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스틸컷

영화 <아이>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가족이든, 사회든 어디서든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던 것 같다. 제 안에서 어떤 희망적인 이야기로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10일 개봉된 영화 <아이>는 보호종료아동, 기초생활수급, 싱글맘, 성매매 여성 등 우리 사회 취약계층의 현실을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개봉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오후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현탁 감독은 "현실은 더 가혹하지 않나. 너무 섣부르게 희망을 얘기한 건 아닌지 제 스스로 검열하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면서도 "계속해서 성숙하고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강한 생활력으로 하루하루 버텨온 아동학과 졸업반 아영(김향기 분)은 생후 6개월 된 아들 혁을 홀로 키우는 워킹맘 영채(류현경 분)의 베이비시터로 일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던 두 사람은 아이 혁을 함께 키워나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점점 가까워진다. 김현탁 감독은 이 영화의 시작에 대해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정해놓고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장편 영화를 2년 정도 준비하다가 엎어졌는데 다음날부터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는 구상도 없었다. 어설픈 초안을 보고 '내가 이걸 왜 썼지? 이 캐릭터는 어디서 왔고, 이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를 찾아가는 시간이 좀 길었다. 나중에 생각하면서 보니까, 아영이란 캐릭터는 '저 친구는 잘 자랄 수 없겠지', 영채는 '이런 여자 혼자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을 거야' 그런 편견으로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힘든 사람의 힘든 면 보여주는 영화, 폭력적으로 느껴져"

아영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박탈될까봐 전전긍긍 하는 보호종료아동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영채는 최근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술집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힘겨운 일상을 비교적 평범하게 그려낸다. 이들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현탁 감독은 영화가 힘든 사람들의 힘든 면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게 오히려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주변에 힘든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힘들다고 마냥 힘들어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차피 다들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데 영화가 힘든 사람들의 힘든 면을 보여주는 게 저한테는 조금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장면이 어울리는 영화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인물들이 잘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들을 많이 다루려고 했다."
 
 영화 <아이> 김현탁 감독 인터뷰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극 중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서, 배경에서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술을 잔뜩 사서 아영의 집에 찾아온 보육원 동기 친구들은 게임을 하며 신나게 떠든다. "후원금 500만 원 이하인 사람 (손가락) 접어.", "너도 접어." 밝게 웃는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는 가볍지 않다. 서로 누가 더 나은 상황인지 입씨름을 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김현탁 감독이 보호종료아동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실 그 부분은 제게도 충격이었다. 이 친구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균등하게 지원되지 않더라. 예쁘게 생기고 말 잘 들을 것 같은 친구들에게 후원이 집중된다. 그들 안에 또다른 차별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런 한 마디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각자의 아픔, 상황들이 느껴지게 표현하고 싶어서 대화 신들을 그렇게 꾸몄다. 배우분들끼리 리허설을 여러 번 하면서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그런 것들이 보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영에게 가족이란 존재 질문할 수 있게 만드는 순간"

밝게 웃던 친구들 중에서 아영에게 툭 하면 "돈 좀 빌려줘", "휴대폰 충전기 좀 빌려줘"라며 귀찮게 굴던 한 친구는 결국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이는 우리 사회가 미처 보호하지 못한 보호종료아동들의 냉혹한 현재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영과 친구들은 "걔가 자살할 리가 없다"며 울부짖지만,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조차 치러줄 수 없다. 김 감독은 "아영에게 가족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질문할 수 있게 만드는 순간"이라며 "너무 마음 아픈 장면이라 최종고까지 뺄까 고민했던 장면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일단 아영의 기준에선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도록 하는 게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취재를 하면서 어린 나이에 자살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10대, 20대 평균치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명확한 수치를 조사하지 않더라. 그런 면에서 (사회 제도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현실도 보여주고자 했다. 아영에겐 가족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장면이 제게는 너무 마음 아픈 장면이라서 최종고까지 빠져 있었던 적도 있었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 것까지 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지막에 넣게 됐다."
 
두 사람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함께 아이를 키워가는 내용인 영화는 '모성'에 관해 거의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영채는 혁의 병원비가 예상치 못하게 비싼 금액으로 청구되고, 매일 술집에 출근해봤자 빚만 늘어가는 현실에 해선 안 될 선택을 하려고도 한다.

김현탁 감독은 "'모성애라는 게 존재하냐, 안 하냐'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는 세상이지 않나. 그래서 영화에 일부러 엄마라는 단어 대신 주 양육자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성이 무엇일까'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생각했다. 애착과 유대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런(성 중립적인) 단어들로 많이 표현을 하려고 했다. 아영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장면에서도 그런 표현에 신경썼다"라고 덧붙였다.

<아이>의 이런 섬세한 면들은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 당연히 여성 감독일 거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다고. 앞서 배우 류현경 역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여자 감독일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김 감독은 "솔직히 그런 질문을 받을 줄 전혀 모르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시나리오를 쓰고 나니까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게 되더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배우들이 가진 힘이 좋아서 (연출이) 섬세하다고 칭찬해주시는 것 같다"라고 공을 돌렸다.

"조심해야 할 지점들이 있고 그걸 좀 더 잘 표현해야겠다고는 생각했다. 여성 서사, 여성 영화라고 불리니까 더 섬세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 사람들이 투박하고 거칠게 삶을 살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잘 담아내려고 하는 게 고작이었다. 배우들이 가진 힘이 좋다보니 그런 게 아닐까. 섬세한 감정 표현을 잘 해줘서, 섬세하다고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은데 배우들의 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연출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려고 했다. '이 캐릭터, 이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뭐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연출했다. 그게 보시기에는 섬세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태용 감독의 질문

줄곧 현실적인 질감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영화 말미에서 따뜻한 판타지로 방향을 전환한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현탁 감독은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저도 그 지점을 많이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저한테는 그들에게 손 한 번 내밀어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채와 아영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아름답게 살았는지는 저 또한 알지 못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시종일관 그들을 따라다니던 카메라가 그들이 세상으로 걸어나갈 때 뒤에서 멀찍이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것밖에 없다. 판타지가 짙어 보이지는 않도록 고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판타지같은 면이 남아 있는 건, 개인적으로는 저를 홀로 키워주신 어머니한테 손을 내밀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 <아이> 스틸컷

영화 <아이>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번 <아이>를 통해 장편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김현탁 감독은 앞서 단편 영화 <동구 밖>으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충무로의 블루칩이다. 그는 <아이>를 쓰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앞으로도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대학원 교수님 중에 김태용 감독님이 있었다. (<아이> 시나리오) 2고를 보시고는 '왜 이걸 쓰기 시작했냐', '당신은 어떻게 자라왔냐'는 류의 질문을 많이 하셨다. 그런 질문에 답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인지 많이 깨우치게 됐던 것 같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잘 써보자고 생각하는 과정이 참 길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은 어떤 존재지? 부모는 어떤 존재지? 자식은 어떤 존재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테마가 제 이야기에는 늘 따라다니고 있다. 전작이었던 영화 <동구 밖>도 부모는 있지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가출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 제게는 가족이라는 테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계속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이게 진행될지, 그렇지 않고 바뀔지는 여러 가지를 써보면서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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