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런온> 현장 사진.

JTBC 드라마 <런온> 현장 사진. ⓒ JTBC

 
"'<런온>같은 드라마는 <런온>밖에 없다'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런온>은 분명 새로운 유형의 드라마였다. 서로 살아온 세계가 다른 주인공들은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점점 성장해나간다. 이들은 그동안 안방극장을 수놓았던 흔한 로맨스 드라마의 공식을 거의 따르지 않는다. 대신 현실에 밀접한 이야기와 공감 가는 캐릭터들로 젊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이는 이재훈 PD의 섬세한 연출의 힘이기도 했다.

10일 서면을 통해 이재훈 PD를 만났다. 이 PD는 "처음 연출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라서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고민했다. 인기가 많았던 몇몇 로코 드라마들을 찾아보기도 했고. 하지만 어설픈 경험으로 흉내낼 수 없는 한계가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이어 전 직장이었던 KBS의 한 후배에게 전했던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첫 로코를 만들어보니 어떠냐'는 KBS의 한 후배의 안부인사에 이렇게 답했다. '로'는 작가와 배우와 촬영감독과 음악감독에게 맡기고 나는 '코'를 담당하고 있다고. 농담처럼 한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많은 부분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일한 1년이었다. 작가님의 가슴 설레는 대본을 배우들이 진심을 담아 연기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담아내는 스태프들을 믿고 따르는 과정을 거쳐 결국 연출의 취향껏 매듭을 지었다. 분명 모범적인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었고 수많은 단점과 시행착오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이지만, 그래도 함께 만든 사람들의 선의와 열정이 예상치 못한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런온>을 사랑해주신 시청자들에게 고마움과 안도의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된다."

드라마에는 외화 번역가(오미주)부터, 국가대표 단거리 육상선수(기선겸), 재벌 2세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서단아), 미대생(이영화) 등 다양한 직업군들이 등장한다. 이재훈 PD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재훈 PD는 자료조사 단계부터 배우들과 함께 현직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직업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고 밝혔다. 극 중에서 주인공들이 일하는 장면들에는 이재훈 PD를 비롯한 배우들, 스태프들의 여러 노고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JTBC 드라마 <런온> 스틸 컷

JTBC 드라마 <런온> 스틸 컷 ⓒ JTBC

 
"'어떤 직업이든 결국은 연애하는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 하루를 살아가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그러는 가운데 사랑도 하는 그런 삶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배우들의 캐릭터에 대한 열의, 그리고 자기 일처럼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여러 전문가들 덕분에 그 의도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임시완(기선겸 역)은 육상부 선수 배우들과 함께 실제 단거리 육상 감독님을 찾아가 기본 자세를 배우고 촬영 전까지 꾸준히 트레이닝을 하도록 준비했다. 달리는 신이 있을 때마다 서민석 육상감독님이 현장에 여러 번 동행해서 컷마다 배우들의 자세를 교정해주고 디테일한 동작들을 알려줘 든든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또한 신세경(오미주 역)은 황석희 외화 번역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실제 작업하는 모습을 견학하고 번역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들을 들었다. 허락 하에 촬영한 작업실의 공간과 물품들은 미주의 방을 세팅하는데 좋은 참고가 되었다. 방문 이후에도 문자를 통해 수시로 번역 작업과 관련된 문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극 중에서 이영화(강태오 분)의 그림들은 모두 정주희 작가의 작품들을 사용했는데 이는 인물의 일관된 화풍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영화 역시 촬영 전 정작가의 작업실을 함께 방문해 작업방식을 견학하고 많은 조언을 들었다. 드로잉이 있는 촬영 때는 미술전공자가 손 대역 및 자세교정 등을 맡아줘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신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런온>은 영화를 오마주, 패러디한 장면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유명한 영화의 유명한 장면들도 있었지만 영화 마니아들만 알아볼만한 숨은 패러디들도 많았다. 이재훈 PD는 "왕년에 '시네필'을 자처했던 한 사람으로서 아주 신나는 작업이었다. 오마주와 패러디를 효과적으로 하면 신선한 코미디가 나올 수 있고 영화번역가인 미주의 캐릭터도 더 잘 살릴 수 있으니까. 작가님과도 대본단계에서 이런 장면들을 많이 넣어보자고 합의했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배우와 작가, 스태프와 공유하며 발전시켜나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지는 않았지만 남몰래 숨겨놓았던 '이스터에그'들을 살짝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고전과 최근 영화를 가리지 않았는데 그 중에 <카사블랑카> <내 머릿속의 지우개> <스페이스 2001> <불한당> 등 시청자들이 호응해주신 성공적인 오마주들이 있었던 반면에 실패한 패러디도 몇 있다. 예컨대 서회장이 죽는 장면은 영화 <시민케인>에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을 연상케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술에 취한 고예준(김동영 분)의 얼굴에 영화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 나온 피에로 분장을 참고했지만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았다. 역시 무리수였다 싶은 게, 워낙에 오래된 영화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예준이와 젤소미나는 전혀 닮지 않았던 탓인 것 같다. 패러디가 주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억지로 만드는 것은 아니하는 것만 못하다는 기준을 확실하게 했다. 극에 부담이 가거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 안에서 만들어 넣은 일종의 귀여운 '이스터에그'니까 알아봐주면 고맙고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JTBC 드라마 <런온> 스틸 컷

JTBC 드라마 <런온> 스틸 컷 ⓒ JTBC

 
이어 이재훈 PD는 영화 패러디 신들의 재미있는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도 함께 전했다.

"<카사블랑카> 패러디의 경우 원래는 다 영어 대사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임시완이 '어차피 영어로 더빙할거면 한국말로 대사를 해 입이 안 맞는게 더 재미있겠다'는 의견을 냈다. 즉석에서 이봉련(박매이 역)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등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장성의 재미가 매일같이 존재했다. 

극 중 영화 <코드네임 캔디>같은 경우 설정된 시대적 배경묘사가 없었기에 마음대로 레퍼런스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큰 틀은 영화 <언터쳐블>을 참고해 대공황 이후의 갱스터 영화 풍으로 정했다. 육지우(차화연 분)의 콘셉트는 <체인질링>의 안젤리나 졸리, 기선겸은 <대부>의 알파치노를 닮게 준비시켰고, 미주와 단아는 <레미제라블>의 코제트와 에포닌처럼 스타일링해달라고 요구했다. 영화는 <타이타닉>의 잭도슨을 고려했지만 극 중 캐릭터상 지금의 모습이 됐다. 여기에 <불한당>의 유명한 신을 패러디한 대본에 덧붙여 육지우는 홍콩누아르의 주윤발이 되어 기관총을 갈겼으니 현장이 얼마나 재미있었겠나. 이 자리를 빌려 작가와 스태프, 배우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빛나는 아이디어들에 감사를 표한다."


드라마 <런온>의 또다른 특징은 섬세한 젠더 감수성이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구분을 굉장히 세밀하게 보여준 부분이나 단아가 예준에게 사과하는 장면 등은 그동안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이에 대해 이재훈 PD는 "잘 알지 못하는 만큼 쉽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 소수자 캐릭터인 고예준(김동영 분) 캐스팅에 대해 설명하며 "사실 처음에는 잘 꾸미고 여성스럽게 말하고 곱상하게 생긴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이 또한 편견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평범한 대학생 이미지를 가진 연기 잘하는 배우를 찾았고 김동영이 쉽지 않은 연기를 너무나 잘해줬다"고 말했다.

한편 <런온>은 이재훈 PD가 JTBC로 이적한 후 선택한 첫 작품이기도 했다. 앞서 KBS에서 <김과장> <오늘의 탐정> 등을 통해 장르물 연출에 두각을 드러냈던 이 PD는 <런온>으로 로맨스 드라마 팬들까지 사로잡았다. 이재훈 PD는 "<런온> 스태프들 중에 KBS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이 특히 많아서 현장이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며 "점점 채널의 구분보다 콘텐츠 자체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흐름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이적이라는 큰 변화를 무난하고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JTBC 드라마 <런온> 현장 사진.

JTBC 드라마 <런온> 현장 사진. ⓒ JTBC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상냥한 사람들을 바보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

드라마 말미에서 해외 영화제에 진출한 어느 독립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오미주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재훈 PD는 이 대사를 "무척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고 말했다. <런온>을 통해 "좋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현실적인 판타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현실에서 종종 잊히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좋은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권선징악이란 당연한 이치가 현실에서 종종 이뤄지지 않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걸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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