 사실을 자백하기 전에 사실상 두 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삼성화재를 비롯한 프로구단들은 배구계 학교 폭력 논란이 시작된 이래 저마다 구단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과거에 가해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면 미리 양심고백을 할수 있는 기회를 줬다. 하지만 박상하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 기회를 놓쳤다. 심지어 자신을 겨냥한 피해자의 폭로가 나오기 시작했을때도 처음에는 부정했으나, 추가 폭로가 이어지고 더 이상 숨길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겨우 인정했다.

물론 박상하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박상하의 은퇴와 별개로 이 사건은 그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박상하는 학교 폭력 가해로 피해자에게 준 상처는 물론이고, 소속 구단과 배구팬들까지 기만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은퇴했다고 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수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박상하에게 이대로 아무런 제재도 내려지지 않을 경우 언제든 배구계에 아무렇지않게 복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선수로서 은퇴 철회가 아니더라도 지도자나 경기위원, 해설위원 등 배구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역시 폭력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팀 코치시절 대표 선수였던 박철우를 폭행하여 당시 자격정지를 받았지만 불과 2년만에 징계가 해제되어 배구계에 복귀하여 승승장구했던 전력이 있다. 배구계가 정말로 학폭 논란을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박상하의 은퇴 여부와 상관없이 자격정지나 퇴출 같은 중징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최근 배구계 학폭 논란의 가해자들이 저마다 '셀프징계'를 남발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돌아봐야 할 문제다. 이다영-재영 자매나 송명근-심경섭 등은 구단의 처분이 내려지기도 전에 자숙한다는 명분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이상열 감독은 12년 전 박철우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오르자 잔여시즌 경기출장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얼핏보면 책임을 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휴가에 더 가깝다. 보여주기식의 현실도피로는 이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배구팬들에 대하여 진심어린 속죄와 반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프로구단들과 배구계도 이 사태에 대하여 강한 책임감을 느껴야한다. 애초에 폭력 가해자들이 배구계 곳곳에서 어떠한 관리도 제약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배구계의 허약한 검증 시스템과 도덕불감증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라도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징계와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학폭 사태가 일으킨 후유증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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