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치명적 문제들이 점점 더 많이 포착된다. 막연한 불안감이나 빈약한 희망고문보다, 적합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현 지구환경에 관하여 적합한 관심을 두루 나누며 함께 행동할 마음을 갖추고자, 환경 다큐 리뷰를 연재한다.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그 중심에 둔다.[편집자말]
환경파괴가 극심한 우리 시대, 어느 환경 다큐멘터리가 진지하지 않겠느냐마는 <비룽가>는 특별히 더 진지하다. 넷플릭스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시간은 100분이다. 

<비룽가>는 비룽가 산맥 남부 루망가보에 위치한 산악고릴라 고아원의 여러 정경들을 정감있게 그린다. 이곳은 꼬맹이였을 때 밀렵꾼들 때문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산악고릴라들을 정성껏 돌봐주는 곳이다. 산악고릴라는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들의 서식지는 비룽가 국립공원 안에 있는데, 아프리카 최초의 국립공원이며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다(1979년 등재).
 
산악고릴라 고아원에서는 인간과 고릴라가 서로 눈을 맞추고 서로 쓰다듬으며 어루만진다. 고릴라는 자기들을 돌봐주는 인간들을 엄마·아빠로 여긴다. 고릴라들은 대체로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잘 따르며 잘 놀지만, 때로 어리광을 부리거나 자기주장을 펴기도 한다. 고릴라가 인간의 등에 업혀있는 모습은 더없이 정겨워 보인다. 고아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고릴라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비룽가 국립공원의 밀림 속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고릴라들을 돌려보낼 야생의 숲­, 비룽가 국립공원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콩고 국경 내 비룽가 국립공원 주변의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다. 군인들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 <비룽가>  산악고릴라 뒤에 서있는 사람(경비대원, rangers)은 무장군인들로부터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한 것.

▲ 영화 포스터 <비룽가> 산악고릴라 뒤에 서있는 사람(경비대원, rangers)은 무장군인들로부터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한 것. ⓒ 넷플릭스

 
전쟁 혹은 평화
 
콩고의 비룽가 국립공원에 군인들이 들어오게 된 건 하루이틀 전의 일이 아니다. 1885년 아프리카 전역이 분할되어 저마다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콩고는 특이하게도 레오폴드2세의 기업들에 의해 '사유화'되었다.

그 기업들이 콩고의 천연자원과 야생동물들을 모조리 탈취했다. 수백만 명의 콩고인들이 학살됐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드디어 1960년, 파트리스 루뭄바라는 인물이 콩고의 독립을 이끌었다. 광물자원을 탐내던 외국 정부들에 루뭄바는 눈엣가시였고 결국 1961년 루뭄바는 처형됐다. 그리고 콩고는 계속 수탈당했다. 
 
그러다가 1994년, 콩고의 이웃나라 르완다에서 대학살이 일어났다. 곧 콩고에서도 내전이 개시됐다. 내전에 참전한 반군들은 광물자원을 내다팔아 돈을 벌었다. 온 세계의 전자산업은 그들이 판매하는 광물자원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그 돈은 군부대의 전쟁자금으로도 흘러들어갔다. 5백만 명 이상의 콩고인들이 죽었고, 비룽가 국립공원은 '위기에 처한 세계 자연유산'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약 10여 년간의 긴 내전 끝에 2003년에 이르러 가까스로 불안정한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2006년엔 40년 만에 민주선거가 치러졌다. 콩고는 안정의 길로 들어선 듯 보였다. 그런데 2010년, 콩고 동쪽 비룽가 국립공원 에드워드 호수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석유는 인간들의 마음에 탐욕의 불씨를 다시금 불태웠다. 2012년, 콩고에 전쟁과 혼란이 되돌아왔다.
 
다큐멘터리 <비룽가>의 제작진은 종군기자처럼 카메라를 들고 그 혼란한 전쟁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었다. 총과 대포와 탱크 또한 소모품이 아니다. 포탄 소리는 음향효과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연출된 것이 아니라 실제다. 2012-2013년 콩고민주공화국 비룽가 국립공원 인근 도시 '고마'에서 일어났었던 실제 전쟁 장면을 다큐멘터리 <비룽가>는 그대로 기록했다.
 
탐욕 혹은 생명
 
석유는 곧 돈이다. 그래서 주민들 안에도, 정부 안에도, 반군 안에도 석유채굴을 찬성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영국의 정유회사 SOCO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콩고에 입성했다. 한편 석유채굴로 인해 비룽가 국립공원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ICCN(콩고 국립공원 관리단)으로 모였다.

ICCN은 모든 야생동물을 비롯하여, 희귀종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악고릴라를 지켜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들도 무장을 했다. 반군들에 대항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반군 M23의 군사력은 매우 강력했다. 정부군이 포기하고 떠나가버린 도시 '고마'에 반군 M23이 침공해 들어왔다.
 
전쟁 발발 직전, 여기자 멜라니는 정유회사 SOCO와 반군의 관계가 의심스러웠다. SOCO가 반군에게 뒷돈을 댔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멜라니는 SOCO의 직원 두 명을 몰래카메라로 찍었다. 유럽인인 그들은 콩고 내전에 참여한 모든 콩고인들을 멸시했다. ICCN의 최고책임자 이마누엘(벨기에인)이 콩고인들을 조종하고 있다며 조롱했다. 목숨 걸고 산악고릴라를 지키는 ICCN 경비대원들을 향해서는 고릴라를 이용할 뿐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 틀림없다며 근거없는 추측을 남발했다.
 
물론 그 유럽사람들은 완전히 틀렸다. 루망가보의 산악고릴라 고아원에서 일하는 콩고인 안드레는 전쟁을 겪는 동안 고릴라 곁에서 총을 들고 의연하게 보초를 섰다. 그는 죽기까지 고릴라를 지킬 것을 다짐했다.
 
영화 스틸컷 <비룽가>  반군 M23과의 전투를 앞두고, 산악고릴라 고아원에서 일하는 안드레가 총을 손질하는 모습.

▲ 영화 스틸컷 <비룽가> 반군 M23과의 전투를 앞두고, 산악고릴라 고아원에서 일하는 안드레가 총을 손질하는 모습. ⓒ 넷플릭스

 
그러나 안타깝게도, 쇠약했던 고릴라 한 마리가 포탄 소리에 벌벌 떨고 설사를 하는 등 힘들어하다가 결국 죽었다. 안드레는 사랑하는 고릴라를 잃었다며 슬퍼했고,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고릴라는 돌보는 건 돈 때문이 아니었다. 고릴라의 존재와 자기 존재가 연결되어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천혜의 자연자원 비룽가 국립공원 야생동물들의 실존이 자신을 포함한 전 인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돈을 좇는 쪽은 따로 있다. 석유를 파내서 돈을 벌겠다는 일념에 가득찬 정유회사, 정유회사를 측면에서 돕는 일부 정부인사들, 그리고 아마도 정유회사와 모종의 거래를 맺은 M23 같은 반군이 그런 쪽이다.
 
비룽가 국립공원이 훼손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M23의 고마 점령 치하에서도 ICCN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것이 험난하고 위험한 일일지언정 말이다. 2013년에는 영국 SOCO의 불법건축을 막으려다 체포된 경비대 소장 로드리게가 고문을 당했고, 17일간이나 감금되었다.

2014년에는 ICCN 최고책임자 이마누엘이 총에 맞았다(다행히 생존했고, 현재까지도 활동 중이다). 2020년 4월엔, 경비대원 12명이 사살됐다. 가장 최근에도(2021년 1월), 경비대원 6명이 살해됐다. 르완다 내전(1994년)을 기점으로 헤아리면, 지금까지 약 200여 명의 경비대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웃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는 일이 비룽가 국립공원 안에서는 일상이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비룽가>를 관람한 후 비룽가 국립공원에 대하여 조금 다른 마음을 갖게 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굳이 생명을 걸 것까지는 없으리라.

그저 ICCN 경비대원들의 활동이 '온 인류의 집(지구)'의 건강을 위해 야생동물 서식지를 지키는 귀한 일임을 인식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건 어떨까. 그들의 활동을 지구촌 방방곡곡에 알리는 건 어떨까. 탐욕 편이 아닌 생명 편에 같이 서자는 말이다.
 
비룽가 국립공원 홈페이지 가운데 동그라미 안에 고릴라가 그려져 있다.

▲ 비룽가 국립공원 홈페이지 가운데 동그라미 안에 고릴라가 그려져 있다.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핵없는세상> 공동대표 &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지도위원이다.

*덧붙이는 글:
다큐멘터리 <비룽가> 홈페이지 virungamovie.com
비룽가 국립공원 홈페이지 virunga.org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콩고 비룽가 국립공원 경비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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