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시간여행자>(Travelers)란 '미드'를 보신 적이 있는지. 설정은 이렇다. 미래는 멸망하다시피 했고, 인류에게 남은 희망은 과거를 '리셋'하는 것뿐. 이를 위해 미래 인류가 개발한 것이 바로 인간의 정신을 과거 인간에게 덧씌우는 기술.

그렇다. 이곳은 SF의 세계다. 미래 인류는 이 기술을 가지고 사망 직전 과거 인간의 육체를 빌리기로 한다. 그렇게 지구를 살릴 임무를 부여받은 채 과거로 향하는 '시간여행자'는 '현재' 다른 인간의 육체를 빌려 활동을 시작한다. 시즌3까지 이어진 <시간여행자>의 핵심 '태그라인'이 바로 이 '육체 속으로' 혹은 '바디 스내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빌런'. 미래 인류가 만든 일종의 슈퍼컴퓨터 '디렉터'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산, '지구 살리기'에 돌입하고, 그 반대편에 '디렉터'의 능력을 의심하는 세력이 '시간여행자'들의 활동을 방해한다. 안 그래도 '초면'일 수밖에 없는 과거 지구에서 좌충우돌을 겪는 '시간여행자들'에게도 '빌런'(악당)은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이런 장르, 미래와 현재가 교차하고, 시간여행자들이 주인공이며, 하나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장르는 디테일이 생명일 수밖에 없다. 성공한 예로는, 현대 '시간여행물'의 영원한 레퍼런스가 된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매트릭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워쇼스키 남매는 <매트릭스> 시리즈 이후 이러한 '세계'를 창조하는데 몰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대개는 한 편, 길어야 '트롤리지'로 막을 내리는 영화에 비해 호흡이 긴 드라마는 훨씬 더 정교한 디테일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몇몇 영화에 이어 한국 드라마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최근 SBS <앨리스>가 딱 이런 장르에 도전했고, 뒤이어 17일 첫 방송된 JTBC 창사 10주년 특집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아래 <시지프스>)가 당도했다.

우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스위트홈>과 최근의 영화 <승리호>처럼 한국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 시청자들과 실시간으로 만나는 시대, 우리가 그간 도전하지 못했던 장르의 지평을 여는 작업은 일단 반기고 응원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시지프스>는 제작비 규모가 200억대로 알려졌고, 역시나 '넷플릭스행'이 결정됐다. 화제 속에 뚜껑을 연 <시지프스>의 실체는 그 기대에 부응했을까.

JTBC 창사 10주년 드라마에 무슨 일이

'하나의 세계, 두 개의 미래. 우리의 세상에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를 밝혀내려는 천재 공학자 한태술(조승우)과 그를 위해 멀고도 위험한 길을 거슬러온 구원자 강서해(박신혜)의 여정을 그린 판타지 미스터리 드라마.'

제작진이 밝힌 <시지프스>의 '태그라인'이다. '미래에서 온 구원자가 천재 공학자와 함께 세상을 구한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원형을 어떤 디테일로 채울까가 관건일 터. 우려스러운 사실은 방송 직후 그야말로 '별의별' 레퍼런스들을 열거한 시청자들의 감상평이 아니다.

핵심은 그 익숙한 듯 친숙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이어붙이고 시각화하며 '서사'를 완성했느냐다. 그러니까, 우선 한국판 '아이언맨' 아니 수트를 입기 전 <아이언맨>의 재벌 과학자 '토니 스타크'를 연상시키는 한태술의 캐릭터나 비밀을 감춘 형의 죽음이 그의 '트라우마'라는 설정 자체는 별다른 흠이 될 수 없었다.

'터미네이터' 속 카일 리스의 여성 버전인 박신혜가 연기한 구원자가 이미 닳고 달은 캐릭터여도, 그의 활동 반경이나 액션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해도 SF 장르임을 인지한 시청자들은 기꺼이 용인할 준비가 돼 있었을 것이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강서해가 '타임 슬립'하기 전, 2035년의 황폐한 미래 세계의 구현이 경탄할 만하거나 공감할 만한 형상을 보여주지 못했다거나 도입부 한태술이 맞닥뜨린 중대 사건인 비행기 사고의 화면 구성이 여타 거대 제작비의 그것과 비교해 한참이나 못 미쳐도 크게 상관없었을 것도 매한가지이다.

<시지프스>가 진짜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야기를 자꾸 지연시키는 연출 전략이었다. '타임 스립'한 강서해의 여정보다 형의 죽음과 관련한 한태술의 트라우마에 집착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극대화하는 장치라고 수긍할 이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결정적인 장면 혹은 서사의 키포인트를 자꾸 지연시킨다는 데 있었다. 형의 죽음이 실제인지는 2회에 걸쳐 지루하게 연장됐다. 그것이 물론 미래에서 온 '빌런'이나 '조력자'들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현재 세계에 함께 살고 있는 '미래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도입부 설정일 순 있다.

그러나 그걸 채워나가는 장면 장면이 허술하고 전형적일 땐 문제가 심각해진다. 더 나아가 때때로 형식이 내용을, 주제를 규정하기도 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회상 장면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형식을 통해 감탄을 자아낸 드라마들도 여럿이다. 안타깝게도, <시지프스>의 1, 2회는 끊임없이 맥 빠지는 회상 장면이 이어졌고, 그런 형식이 극의 속도감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그리고, 진짜 흥미로운 점은 그 다음이었다.

'스킵'된 핵심 장면들... 왜?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의아하게도, <시지프스>는 정말 중요한 장면을, 시청자들이 보고 싶을 핵심 장면을 자꾸 '스킵'해 버린다. 한태술의 기지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모면한 비행기 사고가 정작 어떻게 해결됐는지는 뛰어넘어 버린다.

강서해는 어떻게 현재로 왔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후자는 다음 화를 위한 '떡밥'일 순 있지만, 전자는 전혀 맥락이 다르다. 강서해가 '단속국'과의 혈투를 벌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한참 격투를 벌이던 강서해가 위기를 어떻게 모면했는지에 대한 장면 설명이 아예 실종돼 버린 것이다.

의도적인 연출이라기엔 이어지는 장면의 연결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긴박감이 다 사라져 버린 뒤였다. 해당 액션 장면에서 카메라 뒤편에서 우왕좌왕하던 단역 출연자들의 동선이 화면에 잡힌 것은 애교(?)로 보일 지경이었다고 할까. 의문이 드는 장면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의 한 장면 ⓒ JTBC

 
반면 시청자가 보기엔 뛰어넘어도 될 장면엔 공을 들였다.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대화 장면이나 정작 뛰어넘어도 충분한 설정 장면의 묘사에 분량을 할애하는 식이다. 강서해의 조력자인 썬(채종협)이 등장하는 장면 대부분이 그랬고,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2화의 마지막 장면은 결정적이었다.

전개 자체가, 장면 대부분의 사정이 이러하니 대사는 물론 연기 톤이 '올드'하다는 평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전작인 <비밀의 숲> 시즌2나 영화 <콜> 등에서 괄목할 만한 연기를 인정 받은 조승우, 박신혜 두 주연 배우는 이런 약점들로부터 <시지프스>를 구원할 수 있을까. 

앞서 소개한 <시간여행자> 역시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랬다면 3시즌으로 끝을 맺지도 않았을 터. 다만, <시지프스>가 도전한 장르가 얼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지, 눈높이가 한없이 높아진 우리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리키는 또 하나의 '레퍼런스'였을 뿐이었다.

그런 장르에 도전한 <시지프스>는 과연 도입부의 어수선함을 딛고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JTBC 드라마의 구원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기 꾀에 빠져 산 정상을 향해 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의 운명을, 그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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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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