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겠지, 내가 다 터트릴꼬얌'(이다영 SNS)
"인과응보가 있더라."(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 인터뷰에서)


최근 폭력 전과로 논란에 휩싸인 두 사람이 얼마전에 직접 남긴 어록이다. 원래 본인들이 의도했던 것과는 좀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발언은 바로 자신들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는 선견지명이 되고 말았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던 이다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그녀에게 학교폭력을 당했던 '진짜 피해자'들의 연이은 폭로로 과거가 탄로나며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함께 배구계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또한 이다영-재영 자매를 시작으로 배구계에 '학폭 미투(나도 당했다.)' 고발 사례가 봇물터지듯 쏟아지는 계기가 됐다. '내가 다 터트릴 것.'이라던 이다영의 호언장담은 결과적으로 본인의 살신성인(?)에 힘입어 현실이 된 것.
 
 겨울철 인기 실내 스포츠 입지를 굳혀가던 한국 프로배구 V리그가 '학교 폭력(학폭) 논란'으로 휘청이고 있다.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 의혹이 불거진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둘은 현재 팀 숙소를 떠난 상태다.

사진은 지난 2020년 10월 경기에 출전한 이재영과 이다영(왼쪽).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왼쪽) ⓒ 연합뉴스

 
이상열 감독은 12년전 대표팀 코치 시절 선수였던 박철우(한국전력)을 폭행한 전력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학교폭력 문제가 최근 이슈가 되자 이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입장을 밝혔다. 물론 의도는 앞으로 학폭 사태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미였지만, 본인은 이미 죄값을 다 치뤘다는 식의 과거형으로 언급한 것은 여전히 12년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피해자의 상처를 다시 한번 헤집은 꼴이 됐다.

박철우는 분노의 인터뷰를 통하여 이 감독의 행실이 과거와 변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12년전 사건 이후에도 이 감독이 선수들에게 상습적으로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저질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 감독은 결국 올시즌 잔여경기 출전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결국 본인의 말대로 인과응보를 받은 것이다.

이다영-재영 자매나 이상열 감독의 사례에서 돌아봐야할 부분은, 눈가리고 아웅식하는 무성의한 대처로는 오히려 상황만 더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폭력 자체부터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지만, 뒤늦게 사건이 세상에 밝혀진 뒤에도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속죄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았다는게 더 문제였다.

이다영-재영 자매가 학폭 논란이 드러난 이후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것은 각자 SNS에 올린 자필사과문 한 장이 전부다. 그나마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데 대하여 팬들을 향한 사과일뿐 정작 피해 당사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는 빠져있었다. '철없는 시절' '한때의 실수'같은 표현들로 명백한 범죄에 가까웠던 자신들의 엽기적인 행각을 변명하는 데 급급했다.

쌍둥이가 저지른 파문은 이제 형식적인 사과문 한 장과 회피만으로 무마될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저 시간이 흘러서 여론의 분위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태가 이 정도 되었으면 당사자들이 직접 공개석상에 나서서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속죄할 것인지,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구체적인 입장을 밝혀야한다.

이상열 감독은 속죄의 골든타임을 몇 번이나 놓쳤다. 12년전에 박철우를 처음 폭행했을때도 징계는 받았지만 정작 피해자에게는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이 없었다. 학폭논란과 자신의 경솔한 발언으로 12년전 사건이 다시 재조명받는 위기에 놓이자 이번엔 또다시 '잔여경기 출장포기'라는 어정쩡한 대처를 꺼내들었다. 얼핏 무거운 책임을 진 것같지만 자진사임하거나 배구계를 떠난 것도 아니고,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구단에 슬쩍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 역시 학폭으로 물의를 일으킨 송명근-심경섭(OK금융그룹)과 더불어 보여주기식의 '셀프징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학폭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않고 오히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은, 피해자보다는 오히려 '가해자 위주의 사고'에 물든 배구계의 미온적인 대처에도 큰 책임이 있다.

소속팀인 흥국생명은 사태 초반만 해도 쌍둥이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핑계로 징계를 주저하다가 여론이 더 악화되자 부랴부랴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그나마 사실상 언제든 출장정지만 철회하면 팀에 복귀시킬수 있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식 솜방망이 징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KOVO)도 마찬가지다. 배구협회는 박철우 폭행 사건 당시 이상열 감독에게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지만 여론의 관심이 잠잠해지자 불과 2년만에 슬그머니 징계를 해제했다. 이상열 감독은 배구계로 복귀하여 해설위원과 지도자를 거치며 승승장구했고, 박철우를 비롯하여 그의 폭력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와 같은 코트내에서 끊임없이 얼굴을 마주쳐야만하는 고통을 안겼다. KB손해보험은 폭력 사태로 이미 큰 물의를 일으킨 전력이 있는 인물을 굳이 감독으로 선임한 것부터가 원죄였다.

배구연맹은 최근 뒤늦게 학폭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작 이다영-재영 자매나 송명근-심경섭 등이 이미 혐의가 드러난 인물에 대해서는 소급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폭력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쌍방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폭력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사태를 수습하기위한 '사회적 보호막'이 어디에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가해자의 부모, 아마추어-프로 소속팀 지도자들, 구단 관계자와 배구계 수뇌부들에 이르기까지 이번 사태에 대하여 누구도 먼저 책임지거나 반성하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몰랐다.''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태도로만 일관하고 있다. 바로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이 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악화시킨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배구계는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한다. 여론의 주목을 받는 몇몇 가해자들만 처벌받는다고 무마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왔다. 배구계는 차라리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두운 과거나 낡은 관행과 완전히 결별한다는 각오로 근본적인 쇄신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공감할수 있을만한 진정성있는 속죄가 우선이다. 학폭 사태는 어쩌면 그 이전과 이후로 배구계의 문화 자체를 바꾸는 뉴노멀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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