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집을 통해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같은 불멸의 히트곡을 부르며 '가왕'에 등극한 조용필은 1981년에 발표한 3집을 통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그가 직접 작곡한 타이틀곡 <고추잠자리>는 장르를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한 전개로 당시 가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인기가수' 조용필이 '거물 뮤지션'으로 한 단계 올라선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7년 후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또 한 번 대중들을 충격에 빠트린 노래가 등장했다. 응원가 같은 신나는 템포로 진행되던 노래는 막판에 갑자기 느려지더니 발라드로 돌변한다. 서울대와 연세대, 서강대에 재학중인 명문대생들로 결성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가요와 국악을 접목시킨 주병선(훗날 <칠갑산>이라는 명곡을 부른 가수)의 <고인돌>을 제치고 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했다.

대상이 확정된 후 리더로 보이는 학생은 "그동안 음악 한다고 부모님 속도 많이 썩혀 드렸는데 앞으로 효도하고 싶습니다"라며 특유의 낮은 음색으로 수줍게 수상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천재'라는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가요계에 등장한 그는 거짓말처럼 생을 마감한 2014년까지 25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천재 뮤지션'이라는 수식어를 내려 놓지 않았다. 대한민국 가요계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이다.

밴드로 시작해 다시 밴드로 돌아온 아이돌스타
 
 신해철은 무한궤도 해체 후 원치 않았던 솔로 활동을 해야 했다.

신해철은 무한궤도 해체 후 원치 않았던 솔로 활동을 해야 했다. ⓒ 다날엔터테인먼트

 
신해철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가의 꿈을 꾸던 소년이었다. 고교시절에는 김태원이 이끌던 록밴드 부활의 열혈팬으로 직접 부활을 따라 다니며 형들에게 밴드음악의 기초를 배웠다고 한다.

서강대 재학시절 무한궤도라는 밴드를 결성해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탔을 때만 해도 신해철은 꿈꿔오던 밴드음악을 이어갈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무한궤도는 한 장의 앨범만 발표하고 해체됐다(물론 무한궤도의 이름으로 발표한 유일한 앨범은 음악팬들에겐 명반으로 꼽힌다). 이후 신해철은 솔로로 데뷔했다. 

솔로 데뷔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소녀팬들을 겨냥한 팝발라드였고 후속곡 <안녕> 역시 어렵지 않은 영어 랩이 가미된 댄스넘버였다. 신해철이 많은 소녀팬들을 거느리며 대중적으로 가장 높은 인기를 끌던 시기이기도 했다. 신해철은 <연극 속에서>, <인생이란 이름의 꿈> 같은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음악 철학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 시절대중들이 기억하는 신해철은 <안녕>을 부르며 수줍게 박자를 맞추던 미소년 가수였다.

신해철은 2집 'Myself'를 통해 앨범 수록곡 전체를 작사·작곡한 국내 최초의 미디음반을 발표했다. 신해철 2집에서 사랑 노래는 단 세 곡(<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아주 오랜 후에야>, <그대에게>)뿐이었고 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나에게 쓰는 편지>, <50년 후의 내 모습>)이나 음악인으로서의 각오(<길 위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한 냉소적인 시각(<재즈카페>, <다시 비가 내리네>) 등을 다양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솔로 활동 만으로는 신해철의 음악적 욕심을 채우기 힘들었다. 신해철은 솔로 콘서트에서 밴드로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정기송과 드러머 이동규를 영입해 1992년 넥스트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했다. 넥스트는 'New EXperiment Team'의 약자로 '새로운 실험을 하는 집단'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넥스트는 1992년 1집 앨범을 통해 <도시인>, < Turn Off The T.V >, <아버지와 나> 같은 실험적인 음악들을 발표하며 대형 밴드의 등장을 알렸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넥스트는 리더 신해철이 방위 복무 도중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며 큰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이동규는 무릎부상 여파로 드러머에서 베이시스트로 변신했고 정기송에 이어 새 기타리스트로 발탁된 임창수마저 앨범 녹음 직후 팀을 탈퇴했다. 실제로 넥스트 2집은 녹음 과정에서 워낙 멤버 유동이 많아 리더 신해철이 많은 부분에서 소위 '땜빵'으로 세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앨범이었지만 2집의 완성도가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넥스트 2집에는 <껍질의 파괴>, <이중인격자>, < The Dreamer >, <날아라 병아리>, < The Ocean > 등 신해철 음악 역사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곡들이 대거 수록돼 있다.

네 멤버의 조화가 돋보인 넥스트 3집
 
 넥스트 3집은 멤버들이 적절히 앨범에 참여한 신해철이 가장 꿈꾸던 이상적인 형태의 앨범이었다.

넥스트 3집은 멤버들이 적절히 앨범에 참여한 신해철이 가장 꿈꾸던 이상적인 형태의 앨범이었다. ⓒ 다날엔터테인먼트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이라는 밴드의 기본 구성으로 멤버를 재정비한 넥스트는 1995년 9월 자신들의 세 번째 앨범 'The Return of N.EX.T Part2: World'를 발표했다. 2집에 8곡밖에 싣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넥스트 3집에는 한 장의 CD에 무려 14개의 트랙이 꽉 채워져 있다. 일반CD를 세로로 두 장 정도 넣을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CD케이스도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잦은 멤버 변화 때문에 신해철의 원맨밴드 형식으로 녹음된 곡들이 많았던 2집과 달리 3집에서는 각 포지션에 걸출한 멤버들을 포진시켰다. 따라서 3집에서는 신해철뿐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이 연주는 물론 작곡 등으로 앨범에 참여한 부분이 제법 많았다. 3집은 '넥스트도 사실상 신해철의 솔로앨범 아닌가'라는 비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앨범이었던 셈이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세계의 문>은 한 곡 안에 몽환적인 내레이션 <유년의 끝>과 섬뜩한 가사의 강렬한 하드록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로 파트가 나눠져 있다. "무너진 백화점(삼풍백화점), 끊겨진 다리(성수대교)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어느 누구도 비난 할 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이라는 직설적인 가사와 김세황의 폭발적인 속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갑자기 흐름이 돌변하는 타이밍에 대비하지 않으면 자칫 고막이 놀랄 수도 있다.

이어지는 < Komerican Blues >는 지난 1993년 넥스트가 참여했던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OST에 수록된 곡을 새롭게 편곡해 실은 것이다. 록 음악에 국악을 접목한 신해철 특유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곡으로 콘서트에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초대해 합동공연을 하기도 했다. 강렬한 록 사운드 사이에 수줍게 자리잡고 있는 < Mama >는 소박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느린 템포의 곡이다.

<나는 쓰레기야 Part1>, < The Age of God >, <나는 쓰레기야 Part2>로 이어지는 메탈넘버는 마치 한 곡처럼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 The Age of God > 중간에 "세상은 쓰레기 통이야 그럼 난 쓰레기네"라는 내레이션에서 이어지는 신해철의 냉소적인 웃음이 압권이다. 신해철은 대마초 흡연으로 인한 KBS의 방송출연정지가 끝난 직후 출연한 <빅쇼> 무대에서 '용기 있게' 이 곡을 부르기도 했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베이시스트 김영석이 작곡한 발라드로 넥스트 3집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주제로 한 곡이다. 하지만 이 곡에 등장하는 연인은 '동성동본 금혼법'에 저항하는 평범하지 않은 연인들이다. 신해철은 1995년 12월에 열린 'N.EX.T is Alive' 공연에서 동성동본 커플들을 초대하기도 했다(동성동본 금혼법은 노래가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2005년에야 비로소 폐지됐다).

실질적인 타이틀곡으로 쓰였던 < Money >는 제목처럼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세상을 조롱한 곡이다. 1995년 두 천재 뮤지션 서태지(<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와 신해철은 나란히 음악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26년의 시간이 흐른 2021년까지도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오히려 물질 만능주의는 더하면 더했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넥스트 3집의 중반부까지가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면 후반부에 담긴 두 곡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11번 트랙 <아가에게>는 가족들이 모여 갓 태어난 아가를 보며 흐뭇해하는 화목한 풍경을 그린 노래다. 신해철뿐 아니라 김영석, 김세황, 이수용 등 각 멤버들의 솔로 파트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신해철은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고 '꼰대삼촌' 같은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넥스트 3집에서 가장 희망적인 노래는 아예 제목마저 < Hope(희망) >다. 넥스트 3집의 앞선 노래들을 통해 강렬한 운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희망적인 가사와 쉬운 멜로디가 결합된 숨은 명곡이다. < Question >과 세 곡의 연주곡(<러브스토리>, <나른한 오후의 단상>, < Requiem For The Embryo >)은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역량이 잘 드러난 곡이다. 

멤버 바꿔가며 꾸준히 이어온 넥스트라는 브랜드
 
 신해철은 2006년 셀프리메이크 앨범 'regame?'을 발표하면서 황금기 멤버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신해철은 2006년 셀프리메이크 앨범 'regame?'을 발표하면서 황금기 멤버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 콘텐츠라이크

 
1995년 연말 콘서트 후 1996년을 휴식과 개인 활동의 시기로 삼은 넥스트는 1997년 < Here, I Stand For You >가 담긴 싱글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1997년 11월 국내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격인 4집 앨범 'Lazenca(A Space Rock Opera)'를 발표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넥스트 리즈 시절의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다. 

넥스트 해산(신해철은 해체 대신 '해산'이라는 표현을 썼다) 후 신해철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음악 공부를 계속 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패닉의 래퍼 김진표를 영입해 노바소닉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1999년에 결성된 노바소닉은 2003년까지 4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 시절 노바소닉 1집에 수록된 <마지막 편지 그것조차 거짓: 또다른 진심>은 전국의 오락실을 강타한 유명 리듬게임에 수록되며 상당한 유명세를 탔다.

신해철은 유학 도중에도 모노크롬, 비트캔슈타인 등의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때 발표한 노래들이 <일상으로의 초대>와 <민물장어의 꿈>,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같은 명곡들이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의 경우엔 크래시의 리메이크 버전이 CF에 삽입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지만 원곡자는 분명 신해철이다. 2001년부터는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의 DJ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팬들에게 '마왕'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이어가던 신해철은 2003년 자신을 제외한 멤버를 전면 교체해 넥스트 5집 'The Return of N.EX.T Part3 : 개한민국'을 발표했다. 충격적인 앨범 타이틀과 한층 어려진 멤버들의 평균 나이 때문에 기존 넥스트 팬 일부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신해철 특유의 저항정신과 음악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넥스트는 2006년 리즈시절 멤버인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을 재영입해 셀프 리메이크앨범 'Regame?'을 발표했다. 5집 멤버에서 3명이 대거 탈퇴했지만 황금기 시절 멤버 3명에 키보디스트 지현수(배우 지현우의 친형)까지 합류하면서 당시 넥스트 멤버는 6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새로 수록된 <날아라 병아리>에는 YB의 윤도현이 하모니카 세션으로 참여했다.

넥스트는 5.5집 이후 탈퇴한 김영석과 이수용, 데빈 리의 자리에 제이드과 김단을 영입하고 2008년 12월 미니앨범 형식의 6집을 발표했다. 신해철은 6집을 발표하면서 6집은 총 3장에 걸쳐 발매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지만 5년이 넘도록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던 2013년 원년멤버 정기송이 전격 합류하면서 넥스트의 신보 소식을 기다리던 팬들을 설레게 했다. 그 때만 해도 신해철에게 그런 비극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천재로 등장해 천재로 기억될 영원한 '마왕'
 
 지난 2018년에는 신해철의 비공개 트랙들이 담긴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됐다.

지난 2018년에는 신해철의 비공개 트랙들이 담긴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됐다. ⓒ 넥스트 유나이티드

 
신해철은 2014년 6월 'Reboot Myself'라는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타이틀곡 < A.D.D.A >를 통해 원맨 아카펠라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물론 팬들은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라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가장' 신해철의 소망이 담긴 <단 하나의 약속>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신해철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족들, 그리고 넥스트로 돌아오겠다던 팬들과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신해철은 2014년 10월 22일 심장이상으로 병원에 실려간 후 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신해철의 죽음 후 여러 방송과 공연을 통해 그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가족들은 신해철의 집도의와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4년이 넘는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집도의는 징역 1년의 실형과 함께 의사면허가 취소됐지만 소송에서 승리했다고 신해철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대중들은 그가 만든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고 세상을 향해 소신 있게 자신의 신념을 전하던 그의 당당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저 그가 과거에 만들었던 음악을 듣고 부르며 '마왕'을 그리워할 뿐이다. <복면가왕> 역대 최고의 가왕으로 꼽히는 우리동네 음악대장(하현우)은 <민물장어의 꿈>을 시작으로 < Lazenca, Save us >, <일상으로의 초대>까지 신해철이 만든 노래를 3곡이나 선곡하며 우상에 대한 존경의 뜻을 나타냈다.

신해철은 등장할 때도 천재였고 활발하게 활동할 때도 천재였으며 세상에 없는 지금까지도 천재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만든 노래 < Hero >의 가사처럼 '때론 현실 앞에 한 없이 작아질 때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영웅을 만나듯' 팬들은 앞으로도 신해철, 그리고 넥스트의 음악을 듣게 될 것이다.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영웅으로 기억될,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위대한 천재 뮤지션 신해철의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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