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가정에서 출산을 준비한다. 원래 오기로 했던 조산사가 아닌 다른 조산사가 도착하고, 자연분만을 위한 준비가 진행된다. 조산사는 아기와 산모가 모두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병원에 가자 말하지만, 여자는 거부하며 출산을 위해 분투한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를 출산하지만, 세상에 나오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고 만다. <그녀의 조각들>의 이 도입부는 굉장한 흡인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르타는 남편 숀과 함께 집에서 출산을 준비하던 중 아이를 잃는다. 이 일로 조산사 에바는 고소를 당한다. 이 도입부만 보자면 이후 내용은 가정 분만에 대한 문제점이나 조산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중심으로 한 법정 싸움을 예상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도입부를 길게 잡아 출산 장면에 할애했기 때문이다. <화이트 갓>, <주피터스 문>의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언제나 그랬듯 자신만의 스타일로 관객들의 예측을 벗어나는 연출을 선보인다.
  
 <그녀의 조각들> 스틸컷

<그녀의 조각들> 스틸컷 ⓒ 넷플릭스


 
이 작품이 초점을 두는 건 법적 다툼이나 조산사가 아닌 마르타의 캐릭터다. 강렬했던 도입부 이후 영화는 임신과 출산에 가려졌던 마르타의 문제를 하나하나 조명한다. 마르타가 남편 숀과 어머니 엘리자베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인 것으로 비춰진다. 마르타는 에바와의 법적 문제에서도 증언을 하지 않으려는 등 문제를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르타가 문제를 피하려는 건 지쳤기 때문이다. 마르타의 집안은 건실하다 할 수 있을 만큼 모두가 사회적인 성공을 이뤘다. 마르타만 제외하고. 때문에 마르타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가정에 신경 쓰는 걸 싫어한다. 이는 자신이 택한 남자인 숀이 제대로 된 사람 노릇을 못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숀은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건 물론 마르타에게 충실한 남자도 아니다. 여기에 자격지심도 지니고 있다.
 
마르타는 그런 숀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으나 이에 실패한다. 유산은 마르타가 모든 걸 놓고 슬픔에 빠지게 되는 트리거 역할을 한다. 힘겹게 인생을 버텨왔던 그녀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유산이다. 영화는 감정의 격화를 이끌어 내는 사건을 맨 앞에 배치하면서 독특한 구성을 선보인다. 사건보다는 한 인물의 내면에 중점을 두며 슬픔의 심연을 헤매는 여성의 심리를 보여준다.
  
 <그녀의 조각들> 스틸컷

<그녀의 조각들> 스틸컷 ⓒ 넷플릭스


 
'그녀의 조각들(Pieces of a Woman)'은 조각을 하나씩 모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슬픔의 조각들을 통해 마르타의 감정을 설명한다. 구성상 초반에 하강곡선을 그리며 아래를 향하고, 이를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도입부를 강하게 가져왔다. 두 번째 명장면은 상승곡선을 그릴 추진력을 얻는 장면이다. 마르타에게 이 추진력을 주는 존재는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는 전쟁 중 마르타를 낳은 이야기를 한다. 힘겨운 환경에서 태어난 마르타는 의사로부터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을 만큼 연약했다. 당시 의사는 갓난아기였던 마르타를 거꾸로 들어 올리며 아기가 고개를 들어 올리면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다. 그때 마르타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그녀는 살아남게 된다. 이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마르타가 지닌 강인한 생명력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슬픔의 조각을 모으면 마르타는 새로운 조각들을 모으고자 한다. 삶을 향한 열정과 의지를 찾게 된 마르타의 모습에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을 맡은 <데몰리션>이란 작품이다. 이 영화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가 집을 분해하면서 그 슬픔의 감정을 알아가고 또 잊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데이비드는 아내가 죽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조각들> 스틸컷

<그녀의 조각들> 스틸컷 ⓒ 넷플릭스


 
감정이 완전히 망가졌다 여긴 그는 무언가를 고치기 위해서는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단 걸 알게 된다. 그가 집을 분해하는 과정은 자신의 마음 속 감정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는 것과 같다. 하나씩 조각을 바라보며 그 내면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녀의 조각들> 역시 슬픔의 조각들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 내면에 숨겨진 생명력을 발견하는 결실을 보여준다.
 
심리적으로 깊은 공허와 슬픔에 잠기는 마르타 역을 소화해낸 바네사 커비의 연기는 도입부 장면이 아니더라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열연을 선보인다. 여기에 엘리자베스 역의 엘렌 버스틴은 후반부 극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레퀴엠> 이후 다시 한 번 뇌리에 박히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녀의 조각들> 포스터

<그녀의 조각들> 포스터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자의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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